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별궁에 갇힌 지 열흘째였다.
유서윤은 창가에 붙어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처음 사흘은 억울함과 분노로 뒤척였고, 다음 사흘은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을 설쳤다. 그리고 남은 나흘째부터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남은 건 관찰뿐이었다.
별궁을 지키는 근위병들의 교대 시간, 시녀들의 동선, 심지어 정원사가 오는 시간까지 전부 외워버린 지 오래였다. 근위병 둘은 매 두 시간마다 교대했고, 그중 왼쪽에 서는 병사는 항상 십 분 정도 늦게 나타났다. 시녀들은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 방을 청소하러 왔는데, 유서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일만 하고 나갔다. 정원사는 사흘에 한 번 화단을 손질했고, 그때마다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럴 시간에 탈출 계획이라도 짜지.' 유서윤은 스스로에게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별궁의 담은 높았고, 감시는 촘촘했다. 관찰이 습관이 된 건 그저 다른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 시녀.' 유서윤은 눈을 가늘게 뜨고 창밖을 내다봤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각에 오는 늙은 시녀 하나가 유독 눈에 밟혔다. 다른 시녀들과 달리, 그녀는 언제나 작은 바구니를 들고 왔다. 그리고 다른 시녀들과 달리, 그녀는 방에 들어오기 전 항상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가 들어왔다. 마치 안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뭘 저렇게 조심스러워하는 거지.' 유서윤은 처음엔 그저 늙은 시녀의 개인적인 버릇이라 여기고 넘겼다.
어느 날, 유서윤은 그 바구니 안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시녀가 바구니를 내려놓다가 뚜껑이 살짝 열렸는데, 그 틈으로 안이 들여다보였다. 값비싼 약재와 과일이 가득했다. 유서윤은 그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아볼 수 있었다. 인삼, 대추, 그리고 이름조차 낯선 귀한 약초 몇 가지. 유폐된 죄인에게 내려질 법한 물건이 아니었다.
"이게 다 뭐예요." 유서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늙은 시녀는 흠칫 놀란 얼굴로 바구니를 얼른 감췄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낮게 대답했다. "전하께서 특별히 명하신 겁니다. 아가씨의 건강을 잘 살피라고요."
유서윤은 그 말을 듣고 눈을 깜박였다. 두 번, 세 번.
"전하께서요." 유서윤이 되물었다. 목소리에 의심이 섞여 나왔다.
"예." 시녀는 짧게 답하고는 서둘러 방을 나갔다. 더는 캐물을 틈도 주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파혼한 상대한테 왜.'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파혼당하고 유폐된 여자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다. 소문 속의 이하준은, 냉혹하고 무자비하며 오직 박세라만을 바라보는 남자였다. 사람들은 이하준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유서윤을 내쳤다고 수군거렸다. 그런 남자가 매일 값비싼 약재를 챙겨 보낸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혹시 다른 목적이 있는 걸까.' 유서윤은 생각했다. 독을 천천히 먹여 죽이려는 걸까, 아니면 나중에 이용할 카드로 남겨두려는 걸까. 온갖 불길한 가정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눈앞의 사실은 그 소문과 어긋나 있었다. 그리고 이 작은 어긋남이, 유서윤의 마음속에 조그마한 균열을 만들어냈다.
***
그날 밤, 유서윤은 잠이 오지 않아 몰래 방을 빠져나왔다. 별궁 뒤편 회랑은 낮과 달리 인기척이 드물었다. 달빛만이 돌바닥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유서윤은 벽을 따라 조용히 걸으며 바깥 공기를 쐬려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낮은 목소리가 들려와 걸음을 멈췄다.
기둥 너머로 두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유서윤은 숨을 죽이고 벽에 등을 붙였다.
"전하." 강도현의 목소리였다. 언제나처럼 여유롭고 부드러웠다. "자꾸 별궁 쪽으로 사람을 보내시는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그냥 확인이다." 이하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어딘가 방어적으로 들렸다.
"확인이라." 강도현이 그 말을 곱씹듯 되풀이했다. "확인이라면, 근위병에게 서면 보고를 받으면 될 일 아닙니까. 굳이 매일 시녀를 시켜 약재까지 챙겨 보내실 필요가 있을까요."
이하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파혼한 약혼녀의 건강을 확인하신다." 강도현이 웃음기 섞인 어조로 되풀이했다. "세상 사람들이 알면 이상하게 볼 텐데요."
"박세라 양이 만든 증거가 조작이라는 것을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이하준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알고 있죠." 강도현이 담담하게 답했다. "저도 그 정도는 조사했으니까요. 그런데 왜 그 자리에서는 그렇게 냉정하게 유폐를 명하셨습니까.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눈길 한 번 안 주고 말이죠."
긴 침묵이 이어졌다. 유서윤은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의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울리는 것 같아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지금 그녀를 옹호하면." 이하준이 마침내 말을 이었다. "박세라 뒤에 있는 세력이 그녀를 더 위험하게 만들 것이다. 유폐가 오히려 그녀를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이다."
유서윤은 그 순간 숨을 멈췄다.
'뭐라고.' 그녀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를 지키려고 했다고.'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지난 열흘 동안 쌓아왔던 원망과 배신감이, 그 짧은 한마디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가 자신을 버린 게 아니라 지키려 했다는 말을 믿어도 되는 걸까. 유서윤은 벽에 이마를 살짝 기댄 채 그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하지만 강도현의 다음 말이 그녀의 안도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참 재미있는 발상이네요." 강도현이 낮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조롱과 흥미가 뒤섞여 있었다. 결코 유쾌해서 웃는 웃음이 아니었다. "전하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계신 걸, 박세라 양이 알면 어떻게 될까요."
이하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박세라 양은 지금 자기가 완벽하게 이겼다고 믿고 있을 텐데요." 강도현이 말을 이었다. "그 믿음이 깨지면, 다음엔 어떤 수를 쓸지 저도 예상이 안 됩니다."
유서윤은 벽에 등을 붙인 채 숨을 죽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았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소리가 날까 봐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강도현.' 그녀는 생각했다. '이 남자, 겉모습과 다르다.'
지금껏 강도현을 마주쳤을 때, 그는 항상 부드럽고 예의 바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별궁을 오갈 때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정중하게 목례를 하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들리는 목소리에는, 그 정중함 아래 숨겨진 날카로움이 있었다.
온화한 얼굴 뒤에 감춰진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이 사람은 절대 자신의 편이 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하준의 진심이 무엇이든, 그 진심을 둘러싼 판이 훨씬 더 위험한 곳이라는 사실도.
유서윤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뒤로 옮겼다. 두 사람이 이쪽을 알아차리기 전에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 방으로 돌아오는 동안, 머릿속은 쉴 새 없이 방금 들은 대화를 되짚고 있었다.
'이건 그냥 은혜를 갚는 문제가 아니야.' 유서윤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결심을 다졌다. '살아남는 문제야.'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은 유서윤은 두 손을 꽉 마주 잡았다. 이하준의 진심을 알게 됐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진 게 아니었다. 오히려 더 복잡해졌을 뿐이었다. 박세라의 뒤에 있는 세력, 그리고 그 세력을 언급할 때 강도현의 목소리에 담겼던 은근한 위협.
이 별궁 안에서 안전하다고 믿었던 것 자체가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날 밤 유서윤을 오래도록 잠들지 못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