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연회장 안은 샹들리에의 황금빛과 은식기가 부딪치는 소리로 가득 채워져 있었으나, 상석 앞에 선 서율의 세계는 오직 도면 한 장으로 좁혀져 있었다. 그녀가 탁자 위에 도면을 펼쳐놓는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는데,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밤을 새워가며 계산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던 손목의 피로 때문이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뜻밖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청하 등대의 중심 태엽축은 삼백 년 전 초창기 설계 그대로이며, 최근 이상 진동은 그 태엽축 내부의 균열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수리하지 않으면, 다음 폭풍우 때 등대 상단부가 통째로 붕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연회장 안에는 잠시 물결처럼 웅성거림이 일었다. 처음에는 순수한 놀라움이었으나, 그 놀라움은 금세 냉소로 발효되어 곳곳에서 낮은 목소리로 퍼져 나갔다.
"파혼당한 영애가, 이제는 기술자 흉내까지 내는군."
"등대지기들도 삼십 년을 살아도 모르는 걸, 저 아가씨가 안다니 참으로 신통하지 않습니까."
누군가의 조롱이 던져지자 몇몇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고, 부채를 든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소리를 죽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 웃음소리들은 서율의 귓가를 예리한 바늘처럼 긁고 지나갔으나, 그녀는 눈을 내리깔지 않았다. 손끝으로 도면의 균열선을 짚은 채로, 턱을 조금 더 곧게 세웠을 뿐이었다.
*저들이 웃어도, 태엽축은 웃지 않는다.*
그 순간 상석 한쪽에서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유하진이 자리에서 일어선 것이었다.
"흉내가 아니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연회장 전체의 소음을 단번에 걷어내는 힘이 있었다. 마치 물속에 던져진 돌 하나가 잔물결을 모두 잠재우는 것처럼, 좌중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는 시선을 서율의 도면에서 거두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이 영애가 지적한 균열 부위는, 내가 데려간 청하 등대지기가 이십칠 년을 지키면서도 알아내지 못한 것이었다. 그것을 이 자리에서 조롱할 자격이 있는 자가 있다면, 앞으로 나와 직접 그 태엽축을 살펴보라."
그의 말에 연회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방금까지 웃음을 흘리던 이들의 얼굴빛이 하나둘 희게 질려가는 것이 보였고, 감독관들 사이에서는 서로 시선을 피하며 부채로 얼굴을 가리는 낮은 움직임이 번져갔다. 누구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태엽축을 직접 살펴보라는 말이 곧 자신의 무지를 증명하는 자리가 될 것을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었다.
서율은 유하진의 담담한 지지에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안도라기보다는, 오래 굽어 있던 어깨뼈가 처음으로 곧게 펴지는 듯한 감각이었다. 그녀는 도면 위의 균열 부위를 다시 손끝으로 짚어 보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 부분에 새로운 마정석 코어를 삽입하고, 태엽축을 재조립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여기 적어두었습니다. 인부는 최소 여섯, 작업 기간은 열흘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보다 지체될 경우 다음 만조 때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그녀의 설명은 짧고 정확했으며, 그 어떤 수사도 곁들이지 않은 채 오직 사실만을 전달했다. 감정을 배제한 그 담백함이 오히려 몇몇 감독관들의 표정을 신중하게 바꾸어놓았는데, 방금 전까지 조롱의 표정을 짓던 얼굴들 위로 계산하는 듯한 그늘이 스치고 지나갔다.
연회장 뒤쪽 기둥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순덕이 낮게 중얼거렸다.
"저 아가씨, 정말 물건이구먼."
옆에 서 있던 다른 시종이 곁눈질로 순덕을 흘겼으나, 순덕은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감탄했다. 마치 오래 묵혀둔 술이 뜻밖에 좋은 맛을 낸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그 눈빛에는 순수한 놀라움이 담겨 있었다.
침묵 속에서 감독관 하나가 마지못해 손을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묻는다기보다는 확인을 구하는 듯한 조심스러운 어조였다.
"그럼, 그 수리를 영애께서 직접 맡으신다는 겁니까."
서율이 고개를 끄덕이자, 연회장 안에는 다시 낮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그러나 이번의 웅성거림은 아까와는 성질이 달랐다. 조롱보다는 놀라움이, 놀라움보다는 계산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파혼당한 영애가 기술자의 자리에 서서 태연히 견적을 읊는 모습을, 그들은 이제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유하진이 그 물음에 짧게 답을 덧붙였다.
"이미 계약은 성립되었다. 청하의 예산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 한마디는 못을 박듯 단호했다. 더 이상의 반문은 필요 없다는 뜻이었고, 실제로 아무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 한마디로 연회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서율을 향하던 시선들 속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경멸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은 낯설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 굶주렸던 것을 뒤늦게 채우는 듯한 기묘한 만족감이 그녀의 가슴 한쪽에 조용히 번져갔다.
*이렇게도, 사람들이 나를 볼 수 있구나.*
그 생각이 채 온전히 마무리되기도 전에, 연회장 입구 쪽에서 흐르던 현악 선율이 갑작스레 멈추었다. 마치 누군가의 손이 현을 강제로 눌러 끊어놓은 것처럼, 음이 뭉텅 잘려나갔고, 그 부자연스러운 정적을 시종장의 낭랑한 목소리가 채웠다.
"왕도에서 귀빈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그 이름이 울리는 순간, 연회장 안의 시선들은 마치 물결이 방향을 바꾸듯 일제히 입구 쪽으로 쏠렸다. 방금까지 서율에게 쏟아지던 관심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는데, 그것은 마치 밀물이 밀려 나가듯 일순간의 일이었다. 부채를 접던 손들, 잔을 기울이던 손들, 낮게 속삭이던 입술들이 일제히 한 방향을 향해 정지했다.
문틈 사이로 화려한 진홍빛 드레스를 걸친 여인의 자락이 어렴풋이 비쳤다. 걸음걸이는 서두르는 기색 없이 우아했으나, 그 걸음 하나하나가 연회장의 공기를 팽팽하게 조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물속에 던져진 또 하나의 돌이, 이번에는 방금 잠재워졌던 물결을 정반대 방향으로 새롭게 일으키는 것 같았다.
서율은 도면을 손에 쥔 채로, 자신이 방금 힘겹게 붙잡았던 주목이 순식간에 다른 이에게로 옮겨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입술을 짧게 깨물었으나, 그 표정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으려 고개를 살짝 숙였다. 손안의 도면 가장자리가 손가락 힘에 눌려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유하진의 시선 또한 입구 쪽으로 향해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평소의 무심함과는 다른,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한 미묘한 긴장이 서려 있었는데, 그것은 반가움도 불쾌함도 아닌, 오래전에 접어두었던 계산을 다시 펼쳐야 하는 자의 눈빛이었다. 턱 끝이 살짝 굳었고, 잔을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서율의 눈에도 언뜻 비쳤다.
순덕은 뒤쪽 기둥 곁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며 낮게 숨을 삼켰다. 방금까지 서율을 향해 감탄하던 얼굴에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긴장이 스며들었으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그녀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연회장 문이 완전히 열리며, 그 화려한 등장의 실체가 서율의 눈앞에 완전히 드러나려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