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12년 학비, 최후의 전장

3화

협곡 초입 마을에 도착했을 때, 나는 강민호 대마법사가 왜 표정을 굳혔는지 곧바로 이해했다. 마을 어귀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개 짖는 소리조차 없었다. 보통 이런 산간 마을은 낮 시간에도 가축이며 아이들 소리로 소란스러워야 정상인데, 지금 이 마을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조용했다. 마을 어귀에 세워둔 장독대 위로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고, 빨랫줄에는 마르다 만 옷가지가 바람에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 흔들림조차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그냥 조용한 게 아니라, 뭔가가 빠져나간 자리 같은데. "김노인, 마을 사람들이 어디 갔습니까" 하고 강민호 대마법사가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던 노인에게 물었다. 백발이 성성한 김노인은 이번 임무의 로컬 가이드로, 이 산간 지역 지리를 손바닥처럼 꿰고 있는 사람이었다. "산나물 캐러 산 위쪽으로 다들 올라갔습니다" 라고 김노인이 대답했지만, 그 말투에서 나는 뭔가 미묘한 불안을 느꼈다. "...평소보다 일찍 돌아올 시간인데, 아직입니다." 나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뭔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이었다. 마치 톱니 두 개가 맞물리다가 한 칸씩 어긋난 것처럼, 겉보기엔 멀쩡히 굴러가는 것 같아도 어딘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그런 느낌. 협곡 요괴 처리라는 이번 임무의 목표는 원래 협곡 안쪽의 요괴 서식지를 정리하는 것이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산나물을 캐러 간 곳이 협곡과 얼마나 가까운지 신경 쓰였다. 임무서에는 협곡 안쪽만 언급되어 있었지, 협곡 바깥의 능선까지 요괴가 넘어올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 가능성이 지금 마을의 침묵을 통해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것 같았다. "산나물 캐는 곳이 협곡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죠?" 하고 내가 김노인에게 물었다. 강윤이 옆에서 그 질문을 듣고 피식 웃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대답을 기다렸다. "...가까운 편이긴 합니다" 라고 김노인이 인정했다. "협곡 서쪽 능선을 따라 나물이 잘 자라거든요. 매해 이맘때면 다들 그쪽으로 갑니다. 워낙 나물이 좋아서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강민호 대마법사를 쳐다봤고, 그도 이미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표정이 심각해져 있었다. 나는 순간 계산을 해봤다. 협곡 안쪽 서식지에서 서쪽 능선까지의 거리, 그리고 요괴들이 보통 이동하는 속도를 감안하면, 결코 안전거리라고 부를 수 없는 위치였다. ...이거 완전 코앞이잖아. "백승훈 단장, 지금 바로 능선 쪽으로 수색을 보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하고 대마법사가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라고 백승훈 단장이 잠금쇠 갑옷을 두드리며 대답했다. "이런 조용함은 대개 좋은 신호가 아니죠. 산이 이렇게 조용할 땐, 보통 뭔가가 산 위쪽에서 아래쪽 짐승들까지 다 쫓아낸 경우가 많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까" 라고 강윤이 끼어들었다. "단순히 나물 캐다 늦어진 것뿐일 수도 있는데, 벌써부터 겁먹은 것처럼 대응하는 건 아무래도 과한 거 같습니다만. 이러다 정작 협곡 안쪽 임무 시간까지 낭비하는 거 아닙니까?"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강윤은 이론 성적으로는 학원 상위권에 속하는 학생이었고,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론과 현장의 감각은 전혀 다른 종류의 능력이었다. 나는 3년 동안 방학마다 아버지를 도와 광산 근처를 오가며 위험한 짐승들의 기척을 느끼는 데 익숙해져 있었는데, 그 경험이 지금 이 조용함 속에서 뭔가 잘못됐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했다. "짐승 소리 안 들리는 산이 제일 무서운 산이다." 그 말이 지금 이 순간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냄새가 이상합니다" 라고 나는 결국 입을 열었다. 다들 나를 쳐다봤는데, 강윤의 표정에는 이미 노골적인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냄새라니, 뭘 근거로 하는 소리야" 라고 강윤이 물었다. "...쇠 냄새 같은 게 바람에 살짝 섞여 있습니다" 라고 내가 대답하며, 코를 살짝 찡그렸다. 정확히는 피 냄새와 비슷했는데, 그걸 이 자리에서 확신 있게 말하기가 조심스러웠다. 바람이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올 때마다 아주 옅게, 마치 못을 입에 물고 있는 것 같은 그 특유의 쇳내가 스쳐 지나갔는데, 그게 단순한 착각이라면 나는 정말 겁쟁이가 맞는 셈이었다. "그건 그냥 네 착각 아니야?" 라고 강윤이 웃으며 말했다. "겁쟁이가 상상력이 풍부한 건 알아줘야겠네. 학원에서 배운 거로는 후각 강화 마법도 안 쓴 상태에서 그런 미세한 냄새를 감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나오는데." "강윤" 하고 강민호 대마법사가 낮게 그의 이름을 부르며 제지했지만, 강윤은 어깨를 으쓱하며 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저도 이도훈 학생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라고 옆에서 지켜보던 오태식이 나섰다. "우리 같은 사람들도 이런 조용함은 늘 몸으로 먼저 느끼거든요. 젊은데 감이 좋네. 나도 이 나이 되도록 산에서 밥벌이하면서, 마법 같은 거 없이도 위험한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말이 나에게는 뜻밖의 위로가 되었는데, 강민호 대마법사도 곧바로 결단을 내렸다. "백승훈 단장, 강철과 오태식은 저와 함께 능선으로 갑니다. 나머지 학생들은 마을에서 대기하되, 만약을 대비해 각자 마법 준비를 해두도록." 강윤은 그 말을 듣고도 여전히 뭔가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반박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가 입을 다무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쟤도 이제 슬슬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 건가. 한혜인이 내 옆으로 다가와 낮게 물었다. "...진짜로 뭔가 있는 것 같아?"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은 없어" 라고 내가 대답했다. "그냥, 뭔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이야. 협곡 안쪽에만 있어야 할 게, 어쩌다 여기까지 새어나온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럼 우리도 준비해야겠네" 라고 한혜인이 낮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지팡이를 고쳐 잡았다. 그 손끝이 살짝 떨리는 걸 나는 눈치챘지만,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다들 겉으론 태연한 척했지만, 그 태연함 아래에는 다들 비슷한 불안이 깔려 있었다. 마을 어귀에서 대기하는 동안, 로컬 가이드 김노인의 아들인 박도영이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려는지 야생돼지 고기를 구워 내왔다.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기름이 튀는 소리가 났고, 고소한 냄새가 마을 어귀에 퍼지면서 잠깐이지만 다들 표정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강민호 대마법사가 그 냄새에 잠깐 웃음을 보였지만, 그 여유도 오래가지 못했다. 박도영은 고기를 뒤집으며 "이런 상황에서도 먹어야 힘이 나죠" 라고 짧게 웃어 보였는데, 그 말투에조차 미묘한 긴장이 배어 있었다. 능선 쪽에서 강민호 대마법사가 돌아온 것은 반 시간쯤 지난 뒤였는데, 그의 표정은 출발할 때보다 몇 배는 더 굳어 있었다. 걸음걸이마저 평소와 달랐다. 서두르는 듯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뭔가 확실히 나쁜 소식을 안고 있는 사람 특유의 걸음이었다. "마을 사람들 발자국이 능선 중턱까지 이어져 있다가, 거기서 끊겼다" 하고 그가 말했다. "...끊긴 자리 주변에 요괴 발톱 자국이 있었다. 대량이다." 그 말이 떨어지자 마을 어귀 전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숯불 위에서 고기 굽는 소리만 계속 이어지는 게, 그 정적을 더 크게 만들었다. 나는 강윤의 표정을 슬쩍 봤는데, 조금 전까지의 비웃음이 사라지고 대신 당혹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손에 쥐고 있던 마법서를 괜히 다시 고쳐 쥐는 그의 모습에서, 방금까지의 자신감이 얼마나 빠르게 무너졌는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합니까" 라고 강윤이 처음으로 위축된 목소리로 물었다. 강민호 대마법사가 내 쪽을 잠시 바라보더니, 다시 시선을 돌려 소대 전체를 향해 말했다. "협곡 요괴 무리가 능선을 넘어 이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지금부터 전투 준비를 시작한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태식이 마을 반대편 능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낮게 소리쳤다. "...저기, 뭐가 움직입니다." 나는 그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능선 위쪽, 나무들 사이로 뭔가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개였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