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나는 비틀거리며 거울 앞으로 다시 걸어갔다.
손끝이 서늘한 감각을 다시 느끼자,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헛간의 어두운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을 때, 나는 한참 동안 천장만 바라봤다.
나무 서까래 사이로 거미줄이 늘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희미한 달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살아 돌아왔어.)
그 사실이 뒤늦게 실감 났다.
손목이 아팠고, 어깨의 통증도 그제야 느껴졌다.
숨을 크게 들이쉬자 갈비뼈 쪽에서도 뻐근한 통증이 올라왔다.
몸을 조금 움직여봤다.
삐걱.
관절 어딘가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부러진 건 아니겠지.)
다행히 움직이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나는 그대로 한동안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숲의 습기와 안개 냄새가 아직 코끝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착각인 줄 알면서도, 그 냄새를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검붉은 눈, 그리고 그 낯선 존재의 뒷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푸른빛이 흐르던 칼날, 흔들림 없던 걸음걸이.
몇 번이나 몸을 뒤척였다.
이불을 걷어차기도 하고, 다시 끌어당기기도 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은 유난히 길었다.
(그 사람은 뭐였을까.)
인간인지, 다른 무언가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그 존재가 나를 구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어떤 감정을 느꼈다.
동경이었다.
동시에, 그 옆에서 벌벌 떨고만 있었던 나에 대한 부끄러움도 함께였다.
(도끼 한 번 휘두르고 나가떨어졌잖아.)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5년간 회사에서 버텨온 인내심도, 투자로 얻은 돈도, 그 숲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천장을 향해 손을 뻗어봤다.
손가락 사이로 희미한 새벽빛이 걸러졌다.
그 손이 낯설게 느껴졌다.
도끼를 쥐어본 적도, 짐승과 마주해본 적도 없던 손이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텃밭에 물을 주는 것도 잊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호미를 들고 나가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현우야, 요즘도 거기서 잘 지내니?"
나는 애써 목소리를 밝게 냈다.
"네, 잘 지내요. 공기 좋고, 조용하고."
"몸은 괜찮은 거야? 밥은 잘 챙겨 먹고?"
"네, 그럼요."
"목소리가 좀 이상한데. 감기 걸린 거 아니지?"
"아니에요, 그냥 잠을 좀 못 자서요."
"뭐 하느라 잠을 못 자, 거기 시골에서."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대충 웃음으로 넘겼다.
"그냥... 이것저것 정리하느라요."
전화를 끊고 나서야, 나는 어깨의 통증을 새삼 자각했다.
(괜찮다고 말했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텃밭으로 나가 물을 주는 동안에도 자꾸만 헛간 쪽으로 시선이 갔다.
낡은 문틀 사이로 어둠이 고여 있었다.
그 어둠이 어제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날 오후, 나는 다시 헛간으로 갔다.
이번엔 거울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그 문양을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다.
나무 프레임의 모서리마다 새겨진 문양은, 자세히 보니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일정한 패턴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마치 어떤 글자, 혹은 표식 같았다.
손끝으로 문양의 골을 따라 만져봤다.
오래된 나무 특유의 결이 손가락 끝에 걸렸다.
그 사이사이 파여 있는 홈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새겨넣은 것처럼 정교했다.
(우연히 생긴 무늬는 아니야.)
나는 손전등을 비추며 프레임 전체를 훑었다.
위쪽 모서리에는 작은 원이, 아래쪽에는 갈라진 선이 반복해서 새겨져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그 문양을 사진으로 찍었다.
여러 각도에서 다시 찍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봤지만, 비슷한 이미지는 나오지 않았다.
(이 집을 예전에 누가 살았지.)
부동산 계약서를 뒤져봤다.
서랍 깊은 곳에서 겨우 찾아낸 종이였다.
이전 소유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낯선 이름이었다.
주소도, 연락처도 오래되어 흐릿하게 지워져 있었다.
중개업자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뭐라고 물어봐야 하지. 거울 안에 다른 세계가 있는데 아세요, 라고?)
생각만으로도 헛웃음이 나왔다.
(누구에게도 이걸 말할 수는 없어.)
당연한 결론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누가 믿어줄까.
경찰에 신고할 수도, 방송국에 알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말하는 순간 정신병원에 실려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날 밤, 다시 거울 앞에 섰다.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다만 오래도록 그 표면을 바라봤다.
거울 속에는 헛간의 익숙한 풍경만 비쳤다.
낡은 선반, 흙바닥, 그리고 조금 야윈 내 모습.
하지만 그 너머에, 분명 다른 세계가 있었다.
숲과 안개,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존재.
손을 들어 거울 표면에 가만히 대봤다.
차갑고 매끈한 감촉만 느껴질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와 같은 서늘함은 아니었다.
(다시 갈 거야.)
스스로도 놀랄 만큼 명확한 결심이었다.
두려움보다 궁금함이, 그리고 그 뒷모습에 대한 어떤 갈망이 더 컸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나는 준비를 시작했다.
등산용 배낭, 여분의 손전등, 응급처치용품, 그리고 조금 더 튼튼한 도끼.
캠핑을 다니며 쌓아둔 장비들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읍내에 나가 등산용품점에 들렀다.
튼튼한 로프와 작은 나이프도 하나 더 샀다.
계산대의 직원이 물었다.
"등산 다니시나 봐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와 배낭을 꾸리는 동안, 손이 조금씩 떨렸다.
긴장인지 기대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번엔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마을에 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슬쩍 이웃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 집, 예전에 누가 살았는지 아세요?"
할머니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그 집... 오래전에 이상한 일이 있었다는 얘기는 있었지."
"어떤 일이요?"
"몰라. 사람들이 잘 얘기를 안 해."
할머니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마당을 쓸던 빗자루도 그대로였다.
"그냥... 그 집 근처엔 밤에 안 가는 게 좋다고들 했어."
"밤에요?"
"응. 뭔가 있다고. 옛날부터."
그 말을 듣고,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이상한 일이라니.)
더 물어보려 했지만, 할머니는 이미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 있었다.
"참, 오늘 저녁에 비 온다더라. 우산 챙겨 가."
나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지만, 발걸음이 무거웠다.
방금 들은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뭔가 있다는 게, 그 거울을 말하는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해가 지고 있었다.
산등성이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붉은빛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그날 숲에서 본 짐승의 눈빛과 닮은 색이었다.
바람이 불어와 나뭇잎을 흔들었다.
평소라면 그저 스쳐 지나갔을 소리였다.
하지만 그 잎사귀들이 부딪히는 소리 사이로, 아주 낯선 파문이 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붉게 물든 논밭과, 멀리 보이는 헛간의 지붕뿐이었다.
(착각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등 뒤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