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가을걷이가 끝나 마당마다 벼 낟알 냄새가 가시지 않은 어느 아침, 청화촌 어귀에 낯선 마차 다섯 대가 줄지어 들어섰다. 붉은 비단으로 감싼 차체와 은사로 짜 넣은 문양이 아침 햇살을 받아 핏빛으로 번쩍였는데, 마을 사람들은 처음 보는 그 색채에 저마다 문지방 너머로 목을 빼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사하국이라 했다. 말로만 듣던, 서쪽 사막 너머 어딘가에 있다는 그 먼 나라의 사절단이 이 산골 청화촌까지 찾아올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으므로, 사람들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마차의 바퀴가 흙길을 밟을 때마다 자갈 부딪히는 소리가 났고, 그 소리는 이제껏 청화촌이 알던 어떤 소리와도 달라서, 아이들은 어미의 치맛자락 뒤에 숨어서도 눈만은 반짝이며 그 행렬을 좇았다. 마차를 끄는 말들조차 이 마을의 볕에 익지 않은 듯 코를 벌떡이며 울었는데, 그 울음소리가 낯선 손님들의 도착을 알리는 나팔소리처럼 마당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갔다.
마차에서 내린 사내는 검은 관복 위에 금빛 장식을 두른 자로, 눈매가 매의 그것처럼 날카로웠다. 그는 마을 회당 앞에 서서 통역을 통해 촌장을 불러올리라 명했는데, 그 목소리에는 이미 참을성이 다 닳아버린 자의 조급함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그가 마당 한가운데 서서 팔짱을 낀 채 주위를 훑어보는 모습은, 오래 걸어온 길 끝에서 마침내 목적지가 시원찮음을 깨달은 자의 표정과 다르지 않았다.
회당 문이 열리고 촌장 윤태호가 허둥지둥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본 순간, 소하는 마당 한구석에서 저도 모르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의 옷고름이 반쯤 풀려 있었고, 상투는 비뚜름히 얹혀 있었으며, 걸음걸이는 술 취한 사람처럼 흔들렸다. 어젯밤 늦게까지 마당 뒤편에서 술병 부딪는 소리가 들렸던 것을 소하는 기억했다. 그때는 그저 아버지의 오랜 버릇이라 여기고 넘겼는데, 이런 손님들 앞에서 그 버릇이 이렇게 드러나리라고는 짐작조차 못 했다.
"당신이 지난봄 우리 사절에게 말한 것이 사실이오?" 통역을 거친 사내의 물음이 마당을 가로질렀다. "대륙어와 사막어, 그리고 세 개의 산맥 방언까지 다섯 개 언어를 구사한다고 하지 않았소."
윤태호는 마른침을 삼키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우물에 빠진 쥐가 벽을 더듬는 것과 같았다. "그, 그야 물론입니다. 제가 젊었을 적에는……"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직접 말해보시오." 사내가 팔짱을 낀 채 턱을 치켜들었다. "우리 어린 도련님께 사막어로 인사를 건네보시오."
마당을 메운 정적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담장 너머로 참새 몇 마리가 날아올랐다가 다시 지붕 위로 내려앉는 소리만이 그 침묵을 잠시 흔들었을 뿐, 마을 사람 누구도 숨소리를 크게 내지 못했다. 윤태호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려 턱 끝에 매달렸다가 툭, 흙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입을 벙긋거렸으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몇 마디 내뱉었을 뿐, 사막어도 대륙어도 아닌, 그저 헛기침에 가까운 잡음이었다.
"흠, 흠…… 아, 아나스…… 그러니까……" 윤태호가 손짓까지 섞어가며 무언가를 흉내 내려 했으나, 그 소리는 오히려 닭 목을 조르는 소리에 더 가까웠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웃음이 새어 나오다가 이내 서로의 눈치를 보며 급히 삼켜졌다. 누군가는 소맷자락으로 입을 가렸고, 누군가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소하는 그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 사람이 정말 내 아버지란 말인가. 언젠가부터 아버지가 술자리에서 허풍을 떠는 것을 여러 번 들었지만, 그것이 이런 식으로 나라 밖 손님들 앞에서 밝혀질 줄은 짐작조차 못 했던 일이었다. 지난겨울 장터에서도 아버지는 옆 마을 상인에게 자신이 왕도의 역관 출신이라 큰소리를 쳤고, 그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그저 허허 웃어넘기고 말았다. 그런 허풍이 산골 마을 안에서 머무는 동안에는 그저 우스갯소리였으나, 지금 이 순간에는 나라 간의 신뢰를 걸고넘어진 죄가 되어 있었다.
그때 마차 하나의 문이 조용히 열리며 한 소년이 내려섰다. 소년은 이제껏 마당을 메우던 소란과는 무관한 듯 고요한 걸음으로, 마치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비단 자락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의 신발이 흙바닥에 닿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으며, 걸음걸이마다 옷자락이 사르르 흔들리는 소리만이 남았다. 소하는 그 낯선 얼굴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는데, 새하얀 피부와 짙은 눈썹, 아기처럼 둥근 눈매를 지닌 그 소년이 자신과 동갑 정도로 보였음에도 어딘가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당의 흙빛과 소년의 흰 피부가 대비되어, 마치 겨울 서리가 가을 들판 한가운데 내려앉은 것 같은 이질감을 자아냈다.
"이 아이입니다." 매눈의 사내가 소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우리 왕실의 어린 도련님, 선우결 님이시오. 사정이 있어 잠시 이 마을에 맡기기로 결정되었는데, 촌장이 다섯 언어를 구사한다 하여 안심하고 이 먼 길을 왔던 것이오. 그런데 지금 보니……"
사내의 말끝이 날카롭게 갈렸다. 그는 윤태호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는데, 그 걸음에는 이미 참았던 화가 실려 있어서 윤태호는 저도 모르게 반걸음 물러섰다. "지금 보니 이 늙은이가 우리를 상대로 헛소리를 늘어놓은 게 아닌가 싶소만."
윤태호는 그 시선을 피해 뒷걸음질을 치며 우물거렸다. "제, 제 딸이 통역을 도울 겁니다. 각 지방 방언에는 능한 아이라……" 그의 손가락이 허공을 더듬듯 움직이다가 결국 소하가 서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 손짓 하나에 소하의 세계가 통째로 뒤흔들리는 듯했다.
그 말에 소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자신은 방언밖에 모르는데 대체 무슨 통역을 하라는 것인지,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가는 와중에도 사내의 시선이 마당을 훑다가 정확히 자신에게 꽂히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발끝부터 얼어붙는 듯했다. 마당에 서 있던 이웃들의 시선도 하나둘 자신에게로 옮겨 붙는 것이 느껴져서, 소하는 그 자리에서 흙 속으로 꺼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눌러야 했다.
사내는 미간을 좁힌 채 소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고, 그 눈빛 속에는 실망과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 낡은 무명옷에 흙이 튄 치맛자락, 서둘러 뛰어나온 듯 헝클어진 머리칼까지 살피는 그 시선이 마치 값어치 없는 물건을 감별하는 상인의 손길처럼 냉정해서, 소하는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마주 쥐었다. 그러나 이미 왕실의 결정이 내려진 일이라는 듯, 그는 더는 따지지 않고 짧게 명령했다. "좋소. 도련님은 이곳에 맡겨두겠소. 사정이 정리될 때까지, 이 마을에서 무탈히 지내시도록 하시오."
윤태호는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허리를 굽신거리며 뒷걸음질을 쳤고, 사내가 다시 입을 열기도 전에 회당 뒤편 골목으로 슬그머니 몸을 숨겼다. 그 뒷모습은 마치 물웅덩이에서 미끄러져 빠져나가는 물뱀처럼 재빠르고 은밀했으며, 흙바닥에 남은 발자국조차 서둘러 지워지듯 흩어졌다. 소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이가 갈리는 소리가 절로 새어 나오는 것을 느꼈다.
도망치는 거야. 언제나처럼. 나만 남기고.
사절단의 마차들은 짧은 인사와 함께 다시 바퀴를 돌려 마을 어귀로 향했다. 그들이 두고 간 것은 낯선 궤짝 몇 개와, 그보다 더 낯선 소년 하나였다. 마차 행렬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라져가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문지방 너머로 목을 빼고 수군거렸으나 이제는 그 시선의 절반이 소하에게로 향해 있었다.
마당에는 이제 소하와 낯선 소년 선우결만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흙먼지가 가라앉는 소리와 멀어지는 말발굽 소리가 뒤섞여 귓가에 남았고, 그 사이로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소년은 소하를 향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알 수 없는 말을 몇 마디 건넸는데, 그 목소리는 물처럼 맑았으나 뜻은 전혀 짐작할 수 없어서, 소하는 그저 멀거니 서서 자신의 무능함을 절감할 뿐이었다.
선우결의 둥근 눈이 소하를 응시하며 다시 한 번 무언가를 물었고, 그 말끝이 조금 올라가는 것으로 보아 질문인 듯했으나, 소하로서는 그것이 안부인지 명령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답을 기다리는 소년의 눈빛이 점점 흐려지며 의아함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소하는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서늘함이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넘어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느낄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