‹ 목록으로 12년 학비, 최후의 전장

4화

요괴 무리가 능선을 넘어오기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대략 한 시간 남짓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백승훈 단장은 마을 어귀 좁은 골목을 병목 지형으로 활용해 방어선을 구축했다. 지도 한 장 없이, 그저 마을 구조를 눈으로 훑어보고 나온 판단이었는데, 그 속도가 어이없을 정도로 빨라서 나는 속으로 '이게 실전에서 밥벌이한 사람 감각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좁은 길목이면 놈들 숫자가 많아도 한 번에 몰려들지 못한다" 라고 그가 설명했고, 강민호 대마법사는 그 판단에 동의하며 학생들을 그 방어선 뒤쪽에 배치했다. 배치를 정하는 그의 손짓 하나하나가 마치 체스판 위에 말을 놓는 것 같았는데, 그 계산 속에 나는 어디에 놓일까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이도훈, 화구 마법 시전 속도가 어느 정도지?" 하고 강민호 대마법사가 나에게 물었다. "...한 번 시전에 숨 세 번 쉴 정도 걸립니다" 라고 내가 대답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이 만족스러운 건지 아닌지 표정만으로는 알 수 없었는데, 그다음 말을 듣고서야 대충 감이 왔다. "그럼 너는 골목 입구를 정면으로 노려라. 놈들이 병목에 몰릴 때 화구로 밀도를 높여주면 좋겠다." 나는 그 지시를 들으며 속으로 '드디어 실전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손끝이 저릿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3년간 연습장에서만 던졌던 화구를, 이제는 진짜 목숨이 오가는 자리에서 던져야 하는 순간이었다. 연습장의 허수아비는 맞아도 아무 반응이 없었지만, 지금 저 능선 너머에서 오고 있는 놈들은 죽거나, 아니면 나를 죽이러 오는 것이었다. 그 차이가 손끝의 감각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는데, 마치 같은 악보를 실내에서 치던 것과 무대 위에서 치는 것의 차이 같았다. 멀리서 흙먼지가 일더니, 곧 요괴 무리의 형체가 능선 아래로 쏟아져 내려오는 게 보였다. 회갈색 털에 뒤틀린 뿔이 달린 중형 요괴들이었는데, 숫자가 얼핏 봐도 스무 마리는 넘어 보였다. 그 형체들이 움직이는 방식이 짐승과도 다르고 사람과도 달라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뒷목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진짜 많네" 라고 옆에 있던 혜인이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 떨림이 섞여 있었는데,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각자 위치 고정, 명령 없이 함부로 나서지 마라" 하고 백승훈 단장이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골목 전체에 또렷하게 박혔는데, 실전을 수십 번 겪은 사람의 목소리란 이런 건가 싶었다. 요괴 무리가 골목 입구에 다다르자 자연스럽게 병목에 걸려 서로 밀치기 시작했고, 강철과 오태식이 앞줄에서 산악도를 휘두르며 밀려드는 요괴들을 베어냈다. 두 사람의 움직임에는 낭비가 없었는데, 힘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정확히 관절과 근육이 붙은 지점을 노려 베어내는 방식이었다. 퍼억! 앞다리를 벤 요괴가 옆으로 쓰러지자, 그 뒤로 밀려오던 놈들이 잠시 주춤하는 틈이 생겼다. 쓰러진 몸뚱이가 다음 개체의 발목을 걸어 넘어뜨리는 걸 보면서, 병목이라는 게 이렇게 쓰이는구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지금이다, 이도훈!" 하고 강민호 대마법사가 외쳤다. 나는 골목 입구, 요괴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지점을 정확히 조준하고 손끝에 마력을 모았다. 3년간 익힌 감각 그대로, 마력을 압축하고 화염 형태로 변환시키는 과정을 머릿속이 아니라 손가락 끝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 과정을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손이 알아서 흘러가는 게, 3년의 연습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화구!" 콰르릉!!! 화구가 병목에 뭉쳐 있던 요괴 무리 한가운데 정확히 떨어지며 터졌고, 그 폭발이 밀도 높게 뭉쳐 있던 놈들을 한꺼번에 휩쓸었다. 원래 위력이 크지 않은 마법이었는데도, 밀집된 대상에게 명중시키니 효율이 몇 배는 뛰는 게 눈에 보였다. 연습장에서는 허수아비 하나를 태우는 게 고작이었던 마법이 지금은 다섯, 여섯 마리를 한꺼번에 쓰러뜨리고 있었으니, 그 낙차가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게, 되네?"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 감상을 곱씹을 여유는 없었다. 남은 요괴들이 다시 좁은 골목으로 밀려들고 있었으니까. 쓰러진 동족의 몸뚱이를 밟고 넘어오는 놈들의 눈은 여전히 이쪽을 향해 있었고, 그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마다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한 번 더!" 하고 강민호 대마법사가 외쳤고, 나는 다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숨 세 번의 시전 간격을 최대한 줄이려 애쓰면서, 두 번째 화구를 같은 지점에 정확히 떨어뜨렸다. 조준을 다시 잡는 그 짧은 순간에도 강철과 오태식은 앞줄에서 계속 베어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산악도가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박자를 맞춘 듯 규칙적으로 울렸다. 파그작!! 두 번째 폭발이 앞서 무너진 요괴 시체들 위로 겹쳐지자, 병목 지점 자체가 요괴들에게는 사지가 되어버렸다. 살아 있는 놈들이 죽은 동족의 몸뚱이 위를 넘어오려다 미끄러지고, 그 틈을 강철의 산악도가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강철과 오태식은 그 혼란 속에서 돌파해오는 개체들만 정리하면 됐고, 백승훈 단장은 그 광경을 지켜보며 감탄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강윤 학생, 자네도 뭔가 해봐야 하지 않겠나" 하고 대마법사가 강윤을 향해 말했다. 강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마법을 준비했는데,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나에게도 보였다. 늘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강윤의 그 떨림이 낯설어서, 순간 나는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 강윤이 시전한 마법은 빙결 계열이었는데, 위력은 확실히 나보다 강했지만 조준이 살짝 빗나가 골목 벽에 부딪혔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벽면 일부가 얼어붙어 부서졌는데, 만약 저게 요괴 무리 한가운데 떨어졌다면 훨씬 더 큰 피해를 줬을 마법이었다. 실전 경험이 없다는 게 그 순간 그대로 드러난 것이었다. 요괴 무리는 세 번째 화구까지 맞고서야 절반 이하로 줄었고, 나머지는 강철과 오태식, 그리고 뒤늦게 합류한 강윤과 성재의 마법으로 정리됐다. 성재의 마법은 위력은 크지 않았지만 조준만큼은 강윤보다 안정적이었는데, 그 대조가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균열을 만들 것 같다는 예감이 잠깐 스쳤다. 전투가 끝났을 때, 나는 다리가 후들거려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는데, 그건 마력 소모 때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손끝은 여전히 저릿했고, 심장은 아직도 방금 전 그 속도로 뛰고 있었다. 골목 바닥에 널브러진 요괴들의 사체에서 올라오는 탄내와 피비린내가 뒤섞여 코를 찔렀는데, 그 냄새조차도 지금 이 순간이 실전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것 같았다. "...세 번의 화구로 열댓 마리를 정리했군" 하고 백승훈 단장이 다가와 내 어깨를 툭 쳤다. "학원에서 뭘 가르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 조준력과 타이밍이면 정규 용병단에서도 인정받을 만한 실력이야." "...감사합니다" 라고 내가 대답했는데, 그 칭찬이 낯설어서 얼떨떨한 기분이 더 컸다.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인정받은 경험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까. 강민호 대마법사도 내 쪽으로 다가와 낮게 말했다. "흰색 배지로 이 정도 성과라니, 예상보다 훨씬 좋은 결과다" 하고. "이번 임무 보고서에는 자네를 소대 최고 성과자로 기록할 생각인데, 괜찮겠나?" 나는 그 말에 순간 말이 안 나왔다. 최고 성과자라니. 흰색 배지, 61점짜리 실기 성적, 12년치 학비를 걱정하던 내가, 정규 용병단 단장과 대마법사에게 동시에 인정받는 상황이 낯설어서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이 상황을 몇 번이나 되짚어봤는데, 그럴수록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3년 전 처음 화구를 배우던 날, 손끝에서 겨우 불씨 하나 만들어내고 뿌듯해했던 내가, 지금은 요괴 무리를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위치에 서 있었으니까. "...정말 그렇게 기록해주셔도 되는 겁니까" 라고 내가 다시 확인했다. 이 상황이 어떤 착오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아직 남아 있었던 탓이었다. "당연하지. 결과가 이렇게 명확한데 뭘 더 확인할 게 있겠나" 하고 대마법사가 대답했다. 그 말투에는 흔들림이 없었는데, 그 확신이 오히려 나를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뒤쪽에서 강윤이 성재에게 낮은 목소리로 뭔가 속삭이는 게 눈에 들어왔는데, 그 표정이 아까 전투 중의 당혹감과는 전혀 다른, 뭔가 계산된 불쾌함을 담고 있었다. 성재는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는데, 그 끄덕임이 동의인지 그저 눈치를 보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나는 애매한 불안감을 느끼며 두 사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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