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종주님, 3년이면 충분합니다

1화

콰앙! 등짝에 뭔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정확히는 내 등짝이었다. "천제 놈이 어디 도망을 가려고!" 누군가의 발이 옆구리를 찍었다. 숨이 턱 막혔다. 위장이 뒤틀리고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이거 실화냐. 나는 3개월 전에 죽었다. 정확히는, 대한민국 서울 어느 사무실 책상에서 과로로 쓰러졌다. 야근 여섯 시간째, 커피 세 잔째,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열다섯 살 소년의 몸이었고, 이름은 강도윤이었고, 온몸에 시퍼런 멍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멍이 늘어나는 중이었다. 솔직히 처음 눈을 떴을 때는 회사 옥상에서 벌어지는 몰래카메라인가 싶었다. 아니면 과로사한 내 영혼이 마지막으로 보는 환각이거나. 근데 뺨을 맞아도 아프고, 배를 걷어차여도 아프고, 밥을 굶으면 배가 고팠다. 환각이 이렇게 리얼할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하나였다. 이거 진짜네. "돼지도련님이라도 되니 살은 좀 있네." 제일 앞에서 웃는 놈은 강태식이었다. 나보다 한 살 위, 심궁 3단계, 가문 내에서 유망주로 꼽히는 놈. 얼굴만 보면 그럴싸하게 잘생겼는데, 입만 열면 딱 저 정도 급의 인성이 튀어나온다. 내가 이 몸에 들어오고 알게 된 사실 중 가장 짜증나는 것은, 이 가문의 모든 인간에게 '심궁'이라는 게 있고 나에게만 없다는 거였다. 【심궁 상태: 없음】 처음 그 알림을 봤을 때 나는 진심으로 물었다. "이거 게임이야?"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돌아온 건 매일같이 반복되는 이 폭행이었다. 게임이면 최소한 튜토리얼이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난이도 조절이라도. 이건 그냥 처음부터 하드코어 모드로 시작해서 캐릭터가 죽지 않을 때까지 패는 거잖아. 심궁이 뭔지는 대충 알아냈다. 이 세계에서 무공을 수련하려면 몸속에 기운을 담을 그릇, 즉 심궁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아무리 좋은 비급을 봐도, 아무리 열심히 좌선을 해도 기운이 쌓이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 그 설명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그럼 나는 그냥 몸빵밖에 안 되는 거네, 하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딱 그 짝이었다. 나는 그 그릇이 텅 비어 있는, 이 가문에서 유일한 존재였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천제'—하늘이 버린 폐물. 가문 사람들이 그 별명을 부를 때마다 나는 매번 다르게 반응했다. 처음엔 억울했고, 그다음엔 화가 났고, 지금은 그냥 지쳤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소리에 감정을 소모하기엔 몸이 남아나지 않았다. "어이, 천제. 오늘은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 태식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 손끝에서 흐릿한 빛이 뭉쳤다. 심궁 3단계 정도면 그 정도 잔재주는 부린다고 했다. 나는 그게 뭔지 몰랐지만 몸이 먼저 알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건 그냥 맨손 구타랑은 다른 종류의 위험이라는 걸, 본능이 먼저 알아챘다. [위험 감지. 회피를 권장합니다.] ···됐거든. 그거 알려주는 게 그렇게 늦어서 도움이 될 것 같냐. 이미 다리가 후들거리고 나서 나오는 경고가 무슨 소용이야. 이 목소리는 며칠 전부터 가끔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환청인가 했는데, 목에 걸린 자주색 옥패가 미세하게 뜨거워질 때마다 같이 들렸다. 어머니의 유품이라고 들었다. 강소의. 이 가문 종주의 딸이었고, 나를 낳고 2년 전에 죽었다는 여자. 얼굴도 기억이 안 나는 사람이었다. 이 몸의 원래 주인, 도윤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그냥 옥패 하나만 남기고 사라진 사람. 그런데 그 옥패가 요즘 자꾸 이상한 소리를 낸다. 빛이 날아왔다. 나는 몸을 굴렸다. 어깨가 흙바닥에 갈렸다. 화끈거렸다. 살갗이 벗겨지는 느낌과 동시에 코끝으로 흙냄새와 피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오, 좀 늘었네?" 비웃음이 쏟아졌다. 뒤에 서 있던 다른 놈들도 낄낄거렸다. 저 새끼들은 이게 재밌나. 나는 일어나면서 계산을 했다. 다섯 명. 전부 심궁 소유자. 나는 심궁도 없고 무공도 모른다. 이대로 있으면 오늘은 정말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구에서 죽었는데 여기서도 죽으면 그건 좀 너무하지 않나. 죽음도 한 번이면 됐지, 두 번은 너무 서비스가 과하다. 숫자를 다시 세어봤다. 다섯. 그중 셋은 심궁 2단계, 나머지 둘은 1단계라고 들었다. 태식이 제일 위였다. 정면으로 부딪히면 승산은 정확히 0퍼센트였다. 도망이 유일한 답이었고, 그마저도 확률이 낮았다. 뒤쪽에 담이 있었다. 낮은 담이었고, 그 너머는 가문 소유의 후원, 그리고 후원 끝에는 사람이 거의 안 가는 계곡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있다고 했다. 이 몸의 원래 기억, 도윤의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길이었다. 도윤이 어릴 때 몰래 놀러 갔다가 크게 혼났던 곳. 그 이후로 아무도 그쪽으로 안 간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게 다행이었다.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담을 향해 뛰었다. "저 새끼 도망간다!" 뒤에서 기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등 뒤가 뜨거웠다. 담을 넘으며 발끝에 뭔가 닿았고 몸이 붕 떴다가 흙바닥에 처박혔다. 철퍽. 숨이 안 쉬어졌다. 그래도 일어나야 했다. 폐 속에 공기가 들어오지 않는데도 몸은 벌써 다음 동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람 몸이 이렇게 알아서 살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스쳤다. "잡아!" 나는 뛰었다. 나무가 얼굴을 긁었다. 옷이 나뭇가지에 걸려 뜯어졌다. 산길은 좁고 어두웠고, 발밑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그냥 앞으로 굴러가듯 달렸다. 발바닥에 돌부리가 걸릴 때마다 정강이가 찌릿하게 울렸다. 옆구리는 아까 걷어차인 자리가 계속 당겼다.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 안쪽이 뜨겁게 조여왔다. 뒤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됐다. 됐어. 조금만 더. 이 산길을 끝까지 내려가면 계곡이 있다고 했다. 계곡을 건너면 마을 쪽으로 이어지는 갈래길이 있다고도 했다. 정확히 기억나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뭐든 이 담장 안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다섯 명이 계속 쫓아온다면 그건 그때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살아야 그다음도 있으니까. 산길이 갑자기 가팔라졌다. 발이 미끄러졌다. 몸이 그대로 경사면을 타고 굴렀다. 콰당탕탕. 뭔가에 등이 부딪히고, 나는 그대로 멈췄다. 눈앞이 흔들렸다. 나무 사이로 어두운 하늘이 보였다. 몸 어디 하나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팔은 긁혀서 피가 났고, 무릎은 감각이 없었고, 등은 부딪힌 충격으로 저릿저릿했다. 그래도 뒤쫓는 발소리가 안 들렸다. 그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했다. 손을 뻗어보니 목에 걸린 옥패가 손끝에 닿았다. 뜨거웠다. 생각보다 훨씬, 뜨거웠다. 손바닥으로 감싸 쥐자 옥패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진동했다. 지금까지 느꼈던 그 어떤 열기와도 달랐다. 화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몸속 어딘가를 건드리는 듯한 이상한 감각이었다. [찾았습니다.] 그 순간, 처음으로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누구세요, 라고 물으려는 순간 시야가 자주색으로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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