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종주님, 3년이면 충분합니다

3화

가문으로 돌아온 건 다음날 새벽이었다. 동이 트기 직전, 하늘이 가장 어두운 그 시간을 골라서 움직였다. 온몸이 진흙과 땀으로 범벅이 된 채였고, 옷 곳곳이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져 있었다. 계곡물 냄새와 흙냄새가 뒤섞인 채로 살갗에 배어 있었는데, 씻지도 못하고 일단 몰래 들어가는 게 급선무였다. 몰래 뒷문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문지기 대신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원래 있던 늙은 문지기 할아범 대신이었다. 이 시간엔 늘 코를 골며 자던 사람인데, 오늘은 자세부터가 달랐다. 등을 곧게 세우고,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대기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강도윤 공자." 낯선 목소리였다. 회색 무복을 입은 중년 여자였는데, 가슴에 새겨진 문양이 낯설었다. 은빛 실로 짜인 눈 모양의 문양이었는데, 눈동자 안에 작은 점이 하나 박혀 있었다. 어딘가 감시탑 같은 느낌을 주는 문양이었다. "···누구세요?"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밤새 뛰어다닌 탓인지 목이 잠겨 있었다. "감찰당 소속입니다. 어젯밤 후원 계곡 쪽에서 이상 기운이 감지되었습니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체온이 순식간에 몇 도는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는데, 그 박동 소리가 귓속에서 울리는 것처럼 크게 느껴졌다. 감찰당이라는 조직이 있다는 건 이 몸의 기억 속에도 있었다. 가문 내 무공 유출, 반란, 외부 세력 침투 같은 걸 감시하는 곳이라고 했다. 평소엔 존재감도 없이 조용히 움직이다가, 이런 일이 생기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유령 같은 조직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이번엔 그 감시망에 걸린 게 바로 나였다. "저는 그냥 산책하다가—" "산책이라 하기엔 강태식 공자와 다른 두 사람의 진술이 조금 다릅니다." 여자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화가 난 것도 아니고, 의심하는 것도 아닌, 그냥 사실을 확인하는 어조였다. 그게 더 무서웠다. [거짓말이 이미 새어나간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문제라는 거 아냐, 지금. 옥패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어이없을 정도로 태연했다. 나는 침을 삼키며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지구에서 회사 다닐 때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상급자 앞에서 표정 관리하는 기술이었다. 부장님 앞에서 억지웃음 짓던 그 근육을 지금 여기서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강태식 공자가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은데, 저는 정말로—" "공자를 감찰당으로 모시라는 명이 내려왔습니다." 여자가 손을 살짝 들어 방향을 가리켰다. 반박할 틈도 주지 않는 손짓이었다. 선택권은 처음부터 없었던 모양이다. * * * 감찰당 건물은 저택 본관보다 작고 낮았지만, 들어서는 순간 공기가 달랐다. 서늘하고, 조용하고, 어딘가 눌리는 느낌이었다. 복도를 걸을 때마다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벽에는 아무 장식도 없었고, 창문도 좁고 높게 나 있어서 빛이 들어오는 방식마저 답답했다. 마치 이 공간 자체가 사람을 압박하기 위해 설계된 것 같았다. 작은 방 안에 종주가 앉아 있었다. 외할아버지였다. 얼굴을 마주한 건 이 몸에 들어온 이후 세 번째였는데, 세 번 다 좋은 기억은 없었다. 첫 번째는 인사드리라는 명에 억지로 끌려간 자리였고, 두 번째는 이유도 모른 채 혼이 났던 자리였다. 그리고 지금이 세 번째였다. "들었다." 종주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네가 어젯밤 계곡에서 태식이를 상대로 이상한 힘을 썼다고."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존댓말은 자동으로 나왔다. 이 사람 앞에서는 늘 이랬다. 머리보다 입이 먼저 반응했다. [여기서 사실대로 말하면 매우 위험합니다.] ···누가 그걸 몰라서 참고 있는 줄 아나. "오해라. 그렇다면 확인해보면 되겠지." 종주가 손을 들었다. 손끝에서 은은한 파장이 흘러나왔다. 감지 계열 무공인 모양이었다.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하는 게 느껴졌고,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심궁 탐지 시도】 【탐지 결과: 미확인 이상 신호】 종주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봤다. "흐음." "뭐가 나옵니까?"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손바닥에는 이미 땀이 차 있었다. "아무것도 없다는군." 종주는 그렇게 말했지만, 표정은 그 말과 정반대였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동시에 불안해졌다. 없다는 게 왜 이렇게 문제처럼 들리는 건지. [탐지 무공을 완전히 회피한 것이 아니라, 인식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이건 오히려 더 이상한 신호로 받아들여질 겁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지. 세상에 어느 무공 감지 결과가 '아무것도 없음'으로 나오는데 사람 표정이 저렇게 굳는단 말인가. 아무것도 없다는 건 보통 안심할 일이지, 저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을 일이 아니다. "천제인 네가 태식이 같은 심궁 3단계를 상대로 무언가를 했다는 목격자가 셋이다. 그런데 심궁도 없고, 이상 기운도 안 잡히고." 종주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 눈빛이 마치 내 안을 꿰뚫어 보려는 것 같았다. "뭐가 나온 거냐, 도윤아." 오랜만에 이름으로 불렸다. 그게 더 무서웠다. 평소엔 늘 '너', '네가' 같은 대명사로 부르던 사람이 갑자기 이름을 부르는 순간, 나는 이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다시 한번 체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넘어졌는데, 태식 공자가 저를 쫓아오다가 나무에 걸려 넘어진 것 같습니다." 뻔한 거짓말이었다. 종주도 알고 있었다. 내가 말하면서도 스스로 어색하다고 느낄 정도의 거짓말이었다. 심궁 3단계인 사람이 나무에 걸려 넘어진다는 게 말이 되나. 그것도 나 같은 심궁도 없는 애를 쫓다가. "···그래." 종주는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며 감찰당 여자에게 말했다.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방 안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이 아이를 당분간 감찰 대상으로 등록해둬라. 별채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명심하겠습니다." 여자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 목소리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나는 순식간에 자유를 잃었다. * * * 그날부터 나는 별채에 갇혔다. 밥은 들어왔고, 물도 들어왔지만 문 앞에는 늘 감찰당 사람이 서 있었다. 창문 밖으로는 후원이 보였는데, 계곡으로 가는 산길이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 식사는 하루 세 번, 정확한 시간에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 쟁반이 놓이는 소리, 문이 다시 닫히는 소리. 그 이상의 소리는 나지 않았다. 대화는 일절 없었다. 마치 감옥에 들어온 죄수 취급을 받는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그거랑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방 안을 몇 번이나 서성였다. 창문에 붙어서 밖을 내다보고, 다시 침상에 앉아서 천장을 노려보고, 그러다 다시 창문으로 갔다. 하루 종일 그 짧은 방 안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셀 수도 없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간은 아직 있습니다.] "시간이 있다니, 무슨 시간?" 목소리는 대답 대신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마치 뭔가를 고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이야기는, 조금 더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 자주색 옥패가 뭔가 나한테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아주 강하게 드는데.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옥패를 손끝으로 만졌다. 여전히 은은하게 따뜻했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그 온기가 이상하게도 마음을 조금 가라앉혀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온기 뒤에 뭔가 큰 게 숨어 있다는 불안감도 함께 밀려왔다. 창밖으로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후원의 나무들이 붉은 빛에 물들었고, 계곡 쪽 하늘엔 노을이 걸려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저 갑갑하게만 느껴졌다. "그럼 준비되면 말해. 근데 하나만 대답해줘." [말씀하십시오.]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마치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이. "내가 이렇게 뭔가 대단한 걸 얻었다는 건 알겠는데, 왜 이렇게 불안한 느낌이 드는 거야?" 말을 뱉고 나니 스스로도 놀랐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저 이상한 옥패 하나 주운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게 내 목숨을 담보로 잡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답이 없었다.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창밖에서 새 한 마리가 울고 지나갔고,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한참 후에야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건, 도윤 님의 직감이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목소리에 처음으로 어떤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게 오히려 더 불안했다. 나는 옥패를 손안에 꽉 쥐었다. 온기는 여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무언가는 결코 따뜻하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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