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마법소녀님, 존엄만 돌려주세요

1화

전생에서 배운 게 딱 하나 있다. 눈에 띄면 인생이 고달파진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죽기 직전에 배웠다. 눈에 띄어서 좋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잘하면 시기받고, 못하면 무시당하고, 어중간하면 그냥 무시당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어중간해도 눈에 띄면 피곤해진다. 그러니까 결론은 하나다. 아예 안 보이는 존재가 되는 것. 그래서 이번 생에는 무조건 평범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유별나게 잘하지도 말고 유별나게 못하지도 말고, 딱 중간에서 조용히 사는 것. 그게 내 인생 목표였다. 대단한 목표도 아니다. 그냥 남들 사는 만큼만 살겠다는 거다. 이게 뭐 그렇게 어려운 목표라고. 그런데 특수기동지원대 10반 신입 대원이 되어서 이런 얘기를 하면 다들 웃는다. "평범? 네가?" 윤하늘 누나가 커피를 마시다 말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마력 감응력이 신입 중에 제일 좋은 애가 평범을 논해?"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인데요. 마력이 좀 잘 느껴진다고 해서 인생까지 특별해질 필요는 없는 거다. 나는 그냥 감이 좋은 편일 뿐이고, 그 감을 최대한 안 쓰는 게 내 생존 전략이었다. 뭐든 먼저 나서면 일이 늘어난다. 일이 늘어나면 피곤해진다. 피곤해지면 죽고 싶어진다. 전생에서 이미 겪어봤다. 두 번은 안 겪는다. "넌 그거 알아?" 윤하늘 누나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잘하는 걸 숨기는 것도 재능이야. 근데 그 재능도 결국 눈에 띄거든." ..그건 또 무슨 궤변이에요. 속으로 반박했지만 입 밖으로는 안 냈다. 누나 말에 대꾸해서 좋을 게 없다는 것도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전직 경찰 출신이라 그런지 말싸움에서 지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특수기동지원대는 마법관리청 산하 조직이다. 마법소녀들이 대형 마재를 막는 최전선 히어로라면, 우리는 그 뒤에서 잔불 끄는 소방관 같은 존재였다. 마력 폭주 신고 접수, 소형 결계 균열 보수, 미등록 요괴 포획. 화려한 건 하나도 없고 그냥 성실하게 뛰어다니는 게 일이다. 뉴스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팬레터가 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조용히 처리하고 조용히 퇴근하는 조직. 이게 딱 내가 원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 일에도 마력 감응력이 필요해서, 열다섯 살짜리 중학생인 나도 특례로 대원증을 받을 수 있었다. 특례라는 말이 웃기다. 특별하지 않으려고 사는데 특례로 들어온 조직이라니. 인생이 참 아이러니하게 굴러간다. "서준아." 고웅재 반장님이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우리 반장님은 몸집이 곰만 한데 목소리는 그보다 더 곰 같다. "오늘 3구역 순찰, 강도현이랑 같이 가라." "네." 짧게 대답하고 고개를 숙였다. 튀지 않는 대답, 튀지 않는 태도. 이게 내가 매일 연습하는 것이다. 대답은 무조건 한 단어로. 표정은 무조건 무표정으로. 이렇게만 하면 웬만한 관심은 다 피해간다는 게 내 경험칙이었다. 반장실 벽에는 마법소녀 선요특무대, 약칭 선특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다홍, 남청아, 백서리. 셀럽 같은 존재감으로 전국을 누비는 그 셋 중에서도 반장님은 다홍의 사진만 세 장이나 붙여놨다. 늑대귀에 진홍색 꼬리. 진지한 표정. 저 사람이 반장님 마음속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는지는 안 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사진마다 각도가 다르다. 정면, 측면, 그리고 뭔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캡처한 듯한 웃는 얼굴. 이 정도면 그냥 팬이 아니라 연구자 수준이다. "반장님, 그거 결재 서류에 껴 있던 다홍 팬미팅 응모권 저번에 제가 몰래 뽑아서 넣어드린 거 아세요?" 윤하늘 누나가 서류를 정리하며 던진 말이었다. "...진짜야?" 반장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곰 같은 몸집이 순간 소년처럼 작아 보였다. "장난이에요." "..." 곰 같은 남자가 상처받은 표정을 짓는 걸 보고 있자니 조금 웃겼다. 저렇게 큰 사람이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윤하늘 누나는 전직 경찰 출신답게 팀 내 정보통이자 오퍼레이터 역할을 맡고 있는데, 본인은 남청아 팬이라 그런지 반장님을 놀리는 걸 아주 즐긴다. 남청아는 진청색 쌍둥이머리에 상어 꼬리를 가진 선특의 멤버로, 차분한 목소리 톤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힐링계로 불린다고 들었다. "저는요." 강도현 형이 장갑차량 열쇠를 돌리며 끼어들었다. "백서리가 최고죠. 까칠한데 마음은 여려요. 그런 여자가 진짜예요." 강도현 형은 특수장갑차량 운전을 담당하는데, 백서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은색 소품만 모으는 게 특징이다. 차 안에도 은색 방향제가 걸려 있고, 대시보드에는 은색 스티커까지 붙어 있다. 백서리 상징색이 은색이라나. 나는 그런 거 하나도 모르는데 형은 완전히 전문가였다. 다들 좋아하는 마법소녀가 다르다는 게 신기했다. 셋 다 전국구 셀럽인데, 그중 누구를 더 좋아하느냐로 이렇게 각자 개성이 갈리는 게 재밌기도 하고 조금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나는 딱히 누구 팬은 아니다. 화려한 사람들 근처에는 가까이 가지 않는 게 내 신조다. 화려한 사람 근처에 있으면 나까지 화려해질 위험이 있으니까. 이건 진지한 걱정이다. 웃지 마시라. 순찰차에 올라타고 3구역으로 향했다. 강도현 형은 운전하면서 계속 백서리 얘기를 했고, 나는 창밖을 보며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3구역 풍경은 딱히 특별할 게 없는 골목이었다. 낡은 상가, 오래된 주택가, 그리고 결계 표시등이 깜빡이는 전신주 몇 개. "서준이 너는 진짜 신기해. 마력 감응력이 그렇게 좋은데 안 쓰려고 하잖아." 형이 물었다. "왜 그래?" "편해서요." 대충 대답했다. "편하긴, 그거 아까운 재능인데. 나였으면 그 재능으로 진작에 선특 시험 봤다." ..아까운 게 아니라 무서운 거예요. 속으로만 그렇게 답하고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았다. 내 마력 감응력은 남들보다 그냥 좀 좋은 수준이 아니었다. 훈련소 적성검사 때 담당관이 계측기를 두 번이나 다시 켜본 적이 있을 정도였다. 처음엔 기계 고장인 줄 알았다고 했다. 두 번째 켰을 때도 똑같은 숫자가 나오자 담당관 표정이 묘하게 굳었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그 정확한 감각이 항상 좋은 것만 잡아내는 건 아니다. 이상한 것도, 안 좋은 것도 똑같이 잡아낸다. 그리고 나는 그런 걸 모르는 척하는 데 도가 텄다. "형은 왜 선특 시험 안 봤어요?" 슬쩍 화제를 돌렸다. "나? 나는 감응력이 딱 평균이야. 시험 봤다가 광탈했지." "..." "왜 그런 표정이야." "아니에요." 평균이라 시험에 떨어졌다는 사람 앞에서 평균을 목표로 산다는 얘기는 할 수가 없었다. 순찰은 평소처럼 조용했다. 골목 결계 두 곳 점검, 민원 들어온 마력 누출 지점 하나 확인, 미등록 정령 하나 순순히 포획. 정령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물의 정령이었는데, 포획망에 들어가면서도 별로 저항하지 않았다. 다 별일 없이 끝났다. "오늘도 조용하네." 강도현 형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이 정도면 딱 좋다. 사건 없는 날이 최고야." "그러네요." 나도 동의했다. 진심이었다. 그런데 차로 돌아가는 길에, 그게 느껴졌다. 뜨윽-.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이물감. 마력이라기엔 너무 차갑고, 요기라기엔 너무 정제된 느낌.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지금까지 느껴본 어떤 마력 파동이나 요기와도 결이 달랐다. 마치 아주 오래된 무언가가, 아주 깊은 곳에서 조금씩 표면으로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 걸음을 멈췄다. "서준아, 왜 그래?" 강도현 형이 뒤돌아봤다. "아, 아니에요." 나는 재빨리 다시 걸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다. 그런데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이런 미세한 이상은 보고서에 올리면 상부에서 재검사하겠다고 하고, 재검사하면 하루가 통째로 날아간다. 서류 작성, 감응력 재측정, 상황 설명. 생각만 해도 피곤한 일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나는 오늘 하루를 조용히 마감하고 싶었다. 딱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런데 자꾸만 목덜미가 서늘했다. 마치 누군가 저 멀리서, 아주 오래된 무언가가 눈을 뜨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눈을 뜬다는 표현이 정확한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 뭔가가, 아주 긴 시간 동안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조금씩 깨어나고 있다는 느낌. 강도현 형은 아무것도 못 느낀 눈치였다. 형은 그냥 평소처럼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랐다. 그 태연함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넘기려고 했다. 그날은 그게 최선이었다. 그런데 차에 올라타 창밖을 다시 봤을 때, 그 서늘한 감각이 아직도 등줄기에 남아 있었다.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짙어지는 것 같았다. 이게 그냥 기분 탓이면 좋겠다고,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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