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사흘 뒤 아침, 편전에서 관료 하나가 두꺼운 문서를 들고 들어왔다.
"청하 관문 전사자 명단입니다."
그 말이 편전 안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숨소리마저 사라진 것 같았다. 방금까지 혼례 예복의 옷감 색깔을 두고 시녀장과 상궁이 소곤거리던 소리도, 아버지의 신하들이 세금 문제로 언성을 높이던 소리도 전부 끊겼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혼례 관련 논의차 불려간 자리였다. 나는 그저 인형처럼 앉아 신랑감의 가문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 뿐, 그 문서가 무엇을 담고 있는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문서가 들어오는 순간, 다른 모든 대화가 멈췄다.
아버지가 명단을 펼쳤다.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조용히 다가가 그 명단을 함께 들여다보았다. 아무도 나를 막지 않았다. 어쩌면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이 순간만큼은 신분도 예의도 잊을 만큼 모두가 그 종이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명단은 이름과 소속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정갈한 필체로, 마치 물건의 재고를 세듯 무심하게. 나는 그 이름들을 하나씩 훑어 내려갔다. 손끝이 점점 차가워졌다. 한 줄, 두 줄, 세 줄.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이 지나갈 때마다 나는 안도했다가, 곧바로 그 안도가 부끄러워졌다. 누군가에게는 저 이름 하나하나가 세상의 전부였을 텐데.
그리고 거기, 열두 번째 줄에서 나는 그 이름을 발견했다.
'강도현, 제1공주 직속 호위무사.'
시야가 순간 흐려졌다. 글자가 두 겹, 세 겹으로 겹쳐 보였다.
그 옆에는 짧은 문구가 붙어 있었다.
'청하 관문 전투 중 전사 확인.'
실종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실종이라는 말이었다면, 나는 어딘가에서 다시 붙잡을 끈이라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확인이라는 두 글자는 그 끈을 아예 잘라 버렸다.
나는 그 문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슬픔이 눈으로 먼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몸이 먼저 반응했다. 숨이 가빠지고, 손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나는 무릎이 꺾이려는 것을 간신히 버텨 냈다.
"공주님, 괜찮으십니까."
누군가 나에게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입술을 열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마른침을 삼켰는데도 목구멍이 뻑뻑했다.
'전사 확인.'
그 네 글자가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되었다. 반복될수록 그 글자들은 점점 더 실감 나지 않았다. 마치 다른 나라의 글자를 보는 것처럼, 뜻은 알겠는데 마음이 그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반지를 떠올렸다. 손에 쥐고 있던 그 낡은 은반지. 백현우가 건넨 그 반지. 손가락 위에서 이물감 없이 익숙하게 자리 잡은, 그 작고 낡은 물건.
'그렇다면 꿈속의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나는 그렇게 정리하려 했다. 논리적으로 따지면 그것이 가장 그럴듯한 결론이었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의 꿈에 나타나 손을 붙잡고, 반지를 건네고, 이름을 말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슨 설명이 가능하겠는가.
하지만 곧 스스로 그 정리를 비웃었다. 죽은 사람을 꿈에서 만난다는 것이 정상적인 논리로 설명될 수 있는 일이던가. 애초에 정상적인 논리라는 것이, 이 상황에 존재하기는 하던가.
아니,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었다. 그가 죽었기 때문에, 그 꿈이 진짜였을 수도 있었다. 산 사람은 다른 산 사람의 꿈에 그렇게 선명하게 나타나지 못한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시 설득해 보았지만, 이번에도 결론은 흐릿하기만 했다.
나는 편전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걸음이 빨라졌다.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았지만,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누구도 나를 붙잡지 않았다.
복도를 걸으며 나는 몇 번이나 벽을 짚었다. 다리에 힘이 자꾸 풀렸다. 시녀 하나가 놀란 얼굴로 다가왔지만, 나는 손을 들어 그를 물러나게 했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반지를 다시 손에 쥐었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이, 지나칠 정도로 청명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나는 그를 볼 수 없다.'
그 생각이 든 순간, 나는 처음으로 하늘에게 화가 났다. 이 무심한 맑음이 원망스러웠다. 세상이 이렇게나 아무렇지도 않게 맑을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날 오후,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명단에 대한 위로의 말 한마디 없이, 어머니는 곧바로 혼례 이야기를 꺼냈다.
"예복 마지막 점검이 내일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반지를 손에 더 세게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강도현이 죽었습니다."
내 목소리가 떨렸지만, 어머니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저 서류를 넘기던 손을 잠시 멈추었을 뿐이었다.
"알고 있다. 유감이구나."
유감이라는 두 글자로 끝이었다. 나는 그 순간, 이 궁이 나에게 허락한 슬픔의 크기가 정확히 그 두 글자만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더 이상 슬퍼하는 것은, 이 궁의 예법에 어긋나는 사치였다.
"저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준비는 시간이 해결해준다."
어머니는 자리를 정리하며 일어섰다. 그 짧은 대답 속에는 어떤 여지도 없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이 궁의 방식에 정면으로 맞서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이 방을 뛰쳐나가, 예복이든 예법이든 다 내던지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충동을 실행할 힘이 지금 내게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손안의 반지만 더 세게 움켜쥐었다.
그날 밤, 나는 창가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맑았다. 별들이 유난히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이 밤은 절대 흐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나는 그 별들을 보며 오래도록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손끝에서 반지의 낡은 무늬가 느껴졌다.
그리고 멀리서, 아주 낮은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비가 오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