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다음 날, 학교는 이미 소문으로 가득했다.
정문을 지나는 순간부터 뭔가 이상했다.
평소라면 인사를 건네던 아이들이 나를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곧바로 옆 사람과 귓속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벌써 퍼졌구나.'
어제 하루 사이에 이렇게까지 퍼질 줄은 몰랐다.
복도를 걷는 내내 시선이 따라붙었다.
앞에서 걸어오던 무리가 슬쩍 옆으로 비켜서며 나를 피했다.
"저기 온다, 마계녀."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들이 귓가에 스쳤다.
'마계녀라니.'
어이없는 별명이었지만, 웃을 수는 없었다.
차라리 유치하다고 넘길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그 별명 하나가 폭탄처럼 느껴졌다.
교실에 들어서자 몇몇이 대놓고 킥킥거렸다.
책상에 앉기도 전에, 한 무리의 여자애들이 내 책상 주위로 모여들었다.
셋, 아니 넷.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평소에도 목소리가 크고, 무리 지어 다니는 걸 좋아하는 애들.
그중 가장 앞에 선 아이가 팔짱을 끼고 물었다.
"야, 진짜 뿔 있어?"
목소리에 장난기와 조롱이 반쯤씩 섞여 있었다.
"없어."
나는 최대한 무미건조하게 답했다.
"에이, 다 알아. 걸이가 봤대."
뒤쪽에서 누군가 낮게 웃었다.
'걸이가 봤다고?'
어제 그 짧은 순간을 목격한 게 하필 그 아이였다니.
입이 가벼운 걸로 유명한 애였다는 게 떠올랐다.
이미 늦은 후회였지만, 속이 답답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애써 무표정을 유지하며 자리에 앉았다.
'감정을 흔들리게 하면 안 된다.'
뿔이 감정과 연동된다는 걸 이미 확인한 상태였다.
지금 흔들리면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책가방을 내려놓는 손끝에 신경을 집중했다.
숨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쉬었다.
하지만 그 무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계에서 왔다며. 그럼 마법도 부려봐."
앞장선 아이가 팔짱을 낀 채 턱을 치켜들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애들이 낄낄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 마법 좀 보여줘봐."
"불이라도 뿜어보든가."
한 아이가 내 책을 바닥으로 밀어버렸다.
와르르 쏟아지는 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책장이 접히고, 표지가 구겨진 채 바닥에 널브러졌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책을 주웠다.
"뭐야, 화도 안 나?"
다른 아이가 다시 필통을 던졌다.
필기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지우개가 내 발밑까지 굴러왔다.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교실 안 공기가 점점 후끈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실제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내 안에서 뭔가가 뜨거워지고 있었을 뿐이다.
'참자.'
나는 이를 악물었다.
마계에서 나는 이런 소리를 들으며 물러선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런 취급을 하는 자들에게는 곧바로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물러서야 했다.
숨기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내가 가진 힘을 드러내는 순간, 모든 것이 끝장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몸이 그 결심을 배신하기 시작했다.
이마가 뜨거워지고 있었다.
마치 그 자리에 작은 화로 하나가 박혀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손끝이 저릿하게 떨렸다.
'안 돼.'
나는 급히 앞머리를 손으로 눌렀다.
손바닥 아래로 뭔가 단단한 것이 밀고 올라오는 감각이 느껴졌다.
심장이 쿵, 하고 크게 뛰었다.
그런데 이미 늦었는지, 앞에 있던 아이의 눈이 커졌다.
"어, 어어? 뭐야, 저거!"
그 아이가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가리켰다.
주변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 이마로 쏟아졌다.
웅성거림이 순식간에 커졌다.
"진짜 뿔이야?"
"대박, 진짜였어."
"헐, 미쳤다 진짜."
여기저기서 탄성과 비명이 섞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손을 아무리 눌러도 감춰지지 않았다.
뿔이 이전보다 훨씬 크게, 반쯤 정도 드러난 채 자라나 있었다.
손바닥과 손가락 틈새로 삐죽 솟은 그 끝이 만져졌다.
교실 안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쏟아졌다.
누군가 스마트폰을 꺼내 드는 소리가 들렸다.
찰칵, 하는 셔터음이 환청처럼 귓가에 울렸다.
'이대로 찍히면.'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분노인지, 두려움인지 구분할 수 없는 열기가 온몸을 타고 올랐다.
손끝까지 뜨거운 피가 몰리는 듯한 감각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교실 뒷문이 벌컥 열렸다.
문이 벽에 부딫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뭐 하는 짓들이야."
서은이었다.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이마에는 옅게 땀이 배어 있었다.
왜 이 시간에 여기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등장이 모두를 순간 얼어붙게 만들었다.
방금까지 낄낄거리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표정을 굳혔다.
누군가 스마트폰을 슬그머니 주머니에 집어넣는 게 보였다.
서은의 시선이 아이들을 훑고 지나가다, 내 이마에서 멈췄다.
그 눈빛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숨소리조차 잠시 멈춘 것 같았다.
'또 보여줬다.'
어제는 실수로 만졌다는 핑계를 댔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교실 전체가 목격자였다.
이제 와서 무슨 변명을 붙여도 소용없다는 걸 서은도, 나도 알고 있었다.
서은은 아무 말 없이 성큼성큼 걸어와 내 손목을 잡았다.
그 손이 이전보다 훨씬 세게 조여 있었다.
손아귀에서 옅은 떨림이 느껴졌다.
"집에 가자."
낮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나는 끌려가듯 교실을 나섰다.
발밑에 굴러다니던 필기구를 밟는 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등 뒤로 여전히 수십 개의 시선이 꽂혀 있었다.
누군가 뒤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저거 진짜 뭐지, 무서워."
그 말이 등에 화살처럼 박혔다.
복도 끝, 서은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복도의 찬 공기가 그제야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 표정에는 분노와 두려움, 그리고 낯선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가 다시 다물렸다.
몇 번이나 말을 꺼내려다 삼키는 게 보였다.
"너 대체... 뭐야."
떨리는 음성이 복도의 정적 속으로 흩어졌다.
그 질문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복도 창밖으로 낯선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순간,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흘러내렸다.
'저건.'
익숙한, 그러나 있어서는 안 될 기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