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재투성이 천재 장인

4화

발목의 통증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뒤, 나는 다시 마탑으로 향했다. 밤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낮에 있었던 일이 계속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지환의 상태가 더 신경 쓰였다. 발목이야 며칠 지나면 나을 거고, 지환은 그렇지가 않으니까. 마탑 정문을 지나 후미진 계단을 오르는 동안, 나는 몇 번이고 걸음을 멈췄다. 이 시간에 연구실에 들어가는 걸 누군가에게 들키면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야근이라고 하면 되나. 그래, 야근이라고 하자. 마탑 연구원치고 야근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연구실 문을 열자마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공기가 무거웠다. 마치 뭔가가 팽창하려는 직전의 긴장감 같은. 온도는 그대로인데 왠지 방 안 전체가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걸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지환이 놓인 책상으로 다가가자, 그 위태로운 기운이 더 강해졌다. 반지 형태의 마도구는 표면에서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눈으로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손을 가까이 대면 확실히 느껴지는 떨림이었다. 이거, 어제보다 심해졌잖아. 나는 조심스럽게 지환을 들어 올렸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이 불규칙했다. 원래 설계도상으로는 절대 이런 식으로 움직여선 안 되는데. 마력이라는 건 물처럼 흘러야 하는 거지, 이렇게 제멋대로 튀어 오르면 안 되는 거였다. 마탑 규정상, 이상 반응을 감지한 마도구는 즉시 상급 연구자에게 보고해야 한다. 규정은 규정이니까. 나도 그 정도는 안다. 마탑에 들어온 첫날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다. 하지만 지금 보고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지환의 정체가 알려지는 순간, 그 유물을 둘러싼 정치적 다툼이 시작될 거다. 이건 그냥 마도구가 아니라, 고대 왕실의 유산이라는 소문이 있는 물건이니까. "이 반지가 진짜라면, 그 가치는 백작가 하나를 통째로 살 수 있을 정도일 거다." 예전에 어느 원로 연구원이 지나가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서 백작가와 강 백작가 사이의 오래된 갈등에 이 물건이 또 하나의 불씨가 될 수도 있었다. 두 가문은 수십 년째 서로를 물어뜯을 기회만 노리고 있었으니까. 이런 걸 손에 넣으면 어느 쪽이든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다. 어쩌지. 보고하면 안전하겠지만, 내 손에서 이 물건이 떠나면 그 뒤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상급 연구자에게 넘기는 순간부터, 이건 더 이상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게 된다. 누군가는 이걸 이용해서 가문의 입지를 다지려 할 거고, 또 누군가는 이걸 감추려 할 거다. 그 사이에서 지환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거고. 결국 나는 규칙을 어기기로 했다. 내가 직접 안정시켜 보자. 마도구 설계에 관한 지식이라면, 여기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내 손으로 만든 물건이 아니라도, 구조만 파악하면 어떻게든 조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해 보기 전에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지환을 작업대 위에 올려놓고, 마력 감지용 도구를 꺼내 표면의 문양을 하나하나 스캔하기 시작했다. 렌즈 너머로 보이는 문양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이런 세밀한 각인이 어떻게 반지만 한 크기에 다 들어갔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게 집중했다. 목이 뻐근해질 때쯤 손등으로 눈을 한 번 문지르고, 다시 렌즈에 눈을 붙였다. 배가 고팠지만 지금 밥 생각이 나겠나. 마침내 문양의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회로가 세 개의 층으로 겹쳐져 있었고, 그 중 가장 안쪽 층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건 마력 과부하다. 뭔가가 지환 안으로 계속 마력을 밀어넣고 있는 거야. 그런데 대체 어디서? 지환은 지금 잠긴 상자 안에 보관되어 있었을 텐데. 외부에서 마력을 주입할 통로가 있을 리 없는데, 그럼 이게 스스로 마력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소린가. 그것도 말이 안 되긴 하지만, 지금 이 물건 자체가 말이 안 되는 물건이니까. 나는 지환의 안쪽 회로를 조심스럽게 조율하기 시작했다. 손끝으로 마력을 흘려보내며, 불안정한 흐름을 하나씩 안정시켰다. 손이 떨렸다. 실패하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최악의 경우 폭발할 수도 있는 물건이었으니까. 이 연구실 하나쯤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럼 나도 같이 날아가는 거고. 그런 생각을 하니까 오히려 손이 더 안정되는 것 같기도 했다. 웃긴 일이지만.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이미 절반 넘게 조율해 놓은 걸 여기서 그만두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마지막 문양을 조율하는 순간, 지환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꺼풀 안쪽까지 붉은 빛이 스며드는 게 느껴졌다. 빛이 사그라들고 눈을 뜨자, 지환은 다시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진동도, 불안정한 마력도 모두 사라졌다. 됐다. 성공이야. 안도감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손끝이 아직도 저릿저릿했다. 이렇게 긴장한 채로 몇 시간을 버텼는지, 지금이야 실감이 났다. 그런데 그 순간, 연구실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그대로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지환을 상자에 넣고 자물쇠를 걸었다. 손이 떨려서 자물쇠가 두 번이나 미끄러졌다. 겨우 세 번째에 걸려 딸깍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고, 마탑의 감시관 중 한 명이 들어왔다. 평소 이 시간엔 오지 않는 사람이었다. "서 연구원, 늦은 시간까지 뭐 하고 있어요?" 목소리에 특별한 의심이 담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냥 보고서 정리 좀 하고 있었어요."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감시관은 방을 한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이 상자 쪽으로 스치듯 지나갔다가, 다시 내게로 돌아왔다. "방금 마탑 전체에 이상 마력 반응이 감지됐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이 근처인 것 같아서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감지됐다고? 벌써? 전체에? 그럼 이 방만이 아니라 마탑 전체가 알아챈 거란 소린가. 그럼 상부에도 이미 보고가 올라갔을 텐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여기선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게 신경 쓰면서 말했다. 이런 순간에 표정 관리는 또 왜 이렇게 어려운지. 감시관은 나를 잠시 응시했다. 그 시선이 뭔가를 캐내려는 것 같아서, 나는 애써 무심한 얼굴을 유지했다. 몇 초가 몇 분처럼 느껴졌다. 별다른 말 없이, 감시관은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나는 그대로 책상에 엎드렸다. 들킬 뻔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어느 정도는 의심받고 있는 걸지도. 저 사람이 왜 하필 지금, 이 방으로 왔을까. 정말 우연이었을까. 이 위험한 짓을 계속해도 되는 걸까. 하지만 지환을 그대로 놓아둘 수도 없었다. 이건 이미 내 손을 떠날 수 없는 문제가 되어버렸으니까. 상자 안에서, 지환은 다시 조용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이 오히려 더 불안했다. 아까 그 마력이 정말 완전히 사라진 걸까, 아니면 잠시 숨을 죽이고 있는 걸까. 나는 상자를 서랍 깊숙이 밀어넣고, 그 위에 다른 서류들을 겹겹이 쌓았다. 이렇게 해 봐야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일부턴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걸,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