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별당 문을 열자 향냄새가 훅 끼쳐왔다. 낮에 맡았던 화상 연고 냄새와는 다른, 서늘하고 정갈한 향이었다.
그 안에 이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있었다.
짙은 흑발을 짧게 정리한 여자였다. 무관 복장이었고, 허리에 검을 차고 있었다. 강인한 인상에 눈빛이 예리했다. 앉은 자세부터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냥 봐도 훈련받은 몸이라는 게 느껴졌다.
이 사람이구나. 강다혜.
미주에게 이미 들었던 이름이었다. 왕세자 직속 여성 무관이자, 그와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별생각 없이 흘렸는데, 지금 이렇게 직접 마주하니 그 정보가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가까운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다혜는 나를 흘긋 보고는 다시 이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짧은 시선 안에 평가가 담겨 있었다. 이 여자가 그 왕녀인가, 하는.
나는 그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자리에 섰다.
"방금 낮에 있었던 일, 이미 궁 안에 다 퍼졌습니다."
다혜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 걱정이 섞여 있었다. 이현을 향한 목소리였다. 나를 향한 게 아니었다. 뭔가,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오래 다져진 언어가 있는 것 같았다.
이현이 나를 바라보았다.
"소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나는 표정을 흔들지 않았다.
속으로는 이미 열 번쯤 예상 답안을 굴려본 후였다. 이 남자가 저럴 줄 알았지.
"제 시종이 화상을 입었어요. 그걸 그냥 두는 게 규율이라면, 저는 그 규율을 어기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 판단이 그대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몰랐소?"
"알았어요. 그래도 그렇게 했어요."
짧게 끊어 답했다. 더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설명한다고 이 남자가 이해할 것도 아니고.
이현이 미간을 좁혔다. 그 표정이 낯설지 않았다. 이 남자는 늘 저런 식으로 눈살을 찌푸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화가 났을 때도, 곤란할 때도, 표정의 폭이 좁았다.
다혜가 나와 이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흥미와 경계가 반쯤씩 섞여 있었다.
"조상궁이 이미 후보들 사이에 이 일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왕녀 전하의 태도가 오만하다는 식으로."
"알고 있어요. 오늘 직접 찾아오셨거든요."
이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조상궁이 직접 찾아왔다고?"
목소리가 미묘하게 낮아졌다. 그냥 궁금해서 묻는 말투가 아니었다. 뭔가를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네. 규율을 지키라고, 그리고 앞으로의 태도가 저한테 불리하게 작용할 거라고 경고하셨어요."
나는 그때의 상궁 얼굴을 떠올렸다. 웃는 낯에 날이 서 있던, 그 이상한 위압감을.
다혜와 이현이 눈빛을 주고받았다. 아주 짧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뭔가 이 대화에서 내가 모르는 문맥이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만 아는 이야기.
나만 모르는 사정.
이 궁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다는 게 이럴 때 이렇게 서럽다.
"전하, 그럼 이 일은 그냥 넘어가시겠습니까?"
다혜가 이현에게 물었다. 그 말투에는 판단을 재촉하는 기색이 있었다. 무관다운 직설함이었다.
이현은 잠시 말이 없었다. 턱을 살짝 매만지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뭔가를 계산하는 얼굴이었다.
"일단은."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는 뭔가 다른 계산이 담겨 있는 듯했다.
일단은, 이라니. 그럼 나중에는 넘어가지 않겠다는 소린가.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상궁이 이렇게까지 나서는 게, 단순히 규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요."
말을 뱉고 나서야, 이게 너무 직접적인 질문이었나 싶었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이었다.
이현이 나를 응시했다. 오래 이어지는 시선이었다. 그 시선 속에서 나는 뭔가를 읽으려 했지만, 이 남자의 눈은 정말이지 방패 같아서, 아무것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건 그대가 알 필요 없는 일이오."
선을 긋는 말이었다. 딱 잘라, 여지도 없이.
하지만 그 말투에서 나는 뭔가를 읽었다. 조상궁이라는 존재가 이 궁 안에서 단순한 후궁 관리자가 아니라는 걸.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방어적으로 말할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지금은 물러날 때였다. 어차피 캐물어봤자 저 벽 같은 남자한테서 나올 게 없다는 걸,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미 파악했다.
대신 나는 다른 정보를 하나 챙겼다.
조상궁, 이현, 다혜 — 이 세 사람 사이에 뭔가 얽혀 있다.
별당을 나서면서, 다혜가 뒤따라 나왔다. 발소리가 가볍고 절제되어 있었다. 무관 특유의 걸음걸이였다.
"왕녀 전하."
다혜가 나를 불렀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뒤돌아본 그녀의 얼굴에는 아까와는 조금 다른 표정이 있었다. 경계가 좀 풀린 얼굴.
"오늘 하신 일, 위험한 선택이었어요. 하지만……"
다혜가 잠시 말을 골랐다. 그 잠깐의 침묵이 묘하게 진지했다.
"틀린 선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예상 밖의 말이었다. 이현의 연인이나 다름없다고 들었던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솔직히 좀 놀랐다. 이 궁에서 처음 듣는, 계산 없는 말 같아서.
"고마워요."
다혜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떠났다. 뒷모습마저도 절도가 있었다. 저런 사람이 이현 곁을 지키고 있다면, 이현이라는 사람도 완전히 벽만 있는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궁 안에 내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관계들이 훨씬 많이 얽혀 있다는 것을.
조상궁, 임은채, 강다혜, 그리고 이현.
이름을 하나씩 되짚어 보았다. 각자 다른 방향에서 나를 흔들거나, 아니면 지탱해주거나. 어느 쪽인지 아직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 모든 실타래의 중심에 뭔가가 있었다.
내가 아직 손대지 못한, 어쩌면 손대서도 안 되는 무언가가.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재상 한윤재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이름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왕실의 정사를 좌지우지한다는 인물, 이현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있는 사람.
그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왜 그런 소문이 도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던 그 순간의 눈빛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뭔가를 저울질하는 눈이었다.
"왕녀 전하의 판단력이, 생각보다 흥미롭군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등줄기를 스치는 서늘함만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