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어머니가 죽던 날, 저택은 이상하게도 조용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만이 온 집 안을 채웠다.
하인들의 발소리도, 부엌에서 나던 그릇 부딪는 소리도, 그 흔한 개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마치 저택 전체가 숨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 아홉 살이었다.
방문 앞에 앉아 어머니의 마지막 숨소리를 들었다.
그 숨소리는 점점 느려졌고, 점점 얕아졌다.
숨과 숨 사이의 침묵이 길어질 때마다 나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서인아."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그 목소리는 물기에 젖은 종이처럼 얇았다.
조금만 세게 쥐면 찢어질 것 같은, 그런 목소리였다.
"엄마 없어도, 씩씩하게……."
말을 다 끝맺지 못하고 어머니의 손이 스르르 풀렸다.
나는 그 손을 다시 붙잡았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세듯 꽉 움켜쥐었다.
따뜻했던 온기가 조금씩 식어가는 게 손끝으로 느껴졌다.
처음에는 미열처럼 따뜻했고, 그다음에는 미지근했고, 마지막에는 그저 방 안의 공기와 같아졌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나는 그 순간에도 이상하게 냉정했다.
울음이 나올 법도 했는데,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손끝의 감각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몸으로 배웠다.
죽음은 소리 없이 왔고, 소리 없이 사람의 온기를 앗아갔다.
장례가 끝나고 사흘도 지나지 않아, 저택의 공기가 바뀌었다.
하인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나를 보는 눈빛에서 동정도, 예의도 사라졌다.
전에는 지나가다 마주치면 고개를 숙이던 사람들이 이제는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그 미묘한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집에서 내 자리가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계모 강서혜는 상복을 입은 채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녀의 입꼬리는 슬픔을 가리는 데 서툴렀다.
검은 상복의 소매 끝을 만지작거리며 곡을 하는 척했지만, 눈가는 조금도 붉어지지 않았다.
눈물 대신 반짝이는 것은 다른 무언가였다.
'저 여자는 지금 기뻐하고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어렵지 않게 읽어냈다.
아홉 살짜리가 읽어내기엔 너무 명백한 감정이었으니까.
"이제부터 이 집의 안주인은 나다."
그녀가 나를 불러 세운 것은 어머니가 묻힌 지 열흘째 되던 날이었다.
복도 한가운데, 하인들이 다 지나다니는 그 자리에서였다.
일부러 사람들이 보는 곳을 골랐다는 걸,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너는 오늘부터 이 방을 쓰지 않는다."
내 방이었던 곳에 강지아의 짐이 옮겨지고 있었다.
낯익은 손길들이 내 물건을 상자에 쓸어 담고, 낯선 물건들이 그 자리를 채워가고 있었다.
인형들, 리본이 달린 옷가지들, 색색의 리넨.
내가 쓰던 물건과는 색깔부터 달랐다.
나보다 두 살 어린 이복동생은 내 침대에 걸터앉아 발을 흔들고 있었다.
"언니, 나 여기 살 거야."
지아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나를 보며 웃었다.
발끝으로 침대 프레임을 툭툭 치면서, 새 장난감을 자랑하듯이.
그 웃음이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도, 저 아이는 나를 저렇게 보곤 했다.
곁눈질로, 은근하게, 저것도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눈빛으로.
다만 그때는 아무도 그 시선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머니가 그 시선을 막아주는 벽이었다면, 이제 그 벽은 사라졌다.
'이제는 다르다.'
나는 그 사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몸으로 받아들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날 나는 처음 알았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몸으로 겪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짐을 옮기던 하녀가 나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동정도 아니었고, 비웃음도 아니었다.
그저 무관심이었다.
마치 복도에 놓인 낡은 화병을 보는 듯한,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는 존재를 보는 시선.
그 무관심이 채찍보다 더 아팠다.
적어도 채찍은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그날 밤, 나는 별채의 창고방으로 옮겨졌다.
먼지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벽지는 군데군데 뜯겨 있었고, 천장 구석에는 거미줄이 늘어져 있었다.
깨진 항아리와 부러진 의자 다리가 방 한쪽에 쌓여 있었다.
바닥에 깐 얇은 이불 한 장이 전부였다.
베개도 없었다.
나는 그 위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의 마지막 목소리, 식어가던 손의 온기, 그리고 끝맺지 못한 말.
'엄마 없어도, 씩씩하게' 다음에 무슨 말이 왔을까.
씩씩하게 살라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씩씩하게 견디라는 뜻이었을까.
그 답을 영원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미 다 말라버린 뒤였다.
창밖으로 빗소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밤새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강서혜가 창고방 문을 벌컥 열었다.
문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게으른 것."
그녀의 손에는 낡은 채찍이 들려 있었다.
손잡이는 가죽으로 감겨 있었고, 끝은 얇게 갈라져 있었다.
한눈에 봐도 새것이 아니었다.
이 집에 벌써 저런 채찍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 집의 본모습을 말해주고 있었다.
"네 어머니가 죽었다고 해서 네가 이 집의 딸인 줄 아느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떤 말을 하든 그녀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에서 나는 순수한 증오를 보았다.
가공되지 않은, 꾸밈없는 미움이었다.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는 감춰졌던 것이, 이제야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왜 나를 저렇게 미워할까.'
어머니를 미워했던 걸까, 아니면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미워하는 걸까.
그 답을 알기도 전에, 채찍이 허공을 갈랐다.
등을 가로지르는 통증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숨이 턱 막혔다.
세상이 하얗게 지워지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그저 이가 부서질 듯 악물려졌을 뿐이다.
두 번째 채찍이 날아왔을 때는 비명 대신 눈앞이 흔들렸다.
강서혜는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만족스러워하지도, 흡족해하지도 않는, 그저 당연한 일을 처리하는 얼굴이었다.
그 무표정이 채찍보다 더 소름 끼쳤다.
그날, 나는 강씨 가문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으로 새겼다.
등에 남은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오래 걸렸지만, 그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다른 것이었다.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의 통증도, 그 무표정한 얼굴도, 지아의 웃음도.
전부 몸속 어딘가에 새겨 넣었다.
언젠가 이 빚을 그대로 되돌려줄 날이 올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물론 그날이 언제일지는, 그때의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