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지환을 조율한 다음 날부터, 마탑 내부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감시관들이었다. 원래는 하루에 두어 번, 그것도 형식적으로 지나가던 순찰이 이제는 시간을 정해놓은 것처럼 규칙적으로 돌았다. 발소리부터가 달랐다. 예전엔 그냥 걸어 다니는 소리였는데, 지금은 뭔가를 찾는 것처럼 느릿느릿, 신경질적으로 끌리는 소리였다.
연구실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빛도 예전과 달랐다. 힐끗, 스쳐 지나가듯 보던 시선이 이제는 대놓고 머물렀다.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내 뒤에 있는 문을, 그 문 너머의 공간을 훑는 눈빛이었다.
마력 반응이 감지됐다는 소문이 이미 마탑 전체에 퍼진 모양이었다. 어디서 시작된 건지는 몰라도, 이 정도로 빨리, 이 정도로 넓게 퍼진 걸 보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흘렸다고 봐야 했다. 진원지가 어디인지는 아직 특정되지 않은 것 같았지만, 그건 시간문제였다. 마탑 사람들은 하나같이 코가 개보다 좋았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지환은 상자 깊숙이 숨겨두고, 상자 위에 낡은 마법서 몇 권을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누가 봐도 정리 안 된 잡동사니처럼 보이게. 평소보다 늦게 마탑에 들어가고, 일찍 나왔다. 발걸음 소리도 줄이려고 애썼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어쩌겠어. 목숨이 걸린 일인데.
그런데 이상한 건, 마탑 밖으로 나가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학원 쪽에서도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가 느껴졌다.
강나은 무리의 시선이 예전보다 더 집요해졌다. 그냥 눈에 거슬려서 괴롭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뭔가를 캐내려는, 확인하려는 눈빛이었다. 마치 내가 뭘 감추고 있는지 알아내면 그걸로 나를 완전히 끝장낼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계단에서 밀친 게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윤이헌이 나를 구해주면서 나은의 입장이 좀 애매해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 때문에 더 예민해진 걸지도 몰랐다. 사람이 한 번 실패하면 다음번엔 더 확실한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법이니까.
"서하윤 영애, 요즘 밤늦게 어디 다녀오세요?"
복도에서 마주친 나은의 무리 중 하나가 슬쩍 던진 질문이었다.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눈빛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나는 순간 표정이 굳는 걸 감추려 애썼다.
"그냥 개인적인 일이에요."
"개인적인 일이 마탑 근처라는 게 좀 특이하네요."
뭐야. 이거 진짜 들킨 건가.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속으로는 온갖 계산이 빠르게 돌아갔다. 마탑 근처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누가 봤나. 아니면 그냥 찍어서 던진 말인가.
"거기 볼일이 좀 있어서요. 그게 이상한 일인가요?"
"아니요, 뭐. 그냥 궁금해서요."
궁금한 게 아니라 확인하려는 거겠지. 나는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며 자리를 떴다. 등 뒤로 낮은 웃음소리가 따라붙었다. 그 웃음소리가 등에 착 달라붙는 것 같아서, 기숙사로 돌아가는 내내 목덜미가 서늘했다.
그날 저녁, 나는 오빠 서준혁을 찾아갔다. 2왕자의 경호를 맡고 있는 오빠라면, 마탑 내부 소문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오빠 얼굴을 보고 나면 좀 안심이 될 것 같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그랬으니까.
왕궁 별관은 늘 조용했다. 복도를 걸을 때마다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오빠의 사무실은 별관 한쪽 끝, 가장 안쪽에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낮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들어와."
오빠는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촛불 하나만 켜놓은 채였다. 나를 보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시간에 여긴 왜 왔어?"
"오빠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나는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최근 마탑에서 있었던 이상 반응 소문에 대해 물었다. 최대한 내가 관련 있다는 걸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목소리도 딱 궁금해하는 정도로만 맞췄다.
오빠는 잠시 침묵하다가, 서류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그런 소문이 있긴 한데, 자세한 내용은 나도 몰라. 왜, 무슨 일 있어?"
"그냥 궁금해서. 요즘 마탑 근처 지나갈 때마다 감시관들이 부쩍 늘었더라고."
오빠는 나를 잠시 응시했다. 뭔가를 살피는 듯한 눈빛이었는데, 예전에는 없던 낌새였다. 오빠는 원래 이런 눈으로 나를 본 적이 없었다. 늘 그냥 동생 보듯이, 걱정 반 귀찮음 반 그런 눈빛이었는데.
"너, 요즘 연구실에 자주 들락거린다며."
순간 몸이 굳었다. 숨을 한 번 삼켰다.
"그걸 어떻게 알아?"
"소문 들었어. 조심해. 마탑 안에서도 요즘 눈들이 많으니까."
오빠의 말투는 걱정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오빠의 손끝이, 서류를 정리하다 말고 살짝 멈춰 있는 게 보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봤다.
오빠가 마탑 소문에 대해 안다는 건, 누군가 그 정보를 흘렸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 정보가 왜 오빠 귀에까지 들어갔을까. 오빠는 마탑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이런 세부적인 내부 소문까지 접할 만한 위치는 아니었다. 2왕자 경호가 주된 업무였으니까.
"오빠가 그런 소문을 어디서 들었는데?"
"그냥, 이곳저곳에서."
대답이 너무 모호했다. 나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이곳저곳이라니. 오빠는 원래 이렇게 대충 대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뭐든 정확하게, 딱딱하게 말하는 게 오빠 스타일이었는데.
오빠 서준혁은 2왕자의 경호를 담당하며 마탑에서도 일을 하는, 나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릴 때부터 오빠는 늘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었고, 이 삭막한 왕궁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핏줄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의 눈빛에서 뭔가 숨기는 게 느껴졌다.
설마.
오빠가 내 연구실 위치를 누군가에게 흘린 건가.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딱히 떠오르지도 않았고. 하지만 의심의 씨앗이 한번 심어지면, 그건 물을 주지 않아도 저 혼자 자라난다.
"오빠, 혹시 내 연구실 위치를 다른 사람한테 말한 적 있어?"
직접적으로 물었다. 돌려 말할 여유가 없었다. 오빠의 표정이 순간 흔들렸다.
짧은 정지였지만, 나는 분명히 봤다. 눈동자가 살짝 커지고, 입술이 뭔가 말하려다 멈추고.
"…무슨 소리야. 내가 왜 그런 걸 말하겠어."
대답이 늦었다. 그리고 부자연스러웠다. 오빠는 늘 대답이 빨랐는데. 특히 나한테는.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여기서 캐물어봤자 진실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오빠 얼굴에서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다만 그 답이 무엇인지, 왜 그런 답이 나왔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아니야, 그냥 물어본 거야. 나 갈게."
일부러 가볍게,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을 나서며, 나는 뒤통수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오빠가 정말 내 비밀을 흘린 거라면, 대체 누구에게, 왜.
그리고 그 정보가 흘러간 끝에, 강나은의 무리가 마탑 근처를 캐묻고 다닌다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이 모든 게 우연히 겹쳤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내 직감은 우연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왕궁 별관을 나서는 계단에서,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냥 발걸음이 무거워서였을까, 아니면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서였을까.
오빠 사무실의 창문 너머로, 오빠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표정이 어두웠다. 그리고 다급했다. 손짓까지 섞어가며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 상대가 누군지는 창문 밖에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오랫동안 그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관 복도의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오빠의 그림자도 함께 흔들렸다. 그 그림자가 낯설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