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비가 오지 않는 밤이 계속되었다.
나는 매일 밤 창밖을 확인했다. 하늘이 맑을 때마다 이상한 불안이 밀려왔다. 그를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꿈일 뿐인데 왜 이렇게 매달리는 거지.'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물음 자체가 두려웠다. 만약 이것이 슬픔이 만든 광기라면, 나는 그 광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모르고 있었으니까.
시녀들은 내가 요즘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공주님, 얼굴이 많이 안 좋으세요."
"괜찮아."
"음, 그, 그러니까 어의를 불러드릴까요."
"안 불러도 돼."
나는 세 번쯤 같은 말을 반복해 시녀를 물러나게 했다. 사실 괜찮지 않았다. 매일 밤 하늘을 살피고, 매일 밤 실망하는 일을 반복하는 사람이 괜찮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꿈에서 만난 남자를 그리워한다고 말하면, 그들은 나를 정신이 이상해진 공주로 취급할 게 분명했다.
혼례 준비는 하루하루 구체화되고 있었다. 예복 치수를 재는 시녀들, 예식장을 점검하는 관료들, 화란국에서 보낸 예물들을 정리하는 손길들. 화란국 사신이 보내온 예물 목록에는 진주 목걸이 세 점, 비단 열 필, 그리고 국경 지대에서 나는 희귀한 향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관료들은 그 물목을 하나하나 대조하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있었지만, 동시에 그 모든 것과 무관한 사람처럼 서 있었다.
내 앞에 놓인 예복 소매 자락을 손끝으로 만지면서도, 머릿속에는 젖은 흙냄새와 낮은 목소리만 떠올랐다. 강도현이라는 이름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소리 내어 부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그날, 나는 답답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궁 밖 시장으로 나섰다. 시녀 하나만 데리고 몰래 나온 외출이었다.
"공주님, 정말 이렇게 나오셔도 되는 거예요?"
"안 되지만 나온 거야."
"그,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여기 있잖아."
시녀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내 뒤를 따랐다.
시장은 평소처럼 소란스러웠다. 상인들이 목청을 높여 손님을 부르고, 좌판 위에는 곡물과 채소, 색색의 옷감들이 쌓여 있었다. 아이들은 골목 사이를 뛰어다니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소란 속을 걸으며 잠시나마 궁의 무게를 잊으려 했다.
그때, 낯선 남자가 내 앞을 막아섰다.
키가 크고, 여행자 같은 옷차림이었다. 백현우.
"이서연 공주님이시죠."
나는 그의 정체를 알 수 없어 경계했다. 시녀가 놀란 얼굴로 내 앞을 가로막으려 했지만, 나는 손을 들어 저지했다.
"누구시길래."
"그건 중요하지 않고요."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품에서 작은 물건 하나를 꺼냈다. 낡은 반지였다. 소박한 은반지, 표면에 작은 흠집이 몇 개 나 있는.
나는 그 반지를 보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저건, 왜 저게 저 사람 손에.'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하얘졌다. 시장의 소음이 갑자기 멀어지는 것 같았다.
"이게, 왜."
"강도현이라는 사람, 아시죠?"
그 이름이 낯선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나는 손끝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당신이 그를 어떻게."
"제가 그를 아는 게 아니라, 이 반지가 그를 알아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반지를 받아들었다. 손끝에 닿는 순간, 그 숲의 젖은 흙냄새가 다시 떠올랐다. 반지는 손바닥 안에서 서늘했다. 마치 아직도 누군가의 체온이 남아 있다가 방금 식은 것처럼.
"이건 어디서."
"청하 관문 근처에서 주웠습니다. 원래 임자를 찾아드리려고요."
그의 말투는 가볍고 실무적이었다. 마치 물건을 배달하는 사람처럼. 나는 그 태도가 이상하게 거슬렸다. 이렇게 중요한 물건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신, 대체 누구예요."
"그냥 여행 좀 다니는 사람입니다."
"여행자가 이런 걸 함부로 들고 다녀요?"
"함부로는 아니고, 나름 신경 써서요."
나는 그 대답이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더 물을 시간이 없었다. 시녀가 멀리서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공주님! 어디 계세요!"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잠깐만요. 청하 관문이 어디예요. 거기서 그를 봤어요?"
"보진 못했고, 물건만 주웠다니까요."
"그럼 그가 어디 있는지 몰라요?"
"모르죠. 저도 그게 알고 싶은데."
"이 반지가, 그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과 관련이 있나요."
내 물음에 그는 잠시 나를 응시했다. 그 눈빛이 이상하게 깊었다. 마치 내가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 가늠하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관련이 있을 수도 있죠. 비 오는 밤에, 이걸 쥐고 자보세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줘요."
"구체적인 건 저도 몰라요. 그냥 그렇게 들었습니다."
"누구한테요?"
"그건 다음에요."
그렇게 말하고 그는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사람들 사이로 흡수되듯 자취를 감췄다.
나는 반지를 손에 쥔 채로 한참을 서 있었다. 마치 그 반지가 강도현의 온기를 아직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주님, 여기 계셨네요! 얼마나 찾았는지 아세요?"
시녀가 숨을 몰아쉬며 다가왔다.
"방금 그 사람은 누구예요? 아는 분이세요?"
"아니, 몰라."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 오래 붙잡고 얘기를 했다고요?"
"그냥, 물건을 하나 받았어."
나는 손에 쥔 반지를 소매 속에 숨겼다. 시녀에게 이 반지의 정체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설명하려면 꿈 이야기부터 해야 했고, 꿈 이야기를 하려면 강도현이라는 존재부터 설명해야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내가 미쳤다는 증거로만 들릴 게 분명했다.
그날 밤,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나는 반지를 손에 쥐고 잠들었지만, 꿈은 오지 않았다. 비가 오지 않는 이상, 그 문은 열리지 않는 것 같았다.
'백현우라는 남자는 어떻게 이 반지를 손에 넣었을까. 그가 정말 청하 관문에서 주웠다면, 강도현은 그 근처에 있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가 이미 그곳을 지나 다른 곳으로 갔다는 뜻일까.'
생각은 끝없이 이어졌지만, 어떤 결론에도 닿지 못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반지를 더 세게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은반지의 차가운 감촉이 파고들었다.
나는 창밖의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비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궁에서 나고 자란 내가, 비 오는 날을 저주가 아니라 축복으로 여기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사흘 뒤, 나는 궁에서 전혀 다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상선이 굳은 얼굴로 나를 찾아온 것은, 아침 햇살이 유난히 밝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