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던전 입구에 서서 헤드셋을 고쳐 썼다.
왼쪽 이어패드가 자꾸 흘러내리는 게 벌써 3주째였다.
새로 사고 싶었지만 가격표를 확인하고 그냥 테이프로 고정해버렸다.
마이크 감도를 두 번 확인했다.
한 번은 습관이고, 한 번은 정말 확인이었다.
팔에 감은 붕대의 매듭을 다시 묶었다.
실제로는 다치지 않았지만, 야차희는 늘 팔에 붕대를 감고 방송을 시작했다.
그게 캐릭터였다.
붕대 색깔도 매번 검붉은 색으로 통일했다.
피가 마른 것처럼 보이라고, 시청자 하나가 알려준 방법이었다.
스튜디오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원룸 한쪽 벽을 가려놓은 세트였다.
합판에 회색 페인트를 칠하고 그 위에 균열처럼 보이는 선을 그려 넣었다.
조명 두 개를 세워놓으니 그럴듯한 던전 입구가 되었다.
카메라 앵글만 잘 잡으면 이 좁은 원룸이 지하 미궁처럼 보였다.
"오늘도 다들 살아있었나, 인간들."
화면을 향해 낮게 말했다.
목소리를 평소보다 반 톤 낮췄다.
그게 야차희의 목소리였다.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만년백수] 오늘도 그 대사냐 지겹다
[야차희사랑꾼] 살아있습니다!!! 대장님!!!
[안티민수] 인간들이라니 니가 인간 아니냐
입꼬리를 올린 채 채팅을 훑었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숨을 한 번 골랐다.
방송을 켜기 전까지의 삼십 분, 그 삼십 분이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이었다.
그 삼십 분 동안 나는 항상 같은 계산을 했다.
원룸 월세 32만 원, 통신비 4만 9천 원, 전기세와 수도세를 합치면 6만 원가량.
장비 유지비까지 더하면 이번 달도 후원 없이는 버티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난달 후원금은 정확히 41만 2천 원이었다.
그걸로 월세를 겨우 냈고 나머지는 라면으로 버텼다.
그 숫자들을 채팅창 뒤에 감춘 채, 나는 다시 목소리를 깔았다.
"오늘 상대할 놈은 히드라다."
"머리를 자르면 두 개가 돋아나는, 그런 성가신 놈이지."
손으로 던전 입구의 균열을 가리키며 말했다.
실제로는 균열이 아니라 스튜디오에 세워둔 세트였지만, 화면 밖 시청자들은 그걸 몰랐다.
플라스틱 검을 들어 올려 조명에 반사시켰다.
싸구려 코스프레 소품이었지만, 화면 안에서는 제법 그럴듯하게 빛났다.
검 손잡이에 감아둔 가죽끈이 손바닥에 닿는 감촉이 익숙했다.
[방랑던전러] 저 진짜 던전 탐사자인데 저건 초보가 상대하면 안 되는 놈임
[회사노예] 오늘도 야근하고 이거 보러 왔습니다... 대리만족용
[한량예언자X] 머리가 잘려도 다시 자라는 것, 그것이 곧 삶이다
채팅을 하나씩 읊으며 리액션을 붙이는 게 방송의 반이었다.
혼자 던전을 도는 것보다, 사실은 이 시간이 더 중요했다.
화면 너머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로 방을 채웠다.
"머리가 두 개로 늘어난다고 쫄 것 같냐?"
카메라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연습한 표정이었다.
거울 앞에서 수십 번 연습해서 이제는 자동으로 나오는 표정이었다.
[변태돌쇠] 그 표정 좋다 한번 더
[냐옹이]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야차희님
냐옹이의 댓글에 나는 잠깐 진짜로 웃었다.
그 웃음만큼은 연기가 아니었다.
냐옹이는 반년 넘게 매 방송마다 들어오는 시청자였다.
후원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고마운 사람이었다.
회원 등급 목록을 슬쩍 확인했다.
구독자는 892명, 그중 정기 후원자는 열두 명이었다.
많다고 할 수 없는 숫자였지만, 이 열두 명이 내 생계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었다.
나는 그 숫자를 외우고 있었다.
누가 언제 후원을 끊었는지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그때, 채팅창 한 줄이 시선을 붙잡았다.
[탐색병장] 오랜만이네
손끝이 멈췄다.
검을 쥔 손가락이 그대로 굳었다.
그 닉네임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헤아려보다가, 헤아리는 것 자체를 그만두었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는 게 더 정확했다.
쿵, 하고 한 번 크게 뛰었다.
그다음엔 계속해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네요, 라고 인사하는 분이 있네."
목소리가 살짝 흔들렸지만 애써 캐릭터 톤을 유지했다.
입술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화면이 잡지 않기를 바랐다.
[탐색병장] 이 방송 뭐임 왜 자꾸 뜨는데
[탐색병장] 던전은 이렇게 안 함 ㅋㅋ 누가 저렇게 검을 쓰냐
[탐색병장] 컨셉이 좀 오글거리네
숨을 잠깐 멈췄다.
채팅창을 다시 위로 올려 아이디를 확인했다.
분명 같은 아이디였다.
탐색병장.
자음 하나, 숫자 하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말투는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안티민수] 뭐야 갑자기 등장해서 태클이네
[야차희사랑꾼] 무슨 소리세요!! 대장님 검술은 최곱니다!!
채팅은 계속 올라왔지만 그 한 줄만 눈에 박혔다.
오글거리네.
예전에 이 아이디가 나에게 해줬던 말들이 머릿속에서 겹쳐 떠올랐다.
너 진짜 재능있는 것 같아.
그 목소리, 아니 그 자막 같은 문장들이 아직도 어딘가에 남아있었는데.
저녁마다 던전 공략 영상을 같이 보면서 웃었던 기억도, 새벽 세 시에 통화하며 서로의 하루를 확인하던 시간도, 전부 이 여섯 글자 아이디 안에 담겨 있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검 손잡이가 미끄러웠다.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면서도 눈앞이 흐려지는 것 같았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
생각보다 목소리가 먼저 튀어나갔다.
캐릭터의 위압적인 톤이 아니라, 진짜 내 목소리였다.
평소라면 절대 새어나오지 않았을, 겁먹은 목소리였다.
채팅창이 그 순간 조용해졌다.
[만년백수] 뭐야 갑자기 톤 바뀜
[회사노예] 무슨 상황이지 갑자기 분위기가
화면이 흔들린 건 손이 떨려서였는지, 조명이 나가서였는지 알 수 없었다.
헤드셋 너머로 오래된 알림음이 울리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서 문자가 온 것 같은, 3년 전에나 들었을 법한 알림음이었다.
분명 실제로 울린 소리는 아니었는데, 귓속에서 선명했다.
의자를 붙잡은 손끝에 힘이 빠졌다.
카메라가 계속 나를 찍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3년 전 그날로 되돌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