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내가 성녀로 선택된 날을 나는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 여섯 살이었고, 신전 뒷마당에서 흙장난을 하다가 손끝에서 하얀 빛이 뭉텅뭉텅 새어 나오는 걸 보고 '이거 혼나겠다' 싶어서 재빨리 흙으로 손을 덮어버렸는데, 하필 그 순간 지나가던 대신관의 눈에 딱 걸렸다는 게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대신관은 내 손을 붙잡고 눈을 크게 뜬 채로 뭐라 뭐라 중얼거렸는데, 그게 설아 여신께서 남기신 예언의 문구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 문구가 정확히 뭐였는지는 나중에 몇 번이나 물어봤지만, 대신관은 그때마다 "때가 되면 아실 겁니다"라는 말로 얼버무렸는데, 어린 나는 그게 그냥 어른들이 아이를 상대로 부리는 흔한 수법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아이답게 나는 그 상황이 그저 무섭고 낯설어서 울음을 터뜨렸을 뿐인데, 그 울음소리마저 신관들 사이에서는 '성녀의 첫 계시'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렸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도 헛웃음이 난다. '내가 운 게 계시였다니, 여섯 살짜리 울음소리를 그렇게 해석할 여유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나중에 들으니 그날 밤 신전 전체가 촛불을 밝히고 밤새 감사 기도를 올렸다고 하는데, 정작 그 기도의 원인인 나는 낯선 방에서 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떨고 있었다는 게 이 이야기의 가장 아이러니한 부분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신전 안쪽 깊은 방으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삶이라고는 했지만 사실상 이삿짐이라고 할 것도 없이 몸만 옮겨진 셈이었는데, 신관들은 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치 유리 인형을 다루듯 조심스러워했으며, 밥을 먹을 때도 옆에서 몇 걸음 떨어진 채 지켜보기만 할 뿐 함께 앉아 먹는 법이 없었다. 숟가락질을 하다 국물을 흘려도 아무도 나서서 닦아주지 않고, 그저 저 멀리서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내가 다 먹고 나면 그제야 슬그머니 들어와 상을 치우는 식이었다. 성녀란 이름이 붙은 순간부터 나는 사람이 아니라 일종의 제단 위 물건이 된 기분이었고, 그 기분은 시간이 지나도 딱히 나아지지 않았다. 매일 아침 신관들이 들어와 내게 예를 올리고 나가면, 나는 홀로 남은 방 안에서 창밖으로 지나가는 다른 아이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 아이들이 서로 밀치고 웃고 떠드는 걸 볼 때마다 '나도 저렇게 넘어져서 무릎이나 깨져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은 없다. 한 번은 창틀에 매달려 손을 흔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밖에 있던 아이 하나가 놀란 얼굴로 도망치듯 사라져버린 뒤로는 그 시도조차 그만두었다. '성녀가 손 흔드는 것도 무서운 일이구나.' 그날 배운 게 있다면 그거였다.
신전의 하루는 정해진 순서대로 흘러갔다. 아침에는 신성수의 뿌리가 뻗어 있다는 영원동토의 방향으로 절을 올리고, 낮에는 대신관 앞에서 힘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저녁에는 다시 절을 올리는 식이었는데, 그 모든 순서 사이사이 나는 단 한 번도 '왜'라는 질문을 던질 틈을 얻지 못했다. 질문을 하려고 입을 떼면 신관들은 항상 "성녀님께서 궁금해하실 일이 아닙니다"라며 웃음으로 넘겼고, 그 웃음이 몇 번 반복되고 나니 나 역시 묻는 법을 잊어버렸다. 힘을 다루는 법을 배운다고는 했지만 정확히는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조금씩 밀어내고 조절하는 훈련이었고, 신관들은 그걸 두고 '성녀님의 신성한 수련'이라 불렀지만 내 입장에서는 매일 똑같은 자세로 몇 시간씩 앉아 손끝을 노려보는 지겨운 노동에 가까웠다. 손끝에서 빛이 한 뼘도 못 되게 새어 나오면 대신관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조금이라도 과하게 새어 나오면 온 신전이 발칵 뒤집힌 듯 달려와 나를 진정시키느라 소란을 피웠다. '이게 무슨 신성한 수련이야, 사실은 야근 없는 직장에 다니는 셈이잖아.' 물론 급여는 없었다. 대신 삼시 세끼와 방 한 칸,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의 절을 받는 기묘한 대가가 있었을 뿐이었다.
신관들은 나를 숭배했지만, 그 숭배 안에는 이상하게도 온기가 없었다. 그들은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면서도 눈은 늘 바닥이나 허공을 향했고, 내가 재채기를 하면 놀라서 뒤로 물러나거나 서둘러 정결한 천을 가져오는 소동이 벌어졌지만, 그 누구도 내게 다가와 등을 두드려주지는 않았다. 열이 나서 며칠을 앓았을 때도 신관들은 방문 앞에 줄지어 서서 기도문을 외기만 했을 뿐, 물수건 하나 이마에 얹어주는 이가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내가 아프면 저들은 나 대신 신성수가 마를까 봐 걱정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여섯 살짜리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조금 서글프다. 어린 나는 그 거리감이 예의라는 것도, 두려움이라는 것도 구분하지 못한 채로 그저 외로움만 켜켜이 쌓아갔는데, 밤이 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훌쩍거리는 게 하루의 마지막 순서였다. '성녀라는 게 이렇게 쓸쓸한 자리인 줄 알았으면 그날 흙 속에 손을 더 깊이 숨겼을 텐데.' 하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고, 나는 그 후회를 되새기며 잠드는 밤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다.
대신관은 종종 내게 신성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설아 여신께서 영원동토 한가운데 심으신 그 나무가 설야국 전체를 얼어붙지 않게 지켜주고 있으며, 성녀는 그 나무에 힘을 공급하는 유일한 통로라는 설명이었다. 그는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목소리를 낮추고 눈을 빛냈는데, 마치 그게 대단히 영광스러운 자리라는 걸 강조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마치 나무에 물 주는 정원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다만 이 정원사는 그만두는 순간 나라 전체가 얼어붙는다는 무게를 짊어지고 있다는 게 보통 정원사와의 유일한 차이였다. 게다가 이 정원사는 휴가도, 이직도, 심지어 병가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월급도 없는데 책임은 왕국급이라니, 이 계약서 누가 검토했지.' 물론 계약서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는 건 오직 나에게 지워진 역할과, 그 역할을 벗어날 수 없다는 확신뿐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나는 조금씩 신전의 규칙에 익숙해져 갔다. 익숙해졌다는 건 적응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반항할 기운마저 소진되었다는 뜻에 가까웠는데,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도 어제와 같은 하루가 반복되리라는 걸 알았고, 그 앎은 이상하게도 위로도 절망도 아닌 밋밋한 체념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창밖의 나무를 보며 계절이 바뀌는 걸 세는 게 유일한 취미가 되었고, 잎이 하나씩 붉어질 때마다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며 '이러다 정말 이 방에서 늙어 죽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나무의 잎이 세 번째로 물드는 걸 지켜보던 어느 오후, 대신관이 평소와 다르게 다급한 걸음으로 방문을 두드렸다. 그날은 왕실에서 주최하는 작은 행사에 성녀가 축복을 내리러 가는 날이라 했는데,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신전 담장 밖의 풍경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신관들은 서둘러 내게 흰 예복을 입히고 머리를 정갈하게 빗어 넘기며 연신 "행동은 조신하게, 눈은 아래로"라는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나는 그 말들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것도 모를 만큼 마차에 실려 나가는 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바깥 구경이다.' 물론 그 바깥 구경이 내 인생을 통째로 뒤바꿔놓을 만남으로 이어질 줄은,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