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귀촌했더니 몬스터가 산다

2화

다음 날 아침에도 그 감각이 손끝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서늘하고 부드러운, 물 같지만 물은 아닌. 나는 몇 번이나 손가락을 펴 보며 그 느낌을 되짚었다. (꿈이 아니었어.) 분명했다. 손바닥에 남은 그 서늘함은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마당을 밟는 순간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마당의 흙은 미지근했고, 아침 공기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도 손끝만은 여전히 그 밤의 온도를 기억하고 있었다. 밥을 먹는 내내 머릿속에는 그 나무들과 안개, 그리고 그 사이를 스쳐 간 그림자만 떠올랐다. 숟가락을 든 손이 몇 번이나 멈췄다. 할머니가 국을 더 떠주려다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밤새 잠을 못 잤나." "아니에요. 그냥... 좀 이상한 꿈을 꿔서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그게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결국 나는 밥그릇을 절반도 비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숟가락을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할머니는 더 묻지 않고 그저 내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헛간으로 가는 길, 마당의 감나무 잎이 유난히 크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 소리도 어딘가 달랐다. (신경이 곤두서서 그런가.)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경첩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평소보다 더 길게 이어졌다. 안으로 들어서자 낮의 햇빛이 헛간 틈새로 비스듬히 스며들어와 먼지 알갱이들을 비췄다. 거울은 그대로였다. 낡은 나무 프레임, 문양, 이끼 얼룩.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거울 앞에 섰다. 비치는 것은 헛간의 낮은 빛과 내 얼굴뿐이었다. 유리 표면을 손끝으로 슬쩍 건드려봤다. 차갑고 딱딱한, 평범한 유리의 감촉이었다. 어젯밤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 (어제는 밤이었으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밤을 기다렸다. 하루 종일 텃밭을 돌보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헛간에 가 있었다. 호미로 흙을 파다가도, 물을 주다가도, 자꾸만 시선이 헛간 쪽으로 돌아갔다. 할머니가 몇 번이나 "뭘 그렇게 자꾸 쳐다보냐"고 물었지만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넘겼다. 시간은 이상하게도 더디게 흘렀다. 해는 하늘 한가운데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저녁, 해가 산 너머로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나는 손전등도 없이 헛간으로 갔다. 달빛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문을 열자 서늘한 공기가 먼저 얼굴에 닿았다. 어젯밤과 똑같은 냄새, 흙과 나무가 섞인 오래된 냄새였다. 거울 앞에 서자, 다시 그 풍경이 나타났다. 키가 큰 나무들, 푸른 안개, 낯선 정적. 이번엔 그림자도 없었다. 숲의 안쪽 깊숙한 곳까지 시야가 트여 있었다. 안개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낮게 깔려 있었고, 나무들 사이로 흐릿한 빛이 스며 나왔다. 나는 숨을 고르고 손을 뻗었다. 손끝이 유리를, 아니, 그 서늘한 감각을 다시 만났다. 손 전체를 넣어봤다. 팔꿈치까지, 어깨까지. 거울 표면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팔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저항감은 전혀 없었다. 그저 서늘한 물속에 팔을 담그는 듯한 느낌뿐이었다. 반대편에서 바람이 느껴졌다. 실제 바람이었다. 습하고, 흙냄새와 풀냄새가 뒤섞인 바람. 그 바람은 헛간 안의 공기와는 확실히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더 짙고, 더 오래된 냄새. (이건... 진짜다.) 등줄기로 소름이 쭉 올라왔다. 나는 천천히 몸을 기울였다. 심장이 목 끝까지 올라온 것처럼 뛰었다. 발끝에 힘을 주고 조금씩 무게를 앞으로 옮겼다. 그러다 발이 걸렸다. 헛간 바닥의 삽자루였다. 툭. 몸이 앞으로 쏠렸다. 균형을 잡으려 했지만 늦었다. 발이 이미 바닥에서 떨어져 있었다. 순간, 얼굴 앞으로 서늘한 감각이 통째로 밀려들었다. 시야가 흐려지고, 다시 밝아졌을 때는- 나는 숲 한가운데 서 있었다. 발밑은 부드러운 흙이었고, 주변은 축축한 이끼로 덮여 있었다. 숨을 들이켜자 폐 속까지 습기가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달빛 대신 낮은 빛이 나무 틈으로 흘러들어왔다. 한낮인지, 흐린 새벽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광량이었다. 공기는 습했고, 벌레 울음소리가 낮게 깔려 있었다. 그 울음소리는 익숙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리듬이 조금씩 삐걱거리는 듯한, 낯선 파문이 섞여 있었다. (돌아가야 해.) 나는 뒤를 돌아봤다. 등 뒤로 거울이, 나무 사이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헛간의 문틀은 없었지만, 거울 프레임과 유리 표면은 분명 같은 것이었다. 그 안에는 헛간의 어두운 풍경이 비쳤다. 나무에 걸린 거울이라는 것 자체가 이상했지만, 그것보다 지금 이 상황이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프레임의 이끼 얼룩까지도 똑같았다. 나는 손을 뻗어 다시 만져봤다. 서늘한 감각.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제야 겨우 숨이 트였다. 숨을 몇 번이나 몰아쉬며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 심장이 조금씩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멀리서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렸다. 짐승의 울음도 아니고, 사람의 것 같기도 한, 가느다란 소리였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우지끈, 하는 소리가 연달아 이어졌다. 땅을 딛는 무언가의 발소리도 섞여 들려왔다. (뭐지.) 심장이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거울에서 몇 걸음 떨어져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봤다. 안개 사이로 무언가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아직 형체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움직임만으로도 심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덤불 사이로 무언가가 뛰쳐나왔다. 작은 체구였다. 은빛에 가까운 머리카락, 낡은 천을 두른 모습. 사람의 형상이었다. 체구로 봐서는 아직 어린아이거나, 혹은 그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나무 사이를 부수며 쫓아오고 있었다. 키가 나보다 두 배는 컸다. 등에 뿔이 솟은 곰의 형상. 털은 검붉은 색이었고, 눈은 붉게 빛났다. 그 짐승이 움직일 때마다 주변 나무들이 통째로 흔들렸다. 발을 내려찍을 때마다 땅이 진동하는 게 발바닥을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 작은 존재가 발을 헛디뎠다. 쿵.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넘어지면서 낮은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소리는 짐승의 것이 아니었다. 분명한 사람의, 아니 아이의 목소리였다. 곰 형상의 거대한 몸이 성큼, 그 위로 다가서고 있었다.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땅이 울리는 게 느껴졌다. 그 짐승의 붉은 눈이 쓰러진 존재를 정확히 응시하고 있었다. 숨소리마저 낮게 울리며 주변 공기를 짓눌렀다. (도망쳐야 해.)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발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거울을 등지고 반대 방향으로,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머릿속의 판단과 몸의 반응이 완전히 어긋나 있었다. 나는 근처에 떨어진 돌을 주워 들었다. 손이 떨렸다. 숨이 가빠졌다. 돌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손아귀에 제대로 쥐어지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놓지 않았다. 거대한 짐승의 앞발이, 쓰러진 존재를 향해 그대로 내려찍히려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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