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3년 후, 현재.
3년 동안 방송을 쉬지 않았다.
큰 성공은 없었지만 꾸준히 던전을 공략하고 영상을 올리면서 구독자는 892명에서 5,204명까지 조금씩 늘어 있었다.
대형 합동 던전 공략 이벤트가 열린다는 공지가 뜬 건 지난주였다.
상위 랭커 방송인들이 한 채널에 모여 같은 던전을 각자의 시점으로 중계하는 행사였다.
공지문 아래에는 참가 조건이 빨간 글씨로 박혀 있었다.
구독자 수 5천 명 이상.
나는 계산기를 두드리듯 내 채널의 구독자 수를 확인했다.
5,204명.
간신히 커트라인을 넘긴 숫자였다.
'떨어질까 봐 며칠 동안 잠도 못 잤는데.'
신청 버튼을 누르던 순간의 손끝 감촉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이벤트 당일, 나는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방송 세팅을 마쳤다.
마이크 감도를 세 번이나 점검했고, 헤드셋 배터리를 새것으로 갈아 끼웠다.
캐릭터 의상도 평소보다 화려한 걸로 골랐다.
방송 시작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채팅창은 평소보다 세 배는 붐볐다.
[만년백수] 오 오늘 사람 많네
[방랑던전러] 진짜 던전 탐사자로서 말하는데 저 사람 대단한 거임
[까망꼬망] 드디어 시작하네요!!
화면 왼쪽 위, 다른 방송인들의 채널 목록이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여섯 개의 작은 창이 나란히 떠 있었고, 각자의 시청자 수가 숫자로 박혀 있었다.
3만 2천, 1만 8천, 9천, 그리고 나란히 이어지는 숫자들 사이에 내 채널도 껴 있었다.
300명.
가장 아래, 가장 작은 숫자였다.
그중 하나, 구독자 수 12만 명을 자랑하는 채널명 앞에 왕관 모양 아이콘이 붙어 있었다.
레이드퀸_별하.
[레이드퀸_별하] 히드라 3분 컷 예정
그 문구를 보는 순간 배 속이 서늘해졌다.
내가 맡은 히드라 공략 예상 시간은 15분이었다.
같은 몬스터를 두고 3분과 15분이라는 숫자가 나란히 놓이는 걸 보니, 방송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댓글창을 스크롤하던 시청자들이 하나둘 그쪽으로 옮겨가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동시 시청자 수 그래프 옆에 붙은 작은 숫자가 298, 295, 291로 조용히 줄어들고 있었다.
"오늘은 다른 채널도 같이 보는 분들이 많나 보네."
애써 캐릭터 톤으로 넘겼다.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게 배에 힘을 주고 말했다.
[안티민수] 저쪽 구독자 12만인데 여기 300명이랑 비교가 되냐
[안티2호] ㄹㅇ 왜 여기 있는지 이해가 안 됨
[안티민수] 이벤트 자격이 있긴 한 건지 모르겠다
웃음으로 넘기려 했지만 그 말이 정확히 맞았다.
숫자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12만과 300.
400배 차이가 나는 숫자였다.
'저쪽 채널 한 명이 나가면 우리 채널 400명이 있어야 그만큼이라는 거네.'
계산이 저절로 머릿속에서 굴러갔다.
채팅창을 훑던 눈이 한 줄에서 멈췄다.
[탐색병장] 저기 별하님 채널 진짜 재밌던데
그 아이디를 보는 순간, 심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3년 전 처음 내 방송에 찾아와 "오랜만이네"라고 인사를 건넸던 탐색병장이었다.
한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두 달 전 다시 채팅창에 나타나 예전처럼 인사를 남겼다.
그때는 반가운 마음에 방송 중에 소리를 낮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내 방송이 아니라 다른 채널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탐색병장 씨, 여기 보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목소리 끝이 떨리는 걸 감추려 헛기침을 한 번 했다.
[탐색병장] 아 저 지금 별하님 채널도 같이 켜놓고 봄
[탐색병장] 거기가 더 화려하던데
화려하다는 말이 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캐릭터의 위압적인 웃음도, 순간 지어낼 수 없었다.
화면 속 내 캐릭터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나는 입가에 힘을 준 채로 다음 대사를 놓쳤다.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배경음악만 헤드셋 안에서 공허하게 울렸다.
[야차희사랑꾼] 저희 대장님 방송이 최고입니다!!
[한량예언자X] 화려함과 진실됨은 다른 것
[까망꼬망] 저는 여기가 더 좋아요
지지하는 댓글들이 올라왔지만, 예전만큼 그 말들이 나를 붙잡아주지 못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숫자로 나눠진 시청자 수가, 마음 한쪽을 계속 갉아먹었다.
던전 안쪽에서 히드라가 첫 번째 머리를 들어 올리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
원래라면 반가웠을 장면인데, 나는 그 순간에도 왼쪽 위 숫자만 곁눈질로 확인하고 있었다.
287.
방송이 끝난 후 로그를 확인했다.
동시 시청자 수 그래프가 이벤트 시작 지점부터 완만하게 우하향해 있었다.
300명에서 210명, 다시 180명.
숫자가 줄어드는 걸 실시간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프의 곡선을 손끝으로 따라가 봤다.
시작점과 끝점 사이의 낙차가, 마치 내가 서 있던 자리가 무너져 내린 흔적 같았다.
'120명이 사라졌어.'
'그중 몇 명이 저쪽으로 갔을까.'
숫자를 세다가 그만두었다.
세어봐야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음 날 방송을 켰을 때, 탐색병장의 채팅은 없었다.
평소라면 방송 시작 5분 안에 인사를 남기던 사람이었다.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그의 아이디는 채팅창에 뜨지 않았다.
대신 채팅창 한쪽에 낯선 문장이 올라왔다.
[탐색병장] (별하 채널에서 활동중)
채널 옮겨감 표시였다.
나는 그 표시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같은 글자를 눈으로 훑고, 다시 훑었다.
혹시 잘못 본 건 아닐까 싶어 화면을 껐다가 다시 켜기도 했다.
문장은 그대로였다.
그가 완전히 떠난 건 아니었지만, 이미 마음의 절반은 그쪽으로 옮겨가 있었다.
헤드셋 너머로 던전 안쪽에서 히드라의 울음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고, 나는 그 소리보다 먼저 채팅창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화면 구석에 떠 있는 별하 채널의 시청자 수는 여전히 3만 명을 넘긴 채였다.
내 채널의 숫자는 그날도 세 자리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캐릭터의 웃는 얼굴 뒤에서, 나는 조용히 숨을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