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완벽한 낙제 영애

4화

오빠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 나는 몸을 일으켜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옷깃을 매만지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떨림을 감추려 손을 몇 번이나 쥐었다 폈다. 무너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오빠 앞에서는. '괜찮은 척은 잘하잖아. 늘 그래왔으니까.' 거울 속의 나는 낯설 만큼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붉어진 눈가만 아니라면, 방금 전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보일 정도였다. 나는 그 얼굴을 몇 번이고 확인한 뒤, 방문을 열었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하녀들이 나를 보고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궁에서 있었던 일이 이미 저택 안에 퍼진 모양이었다. '그렇겠지. 소문이 얼마나 빠른데.' 응접실로 내려가자, 진하준이 갑주를 벗은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에도 흐트러짐은 없었다. 짙은 눈썹, 곧게 뻗은 콧대. 아버지를 닮은 얼굴이었다. 다섯 살 위인 오빠는, 어릴 적부터 무엇을 하든 완벽했다. 검술도, 학문도, 사교도.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가문의 후계자로서, 그는 태어날 때부터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나는 문득 그 완벽함이 낯설게 느껴졌다. 오늘만큼은, 유독. "서윤아." 그가 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소리에는 반가움과 걱정이 함께 섞여 있었다. "들었다. 궁에서 있었던 일." 나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입꼬리를 끌어 올리는 데 온 힘을 다 써야 했다. "오빠도 벌써 알아버렸구나." "궁 안 소문이 그새 여기까지 왔으니." 그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의 시선이 내 얼굴을 살피듯 훑고 지나갔다. "괜찮으냐." 그 물음에, 나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괜찮다고 해야 하나. 아니라고 해야 하나.' 무엇을 말해도 거짓말이 될 것 같았다. "……잘 모르겠어." 솔직한 답이었다. 오빠는 잠시 나를 응시하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소파의 가죽이 낮게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그 작은 소리마저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아버지께서 파기를 거부하라 하셨다지." "어떻게 알아." "방금 서재에서 나오는 길에 들었다." 오빠의 목소리에 걱정이 섞여 있었다. "쉽지 않은 길이 될 거다." "알아." 나는 짧게 답했다. 오빠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서윤아, 너는 이미 충분히 잘해왔다. 학문에서도, 예법에서도." "어릴 때부터 지켜봤다. 밤새 책상 앞에 앉아 있던 것도, 검술 교본을 몇 번이나 읽던 것도." 그 말이 위로처럼 들려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가슴 한쪽이 더 아려왔다. 오빠는 언제나 나를 다독여주려 했다. 하지만 그 다독임 안에는, 늘 그와 나 사이의 격차가 함께 담겨 있었다. 그는 완벽했고, 나는 그저 노력해온 사람이었다. 노력이라는 말 자체가, 오늘은 유독 초라하게 들렸다. "오빠는 늘 그래." 나는 조용히 말했다. "뭐가." "위로를 하는데, 결국 나는 오빠만큼은 아니라는 걸 다시 확인시켜줘." 오빠의 표정이 굳었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 "알아. 오빠 잘못이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오늘은 그런 말도 다 힘들게 들려서 그래." 방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벽난로의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여동생 진서은이었다. 분홍빛이 감도는 갈색 머리, 큰 눈망울. 어머니를 닮은 사랑스러운 얼굴.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뛰어와 안겼다. 작은 몸에서 향긋한 꽃 냄새가 났다. "언니, 정말이에요? 왕태자 전하께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짧게 답했다. "그래." 서은의 눈이 커졌다.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언니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서은은 내 팔을 붙잡고 흔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깟 한소이가 뭐라고요! 언니가 훨씬 낫잖아요!" 그녀의 위로는 진심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더 씁쓸했다. 서은은 늘 부모님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받는 아이였다. 노력하지 않아도, 그저 웃는 것만으로도 사랑받았다. 나는 그 반대편에 서 있었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 그리고 오늘, 그 노력마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언니,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서은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언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잖아요." 그 말에, 나는 그저 웃어 보였다. 웃음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오빠는 완벽하고, 동생은 사랑스럽고. 그 사이에서 나는 무엇이었을까. 노력으로 쌓아 올린 자격조차, 결국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것이었다면. 오빠는 그런 나와 서은을 잠자코 바라보다가, 낮게 말했다. "서은아, 오늘은 언니를 좀 쉬게 해주자." "네? 아……" 서은이 그제야 눈치를 채고 내 손을 놓았다. "언니, 미안해요. 제가 너무 정신없었죠." "아니야. 괜찮아." 나는 서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 다정함이, 오늘만큼은 버겁게 느껴졌다. 방으로 돌아가는 길, 오빠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서윤아." 돌아보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네 뒤에는 내가 있다." 그 말에 나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단을 올랐다. '뒤에 있다는 말이, 오늘은 왜 이렇게 멀게 들리는지.' 그날 밤, 나는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창밖으로 달빛이 방 안을 비추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도 눈이 감기지 않았다. 이헌의 얼굴이, 한소이의 얼굴이, 왕비의 차가운 눈빛이 자꾸만 떠올랐다. '파기를 거부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전하는 이미 마음을 정한 것 같았는데.' 생각이 이어질수록 숨이 조금씩 가빠졌다. 손끝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탁자 위 촛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한 번, 두 번. 불꽃이 좌우로 크게 휘청였다.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손을 말아 쥐었다. '이럴 때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숨을 길게 내쉬자, 촛불이 다시 잔잔해졌다. 하지만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아버지의 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혼약 파기를 거부하겠다는 뜻을, 궁에 전해야 했다. 서재에서 나오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등 뒤로 낮게 울렸다. "이 일이 알려지면, 궁 안이 조용하지 않을 거다." 나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소식이 알려지면, 이헌과 한소이, 그리고 왕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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