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알현실의 대리석 바닥은 차가웠다.
새벽부터 쏟아진 한기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듯, 무릎을 꿇은 자리에서부터 냉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유서윤은 두 손을 모으고 그 차가움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치맛자락이 대리석에 눌려 축축하게 얼어붙는 느낌마저 들었다.
등 뒤로는 방금까지 그녀를 끌고 온 근위병 둘이 미동 없이 서 있었다. 창을 든 손등에 힘줄이 불거져 있는 것을 보니, 그녀가 조금이라도 도망칠 기미를 보이면 곧바로 붙잡을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정면에는 황금빛으로 물든 계단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는 이하준이 있었다.
금빛 머리칼과 태양처럼 눈부신 얼굴. 소문대로였다. 아니, 소문보다 더했다. 저런 얼굴을 하고서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놀라웠다. 지금 그 얼굴에 걸려 있는 표정은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유서윤." 이하준의 목소리가 알현실을 울렸다. 낮고 또렷했다. "그대는 박세라 양을 독으로 해하려 했다는 혐의로 이 자리에 섰다."
유서윤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대신 옆에 서 있는 박세라를 흘겨보았다. 초콜릿색 머리칼을 곱게 늘어뜨린 그 여자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는 시늉을 하면서도 입꼬리는 슬며시 올라가 있었다.
'저 웃음.' 유서윤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가 않네.'
박세라의 눈물은 완벽했다. 어깨를 살짝 떨고, 흐느끼는 타이밍까지도.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다만 그 연극에 관객으로 앉은 사람들이 전부 그것을 진짜라고 믿는다는 게 문제였다.
"저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전하." 유서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속으로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안 뛰는 게 이상한 거지만.
"그대의 방에서 독초가 발견되었다." 이하준이 손을 들어 신호하자, 시종이 작은 유리병을 받쳐 들고 나왔다. 안에는 검붉은 가루가 담겨 있었다. 유리병의 표면에는 서리 같은 얼룩이 묻어 있어서, 그것이 실제로 만들어진 물건인지 아니면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이것도 그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냐."
유서윤은 그 유리병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처음 '실제로' 보는 물건이었다.
'이건 알아. 나는 이걸 알아.' 그녀의 머릿속에서 어떤 장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이 알현실, 이 유리병, 이 대사까지도. 언젠가 어디선가 겪었던 것처럼. 마치 이 순간을 이미 한 번 살아본 것 같은,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감각이었다.
'꿈인가.' 유서윤은 생각했다. '아니면 다른 뭔가.'
이하준의 입 모양, 시종이 유리병을 내려놓는 각도, 박세라가 흐느끼는 박자까지도 전부 예상이 되었다. 심지어 다음에 이하준이 무슨 말을 할지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시감을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증거는 명백하다." 이하준의 음성이 더욱 낮게 깔렸다. "유서윤, 그대를 파혼함과 동시에 별궁에 유폐할 것을 명한다."
알현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마치 누군가 시간을 멈춰버린 것처럼 모두가 숨을 죽였다. 그리고 그 정적을 채운 것은 박세라의 흐느낌이었다. 누가 봐도 가짜였지만,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 시녀들은 안타깝다는 듯 박세라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혀를 찼다.
유서윤은 그 광경을 보며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 상황에서 웃기다니, 제정신이 아닌 걸까. 하지만 정말로 그랬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뻔뻔할 수 있다는 게 우스웠다.
근위병에게 양팔을 붙들려 일어서는 순간, 몸이 휘청거렸다. 무릎이 오래 꿇려 있던 탓에 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자세가 그리 우아하지도 못했다.
대신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하준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짧게, 이하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뭐지.' 유서윤은 생각했다. '방금 저 눈빛은.'
분명 착각이라고 하기엔 너무 선명했다. 마치 그가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다가 삼켜버린 것 같은, 그런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이하준은 이미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보고 있었고, 그녀는 그대로 끌려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
알현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이하준은 어깨의 힘을 풀었다.
그는 계단을 내려와 창가로 걸어갔다. 발걸음 소리가 대리석 위에 또렷하게 울렸다. 창밖으로 유서윤이 근위병들에게 끌려가는 뒷모습이 작게 보였다.
"전하." 낮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갈색 머리의 청년, 강도현이었다. 온화하게 웃는 낯빛과 달리 그 목소리에는 어떤 무게도 실려 있지 않았다. "생각보다 순순히 처리되었군요."
"그래." 이하준은 짧게 답했다.
"박세라 양이 가져온 증거는 확실히 조작 냄새가 나던데요." 강도현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팔짱을 낀 채 창가로 걸어와 이하준의 옆에 나란히 섰다. "유리병에 묻은 얼룩만 봐도 그렇습니다. 만든 지 얼마 안 된 것치고는 너무 낡아 보였어요. 누군가 일부러 시간을 들여 흔적을 만든 거겠죠. 그런데도 유폐를 명하시다니."
이하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계속 응시했다. 유서윤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직접 진위를 밝히실 수도 있었을 텐데요." 강도현이 말을 이었다.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조사관 몇 명만 보내도 금세 드러날 일입니다. 그런데 왜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별궁의 대우는." 이하준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강도현의 질문을 완전히 무시한 채였다. "함부로 하지 않도록 해."
강도현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건 조금 이상한 명령이네요, 전하. 파혼한 상대에게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시다니."
이하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창밖의 빈 자리를 바라보며, 아주 오랫동안 서 있었다. 마치 그 자리에 아직도 누군가가 서 있는 것처럼.
강도현은 그런 이하준의 옆얼굴을 잠시 살폈다.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지만, 그 침묵 자체가 어떤 대답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럼 명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강도현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웃음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다만 그 웃음 뒤로, 무언가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눈빛만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