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12년 학비, 최후의 전장

1화

성적표라는 종이 한 장이 사람의 12년을 이렇게 간단히 요약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날 처음으로 절실하게 깨달았다. 종이 자체는 손바닥만 한 크기에 불과했고, 무게도 깃털만큼이나 가벼웠는데, 그 가벼운 종이가 내 12년을 통째로 쥐고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명 마법학원 3학년 2학기 종합 평가 통지서 - 이도훈 : 마법 이론 58점, 마법 실기 61점, 종합 평점 59.5점, 졸업 자격 기준선 60점] 0.5점이었다. 정확히 0.5점이 모자라서, 나는 지금 이 종이를 세 번째 다시 읽고 있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숫자가 잘못 인쇄된 줄 알았고, 두 번째 읽었을 때는 내가 잘못 읽은 줄 알았는데, 세 번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게 현실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었다. 네 번째로 읽었을 때는 혹시 소수점이 어디로 도망갔나 싶어서 종이를 뒤집어보기까지 했는데, 당연히 뒷면은 백지였다. ...허무했다. 12년이라니. 아버지가 광산에서 어깨를 상하고, 어머니가 새벽마다 시장 좌판에 나가 손이 갈라지도록 채소를 팔면서 모은 학비가 12년치였는데, 그 12년이 0.5점짜리 종이 한 장 앞에서 순식간에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웃기지도 않았다. 차라리 0점이나 10점이었으면 깨끗하게 포기했을 텐데, 0.5점이라는 숫자는 사람을 참 잔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요컨대 상황은 이랬다. 청명 마법학원은 평민 출신 학생에게도 문을 열어주는 몇 안 되는 명문 학원이었지만, 그 문이 열려 있다는 것과 그 문을 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였다. 입학할 때는 시험 성적만 보고 뽑았지만, 졸업할 때는 이론과 실기 성적을 합산한 종합 평점 60점을 넘겨야 했고, 나는 마법 재능이 학원 전체 최하위권에 속하는 흰색 배지 소유자였다. 흰색 배지는 말 그대로 '아직 마법사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입문 단계'라는 뜻이었는데, 실기 시험에서 화구 마법 하나를 겨우 익힌 게 3년간의 성과였다. 그러니까 성적이 낮은 게 이상한 게 아니라, 60점에 이 정도 근접한 게 오히려 기적에 가까운 거였다. 동기들 중에는 파랑 배지, 심지어 보라 배지를 단 애들도 있었는데, 그런 애들과 나란히 같은 시험지를 받아 든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공평한 게임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이 통지서가 문제가 되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졸업 시험이 보름 앞으로 다가와 있었으니까. 이번 종합 평가에서 60점을 못 넘긴 학생은 자동으로 낙제 후보로 분류되었고, 낙제 후보는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의 구제 기회, 즉 특별 실전 평가에 참여할 수 있었다. 통과하면 졸업, 실패하면 3년간의 학원 생활이 그대로 폐기되는 방식이었다. 간단한 계산식이었다. 12년의 학비 더하기 3년의 시간, 거기에 부모님의 갈라진 손과 무너진 어깨까지 더해서, 그 총합이 0.5점짜리 실패 하나로 전부 마이너스가 되는 계산식. ...계산기를 두드릴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 종이를 손에 든 채로 기숙사 복도에 한참을 서 있었는데, 발이 바닥에 붙어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창밖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걸 보면서도 나는 그 자리에서 벗어날 생각을 못 했고, 지나가던 한혜인이 내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이 굳었다. "또 그 얼굴이네" 하고 혜인이가 말했다. 나와 같은 평민 출신이자 학창 시절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였는데, 재능은 나보다 확실히 나았지만 현장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혜인이는 걸음을 멈추고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뭔가 짐작이 간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0.5점 모자라" 라고 내가 대답하자, 혜인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종이를 뺏어 갔다. "...너 실기 61점인데 이론이 58점이야? 지난번보다 떨어졌잖아" 하고 혜인이가 물었고, 나는 그저 어깨를 늘어뜰 수밖에 없었다. 이론 시험은 언제나 내 발목을 잡는 부분이었는데, 마력 순환 이론이니 원소 상성표니 하는 것들을 아무리 외워도 시험지 앞에만 서면 머릿속이 백지가 되는 게 문제였다. 밤새 외운 원소 상성표가 시험 시작종이 울리는 순간 통째로 증발해버리는 걸, 나는 세 번의 학기 시험을 거치면서 몸으로 배웠다. 반면 실기는 몸으로 부딫혀 배운 감각이 있어서 그나마 나았지만, 그 정도로는 종합 평점을 끌어올리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이론에서 깎아 먹은 점수를 실기로 메우려 해도, 애초에 실기 배점 자체가 이론보다 낮게 잡혀 있어서 균형이 맞지 않았다. '12년이었다.' 하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쳤다. 아버지가 갱도에서 무너진 돌더미에 어깨를 깔린 게 내가 열두 살 때였고, 그 뒤로 아버지는 한쪽 팔을 온전히 쓰지 못했는데도 계속 광산 일을 나갔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 대신 새벽 좌판을 시작했고, 겨울에는 손등이 갈라져 피가 나는 걸 보면서도 나에게는 늘 웃는 얼굴만 보여줬다. 명절 때 집에 내려가면 어머니는 늘 내 손을 잡고 "우리 아들 손은 아직 곱네" 하고 웃었는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내 손이 고운 이유는 그 두 분이 대신 거칠어졌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 모든 게 이 학원 학비를 대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나는 이 사실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내 사정을 아는 혜인이가 종이를 도로 건네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구제 기회는 있는 거지?"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학원 게시판에는 이미 낙제 후보 명단이 붙어 있었고, 명단 아래 작은 글씨로 적힌 안내문을 읽으면서 나는 헛웃음을 삼켰다. 글씨가 작은 것부터가 학원 측이 이 제도를 딱히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낙제 후보 학생은 특별 실전 평가 대상자로 지정되며, 배정된 정규 용병단과 함께 실전 임무에 투입되어 그 성과를 최종 졸업 심사에 반영한다. 임무 실패 혹은 중도 이탈 시 즉시 낙제 확정.] 용병단이라니. 이론 수업에서 배운 것과 실제 몸으로 하는 전투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고, 그 세계에 흰색 배지짜리 학생을 던져 넣는다는 게 학원 입장에서는 그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했을 것이다. 통과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학생들을 그래도 한 번 더 봐줬다는 명분용 구제책, 그것뿐이었다. 실제로 작년에도 비슷한 구제 평가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해 낙제 후보 중 통과한 학생은 열에 하나도 안 됐다는 소문을 들은 기억이 났다. 그 소문을 떠올리자 뒷목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명분이 아니라 진짜였다. 12년치 진짜였다. 그날 밤, 나는 기숙사 창문 너머로 별도 없는 하늘을 한참 올려다보다가, 배정 결과를 확인하러 학사관으로 향했다. 복도를 걷는 내내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리는 것 같았고,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어떤 용병단에 배정되든 상관없다는 생각도 했다가,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조용한 소대에 배정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가, 결국은 그 모든 잡생각이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이어졌다. 게시판 앞에는 이미 몇몇 학생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 틈에서 익숙한 금발이 눈에 들어왔다. 차강윤이었다. "이거 봐, 강민호 대마법사님 소대다" 하고 강윤이 옆에 선 윤성재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정도면 우리 실력을 학원도 인정한다는 뜻이지." 강윤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고, 성재는 그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두 사람 다 파랑 배지 이상의 재능을 인정받은 학생들이었으니, 저런 자신감이 나올 만도 했다. 나는 그 자신감이 부럽다기보다는, 그저 낯설다고 느꼈다. 나에게는 저런 확신을 가질 자격이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나는 명단을 확인하려고 게시판 앞으로 다가갔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종이에 적힌 이름들을 하나씩 눈으로 훑었다. 그리고 내 이름을 발견한 순간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강민호 대마법사 소대 배정 명단: 차강윤, 윤성재, 유하늬, 한혜인, 이도훈] 내 이름이 강윤의 이름과 나란히 적혀 있었다. 같은 소대. 그것뿐이었는데, 어째서인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게시판의 글자는 분명 그대로 멈춰 있었는데, 내 눈에는 그 글자들이 자꾸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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