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완벽해서, 버려졌다

1화

청명 왕립 아카데미 영지경영학과 실습단장 선발 결과는 게시판에 붙는 순서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 학과장이 직접 이름을 부르는 방식으로 발표된다. 강당 안의 조명은 늘 그렇듯 필요 이상으로 밝았다. 나는 그 밝은 조명 아래에서 삼 년째 같은 자리, 앞에서 두 번째 줄 정중앙에 앉아 있었다. 그 자리는 언제부턴가 내 자리처럼 되어버렸다. 아무도 거기 앉으려 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삼 년 연속 첫 번째로 불렸다. 그래서 이번에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학과장이 서류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종이가 스치는 소리 하나에도 온 신경이 곤두섰다. 나는 무릎 위에 얹어둔 손에 힘을 주었다.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삼 년 동안 반복된 동작이었으니, 이번에도 몸이 먼저 그렇게 움직였다. '선하은.' 학과장이 그렇게 불렀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이미 무릎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이상했다. '보좌관으로 배정한다.' 음? 나는 다시 앉았다. 몸이 의자에 닿는 감각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익숙했던 자세인데, 순간적으로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귓속에서 그 두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보좌관. 보좌관이라니. 그런데 학과장은 이어서 다른 이름을 불렀고, 그 이름이 이번 학기 실습단장이 되었다. 삼 년 만에 처음으로, 내 이름이 첫 번째로 불리지 않은 순간이었다. 강당 안이 조용해졌다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다들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등 뒤로, 옆자리로, 심지어 저 앞줄에서도 고개를 돌리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표정을 관리하려고 애썼지만, 손끝이 차가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손가락 끝의 온도가 떨어지는 게, 마치 내 몸이 먼저 사태를 파악하고 반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지.' 머릿속으로 이유를 하나씩 짚어봤다. 성적이 떨어진 것도 아니었고, 실습 평가에서 감점을 받은 일도 없었다. 지난 학기 말 평가서에는 최우수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학과장이 뭔가 다른 기준을 세웠다는 것. 실습단장이라는 자리는 성적이 아니라 '통솔력'을 보는 자리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었다. 통솔력이라니, 삼 년 동안 후배들 실습 조를 짜준 게 나였는데. 신입생들이 실습장에서 헤매지 않도록 동선을 짜고, 조 편성이 틀어질 때마다 다시 맞춰 넣은 것도 나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통솔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는 건가.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 뽑힌 단장에게 짧게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가 오히려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마치 자기가 무언가 잘못한 사람처럼. '아니, 저는 그냥…' 나는 말을 끊었다. '괜찮습니다.' 안 괜찮았지만, 그렇게 말할 이유는 없었다. 여기서 내가 불편한 기색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면, 그건 곧 소문이 되어 퍼질 것이다. 선하은이 실습단장 자리를 놓치고 흔들렸다더라. 그런 소문이 생기는 것보다는, 그냥 담담하게 넘기는 게 나았다. 내 아버지, 선씨 백작가의 가주는 딸에게 딱 하나만 요구했다. 완벽할 것. 아버지는 성적표를 볼 때도 웃는 법이 없었다. 일등이면 당연한 결과였고, 이등이면 그날 저녁 식사 시간이 조용해졌다. 나는 그 조용함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았다. 그래서 초등 과정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등을 해본 적이 없었다. 강태윤과 짝을 이루기 시작한 이후로는 더 그랬다. 우리는 늘 함께 일등이었고, 함께 완벽했다. 그런데 오늘, 그 완벽함의 한쪽 축이 갑자기 무너진 것이다. 강당을 나서면서 나는 태윤을 찾았다. 눈으로 그의 자리를 훑었다. 이런 날엔 그가 옆에서 뭐라고든 한마디 해줘야 마음이 정리가 되는데, 그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가 앉았던 방석까지 유난히 텅 비어 보였다. '또 어디 간 거야.' 나는 휴대용 통신구를 꺼내 그에게 연락을 넣으려던 참이었다. 통신구의 표면이 손바닥 안에서 차갑게 느껴졌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같은 학과 동기인 리에나였다. 그녀의 얼굴이 이상하게 흥분해 있었다. 볼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숨소리도 평소보다 빨랐다. 마치 뛰어온 사람처럼. '하은, 너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태윤 선배 말이야. 아까 서쪽 숲 실습장에서 무슨 사고가 났었대. 마차가 뒤집혔는데, 그 안에 여학생이 하나 있었나 봐. 태윤 선배가 직접 뛰어들어서 구했대.' 나는 잠시 멈췄다. 발걸음이 저절로 멈춰졌다. '언제.' '방금. 삼십 분도 안 됐어. 지금 다들 그 얘기로 난리야. 복도 나가면 애들이 죄다 그 얘기만 하고 있어.' 마차 사고. 태윤이 사람을 구했다는 것. 그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위험을 보면 몸이 먼저 나가는 성격이었으니까. 나는 그런 그를 몇 번이나 말린 적도 있었다. '네가 뭐라고 다 나서, 위험하잖아.' 그럴 때마다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네가 있는 거잖아, 나 말리려고.' 그런데 왜, 내가 실습단장 자리를 잃은 바로 그 순간에, 이 이야기가 전해지는 걸까. 우연이라면 그냥 우연으로 넘기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 하루의 흐름이 지나치게 딱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미리 짜놓은 각본처럼. '구한 사람이 누군데.' 나는 물었다. 리에나가 목소리를 낮췄다. 주변을 한 번 살피는 듯한 몸짓이었다. '이번에 새로 편입한 애 있잖아. 남작가 영애라던데. 이름이…' 그녀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윤서아.' 나는 그 이름을 처음 들었다. 낯선 세 글자였다. 그런데도 왜인지, 오늘 이후로 그 이름을 자주 듣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신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태윤에게 연락을 넣어야 하는데, 손가락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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