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도박장 문을 처음 넘었을 때,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안은 담배 비슷한 냄새와 술 냄새로 가득했다.
탁자마다 사람들이 둘러앉아 나무패를 던지고 있었다.
웃음소리, 욕설, 동전 부딪히는 소리가 뒤섞였다.
바닥은 삐걱거렸고, 벽에는 기름등이 매달려 흔들렸다.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사람들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사라졌다.
나는 이런 공간에 와본 적이 없었다.
전생에서도, 이번 생에서도.
태호가 주인을 불렀다.
체구가 크고 눈매가 날카로운 남자였다.
이름은 몰랐다.
다들 그냥 "주인장"이라 불렀다.
"새로운 게임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태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태호의 손을 봤다.
소매 끝을 꽉 쥐고 있었다.
그도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두려운 것 같았다.
주인장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저 외지인이?"
말투에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세계에서 나는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가져온 장기판을 탁자에 올렸다.
서른두 개의 말을 늘어놓았다.
"이게 뭔데."
"장기입니다."
"장기?"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승부하는 놀이입니다."
주인장이 팔짱을 꼈다.
주변 손님 몇이 곁눈질로 우리를 쳐다봤다.
호기심과 경멸이 반쯤씩 섞인 눈빛이었다.
누군가는 코웃음을 쳤다.
"그럼 돈은 어떻게 걸어."
"판마다 은화를 걸면 됩니다."
주인장이 잠시 생각하더니, 손짓으로 손님 한 명을 불렀다.
덩치가 큰 중년 남자였다.
"이 자가 자네와 한 판 해보겠다는데."
남자가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비웃음이라기보다는, 시간 때우기라는 표정이었다.
그에게 이건 그냥 심심풀이였다.
나는 그 남자와 마주 앉았다.
오후 7시 12분.
첫 수를 두었다.
남자는 규칙을 처음 들었다.
말을 이상하게 움직였다.
나는 천천히, 실수하지 않는 수만 두었다.
손이 떨렸다.
전생에서 수천 번 두었던 수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 한 판에 태호와 태민의 목숨줄이 걸려 있었다.
그 사실이 손끝을 차갑게 만들었다.
오후 7시 40분.
판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남자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그는 자기 말이 하나씩 사라지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왜, 라는 표정이 계속 반복됐다.
오후 8시 3분.
장군.
내가 이겼다.
주변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러다 웅성거림이 커졌다.
"쟤 뭐야."
"저 게임 뭔데 저렇게 빨리 끝나."
"저 남자 저거 이 판에서 십 년 넘게 놀던 사람인데."
주인장이 은화를 태호에게 건넸다.
표정은 여전히 냉소적이었다.
"운이 좋았던 걸 수도 있지."
"내일도 오겠습니다."
태호가 대답했다.
주인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손을 휘휘 저었다.
관심 없다는 뜻이었다.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날 밤, 오두막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무도 말이 없었다.
은화 세 개가 태호의 주머니에서 짤랑거렸다.
달이 없는 밤이었다.
길바닥 돌부리에 몇 번이나 발이 걸렸다.
그래도 아무도 불을 밝히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편했다.
"믿기지가 않아."
태민이 중얼거렸다.
"뭐가."
내가 물었다.
"형이... 아니, 네가 진짜로 이길 줄은 몰랐어."
태민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오랜만에 듣는 웃음이었다.
다음 날, 나는 다시 그 남자와 대국했다.
오후 6시 50분.
또 이겼다.
그 남자는 어제보다 신중했다.
하지만 신중함만으로 채울 수 없는 격차가 있었다.
장기는 마음가짐으로 이기는 게임이 아니었다.
그 다음 날도.
오후 7시 5분.
또 이겼다.
세 번째 판이 끝나자, 남자가 판을 뒤엎었다.
나무말들이 바닥에 튀었다.
몇 개는 탁자 밑으로 굴러 들어갔다.
사람들이 놀라 뒤로 물러섰다.
"이거 사기야!"
남자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목에 핏줄이 섰다.
당장이라도 나를 향해 손을 뻗을 것 같은 기세였다.
주인장이 다가와 판을 살폈다.
말의 배치, 움직인 흔적,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규칙대로 뒀는데 뭐가 사기야."
주인장의 말에 남자는 씩씩거리며 자리를 떴다.
떠나는 그의 등을 보며 나는 숨을 조금 내쉬었다.
이제야 심장이 정상 속도로 뛰는 것 같았다.
이겼다는 사실보다, 큰일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 안심이 됐다.
그때부터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외지인이 이상한 놀이로 사람을 이긴대."
"머리로 하는 거라던데?"
"주인장도 못 이긴다더라."
손님 몇 명이 나에게 도전하겠다며 줄을 섰다.
첫 번째 도전자는 대국을 시작하고 열 수도 못 버티고 무너졌다.
두 번째 도전자는 아예 규칙을 이해하지 못한 채 시간만 끌었다.
세 번째 도전자는 판이 불리해지자 스스로 자리를 떴다.
이겨도, 이겨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숫자만 조금씩 늘어날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꾸 불안했다.
이렇게 계속 이겨도 되는 걸까.
주인장이 언젠가 판을 뒤집으면 어쩌지.
태호와 태민의 빚은, 이 속도로 갚을 수 있는 걸까.
계산을 해봤다.
하루 은화 세 개.
한 달이면 은화 아흔 개.
은화 백 개가 금화 한 개.
한 달에 겨우 금화 하나.
빚은 스물일곱.
이 속도로도 이 년 넘게 걸린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숫자가 문제였다.
아무리 이겨도, 숫자는 정직했다.
정직한 숫자가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 세계에 와서야 알았다.
이대로라면 태호는 서른이 넘어서까지 이 빚을 갚아야 한다.
태민은 그보다 더 오래.
나는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태호 형."
나는 그날 밤 조심스럽게 물었다.
"판돈을 더 크게 걸 수는 없어요?"
태호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눈빛에는 두 가지가 섞여 있었다.
하나는 놀라움.
다른 하나는, 나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게 아니라는 인정.
"위험해."
"알아요. 그런데..."
"만약 지면 우리한테 남은 게 없어."
그의 목소리에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건 오두막 한 채와 이 세 사람뿐이었다.
그마저 잃으면,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나도 그 두려움을 알았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딱 한 번만요."
"..."
태호가 오랫동안 침묵했다.
등잔불이 흔들리는 소리만 들렸다.
태호의 손가락이 무릎을 몇 번이나 두드렸다.
결심이 아니라, 결심을 미루는 소리였다.
"태민이 생각도 들어보자."
태민은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해요, 형. 지금까지 잘 됐잖아."
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건 신뢰라기보다, 조급함처럼 보였다.
태민은 며칠 전부터 부쩍 말이 많아졌다.
빚을 다 갚으면 뭘 하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지만, 말리지 않았다.
나는 그 조급함이 조금 불편했다.
하지만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나 역시 판돈을 올리자고 먼저 꺼낸 사람이었으니까.
다음 날, 우리는 주인장에게 판돈을 올리겠다고 말했다.
은화 세 개에서, 은화 열 개로.
주인장의 눈이 처음으로 흥미롭게 빛났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는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다를 것 같았다.
"좋아. 대신 상대는 내가 고른다."
그 말에 태호의 얼굴이 굳었다.
나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지금까지 상대는 손님 중에서 아무나였다.
주인장이 직접 고른다는 건, 다른 의미였다.
주인장이 손짓으로 누군가를 불렀다.
뒤쪽 자리에서 뚱뚱한 청년이 느릿느릿 걸어나왔다.
비단옷을 입고, 손가락마다 반지를 낀 남자였다.
걸음걸이부터 달랐다.
서두르지 않았다.
자기가 이 도박장에서 어떤 위치인지 아는 사람의 걸음이었다.
"이 도박장에서 손 안 대본 게임이 없는 분이지."
주인장이 그를 소개했다.
그 청년의 이름은 오승재였다.
오승재가 나를 보며 실실 웃었다.
"내가 이거 처음 해보는 건데... 재밌겠네."
그의 시선이 나를 훑었다.
사람이 아니라, 물건을 감정하는 눈이었다.
값을 매기는 눈.
판이 깔렸다.
말이 놓였다.
주변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누군가는 벌써 오승재 쪽에 돈을 걸겠다고 소리쳤다.
아무도 내 쪽에 걸지 않았다.
첫 수를 두기 직전, 오승재가 은화 열 개를 탁자 위에 올렸다.
은화가 부딪혀 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 소리가 심장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자, 시작해볼까."
나는 심장이 조여드는 걸 느꼈다.
이건 지금까지와 다른 판이었다.
지금까지의 상대들은 규칙조차 몰랐다.
그런데 이 남자는, 눈빛부터 달랐다.
장기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알고 있는 눈이었다.
태호가 내 옆에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괜찮겠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괜찮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물러날 수도 없었다.
오승재의 손가락이 반지를 만지며 말 하나를 집었다.
움직임이 느긋했다.
그 여유가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다.
첫 수가 놓였다.
나는 판을 내려다봤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수였다.
초보자의 수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