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귀촌했더니 몬스터가 산다

5화

그날 밤, 나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할머니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라니, 대체 뭐지.)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은 오히려 더 깊은 곳을 건드렸다. 천장을 바라보며 몇 번이고 뒤척였다. 방 안은 조용했다. 창밖에서 풀벌레 우는 소리만 낮게 이어지고 있었다. 평소라면 익숙했을 그 소리가, 오늘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문득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5년 전, 처음 그 회사에 입사했을 때. 야근이 당연했던 부서, 상사의 폭언이 일상이었던 사무실. 그때의 나는 늘 무력했다. 책상 앞에 앉아서도 손이 자꾸 멈췄던 기억이 났다. 모니터 화면의 빛이 눈을 찌르듯 아렸고, 시계는 늘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감정을 지우는 법을 배웠다. (그때도 나는 아무것도 못 했지.) 부당한 지시에 항의도, 반박도 하지 못한 채 그냥 버텼다. 버티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늘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회의실 문이 열리는 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굳었고, 상사의 발소리만으로도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 무력함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저 익숙해졌을 뿐이었다. 그 숲에서 짐승 앞에 주저앉아 있던 나의 모습이, 그 시절의 나와 이상하게 겹쳐졌다. (또 그렇게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어.) 숨이 막힐 듯한 두려움, 다리에 힘이 풀리는 감각, 도망치고 싶은데 몸이 움직이지 않던 그 순간. 회사에서 느꼈던 무력함과 다를 게 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그 무력함 속에서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는 것이었다. 돌을 던졌고, 도끼를 들었다. 결과는 형편없었지만,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 사실이 아주 작은, 하지만 분명한 위안이 됐다. 이불을 다시 끌어당기며 눈을 감았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지만, 마음 한 켠은 이상하게 가벼워져 있었다. (그래, 그때랑은 달라.) 그 말을 몇 번이고 되새기다가, 어느 순간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배낭을 다시 점검했다. 손전등 두 개, 여분의 배터리, 응급처치 키트, 도끼, 그리고 물병. 가방 안을 하나씩 정리하며, 손끝으로 물건들을 확인했다. 차가운 도끼 손잡이가 손바닥에 닿을 때마다, 어제의 기억이 스치듯 떠올랐다. 준비를 하면서도 계속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다시 가려는 거지.) 답은 명확하지 않았다. 다만 그 로브를 걸친 존재의 뒷모습이, 그리고 은빛 머리카락의 아이가 사라진 방향이 계속 눈앞에 떠올랐다. 그 아이의 눈빛, 그리고 순식간에 짐승을 제압하던 그 존재의 움직임이 잊히지 않았다. 그 세계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존재를 다시 마주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거울 너머의 그 짧은 순간이 며칠째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현실의 하루하루는 여전히 평온했지만, 그 평온함 속에서 나는 자꾸 그 숲의 냄새와 소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상하지, 위험했는데도.) 오후가 되어, 나는 헛간으로 향했다. 마당을 지나며 할머니의 방 쪽을 슬쩍 바라봤다. 문은 닫혀 있었고,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문을 열자 익숙한 먼지 냄새가 코를 스쳤다. 거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표면은 고요했다. 나무 틀에 낀 오래된 이끼의 냄새와, 헛간 특유의 습한 공기가 뒤섞여 있었다. 나는 배낭을 고쳐 메고, 도끼를 허리춤에 단단히 고정했다.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박동이었다. (이번엔 준비가 됐어.)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손끝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거울 앞에 서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었다. 헛간 안의 정적이 귀에 선명하게 감겼다. 바깥에서 들리던 새소리마저 아득하게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거울 속 풍경은 이미 변해 있었다. 나무들, 안개, 그리고 그날과는 다른 낮은 빛. 이번엔 붉은빛이 조금 더 짙게 섞여 있는 것 같았다. (색이 달라졌어.) 미세한 차이였지만, 분명 느껴졌다. 어딘가 삐걱거리는 듯한 이질감이 그 풍경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나뭇잎들이 흔들리는 방식조차 낯설게 보였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도 어딘가 어긋난 리듬을 가진 것 같았다. (전과는 뭔가 달라.) 그 미묘한 위화감이 손끝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나는 그 위화감을 무시하고 손을 뻗었다. 서늘한 감각이 손끝을 감쌌다. 그 순간, 거울 너머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개의, 가볍고 빠른, 리듬을 가진 발소리. (뭐지.) 나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발소리는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땅을 딛는 소리에 섞여, 낮게 부딪히는 금속음도 들리는 듯했다. (무기 소리인가.) 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숲 사이로, 작고 초록빛을 띤 형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키는 작았지만, 손에는 하나같이 조잡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열이 넘었다. 그 형체들의 피부는 짙은 초록빛이었고, 눈은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움직임은 재빨랐고,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듯 낮은 소리로 뭔가를 주고받고 있었다. (고블린... 인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 무리는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분명 이 거울이 있는 쪽이었다. 심장이 쿵, 크게 뛰었다.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손끝은 이미 거울 표면을 통과해, 그 너머의 서늘한 공기를 느끼고 있었다. 발을 뺄 수도, 더 들어갈 수도 없는 애매한 순간이었다. (지금 손을 빼면... 아니, 늦었어.) 무리의 선두가 나뭇가지를 헤치고,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그 눈이, 정확히 나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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