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선인님, 낙제생도 통하나요?

5화

그 소리는 세 번 더 반복되다가 뚝 끊겼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그 방향을 노려봤지만, 손전등 불빛 아래로는 그저 무성한 나무 그림자만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짐승이었을까, 아니면 나 말고도 이 산에 들어온 다른 누군가였을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답을 낼 시간은 없었다. 세 번이라는 숫자가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짐승이었다면 두 번쯤에서 지쳐 도망갔거나, 아니면 세 번째부터는 아예 달려들었을 텐데. 마치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나를 시험하듯 정확히 세 번만 신호를 보낸 것 같았다. 그런 쓸데없는 분석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위기 상황에서마저 딴생각으로 새는 버릇은 여전했다. 전생이든 이번 생이든 이런 쪼잔한 습관은 안 고쳐지는구나 싶었다. 지도 위의 빛이 그 순간 유난히 강하게 반응하며 한 방향을 가리켰는데, 손바닥이 저릿할 정도로 뜨거워진 종이의 감각에 나는 하마터면 지도를 떨어뜨릴 뻔했다. 그 빛을 따라 반쯤 뛰다시피 걸음을 옮겼다. 발밑으로 젖은 낙엽과 마른 가지가 번갈아 밟히며 부스럭, 뚝, 하는 소리를 냈고, 그 작은 소음마저 지금은 지나치게 크게 들렸다. 뒤에서 뭔가가 쫓아오는 것 같은 불길한 감각이 목덜미를 따라 자꾸 스쳤지만,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돌아보는 순간 다리가 풀려버릴 것 같아서, 나는 오히려 앞만 보고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허파가 미친 듯이 요동쳤지만, 그 와중에도 이 산길을 달리다가 죽으면 사망 원인이 뭐가 될지 궁금해지는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맹랑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숲을 빠져나오자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면서, 산 중턱의 넓은 공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들이 뚝 끊기고 하늘이 트인 그 공간은, 지금까지 헤쳐온 어두운 숲과는 완전히 다른 밀도의 공기를 품고 있었다. 공터 한가운데에는 반쯤 무너진 목조 건물이 서 있었는데, 기와 몇 장은 이미 바스러져 흙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붉은 단청이 벗겨진 기둥에는 이끼가 짙게 덮여 있었다. 산신각. 지도 속 표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형태였다. 나는 그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며 건물을 훑어봤는데, 문틀 위에는 알아보기 힘든 필체로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었고, 세월에 깎여 절반쯤 지워진 글자들 사이로 겨우 남은 획들만이 그림자처럼 남아 있었다. 건물 안쪽 제단 위에는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낡은 신상 하나가 반쯤 쓰러진 채 놓여 있었는데, 그 표면에는 원래 어떤 형상이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풍화가 심했다. 숨을 고르는 그 잠깐 사이에도 손전등 불빛이 흔들리지 않게 애를 썼다. 이런 곳에서 배터리가 나가면 정말 끝장이라는 생각이 스쳤고,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배터리의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F등급 인생이라 신께 빌 자격도 없을 텐데 말이지, 하는 자조적인 농담이 저절로 따라붙었다. 지도를 꺼내 든 순간, 종이 전체가 눈부실 정도로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손이 저릿할 정도의 감각에 흠칫 놀라 지도를 놓칠 뻔했는데, 그 빛은 산신각 제단 쪽으로 곧게 뻗어나가며 마치 길을 그려내고 있었다. 마치 지도가 스스로 의지를 가진 것처럼, 내 손을 이끌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나는 그 빛을 따라 제단 앞으로 다가갔고, 무너진 신상을 조심스럽게 옆으로 밀어냈는데, 돌 표면에서 느껴지는 서늘하고 거친 질감이 손끝을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 그 아래 바닥돌 하나가 유난히 이가 맞지 않게 삐뚜름하게 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다른 돌들은 오랜 세월 서로 맞물려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는데, 그 돌 하나만 마치 최근에 누군가 손을 댄 것처럼 미세하게 어긋나 있었다. 손끝으로 그 돌을 밀어보니, 놀랍게도 무거워야 할 돌이 아주 가볍게 밀려나며 아래로 이어지는 좁은 틈을 드러냈다. 나는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돌덩이가 이렇게 가볍게 움직이는 걸 보니 이건 물리 법칙을 따르는 돌이 아니라 무슨 장치나 결계 같은 거겠구나 싶었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손은 이미 틈 안쪽을 살피고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마저 몸이 먼저 움직이는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이 바닥에 적응했다는 뜻이겠지. 틈 안쪽에서는 차갑고 습한 공기가 훅 끼쳐 나왔는데, 그 냄새는 흙냄새와는 다른, 뭐라 설명하기 힘든 묘한 향이 섞여 있었다. 곰팡이나 부패한 냄새와는 결이 달랐다. 오히려 오래된 종이나 향촉을 태운 자리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했는데, 그 안에 아주 옅게 쇠붙이 냄새 같은 것도 섞여 있어서 코끝이 계속 신경 쓰였다. 나는 손전등을 그 틈 안으로 비춰봤지만, 빛이 몇 걸음도 못 가서 삼켜지듯 사라져버렸다. 그냥 어두운 게 아니라, 빛 자체가 그 안에서 흡수되어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손전등이 고장 난 건 아닐까 흔들어봤지만, 밖으로 비추면 여전히 멀찍이까지 밝게 뻗어나가는 걸 보면 문제는 손전등이 아니라 저 틈 안쪽에 있는 무언가라는 게 분명해졌다. 지도가 그 순간 다시 한번 격렬하게 떨렸고, 종이 위의 문구가 새롭게 바뀌어 나타났다. [문이 열렸다. 연이 있는 자여, 걸음을 옮겨라.] 나는 그 문구를 읽으며 마른침을 삼켰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오르는 것 같은 감각이었는데, 동시에 이상한 흥분이 몸 전체를 훑고 지나가는 것도 느꼈다. 연이 있는 자, 라는 표현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누구랑 무슨 연이 있다는 건지, 이 지도는 대체 나를 뭐로 보고 이런 문구를 띄우는 건지 알 도리가 없었지만, 이미 이만큼 왔으니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F등급짜리 인생이 이런 걸 발견하다니, 세상 참 얄궂다는 생각이 스쳤다. 남들은 상급 던전이니 히든 피스니 하면서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데, 나는 야밤에 혼자 산을 헤매다가 무너진 산신각 밑에서 이런 걸 발견하고 있다니. 이게 인생 역전의 시작인지, 아니면 그냥 객사의 서곡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틈 앞에 무릎을 꿇고 안쪽을 살피는데, 그 순간 등 뒤에서 아까와 똑같은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에는 훨씬 가까웠다. 거리로 치면 아까의 절반, 아니 그보다 더 가까운 것 같았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것이 쭉 흘러내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손전등을 비췄는데, 공터 가장자리 나무들 사이로 두 개의 붉은빛이 어둠 속에서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짐승의 눈이라기엔 너무 높은 위치에 떠 있었고, 사람의 눈이라기엔 너무 붉고 형체가 흐릿했다. 그 높이는 대략 성인 남성의 두 배쯤은 되어 보였는데, 그 아래로 몸의 형체는 전혀 보이지 않고 그저 어둠에 녹아든 것처럼 흐릿하게 뭉개져 있을 뿐이었다. 손전등 불빛을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그 붉은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짐승이라면 저 정도 밝기의 빛에 눈을 찡그리거나 시선을 돌렸을 텐데, 저건 마치 빛 자체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시선이 정확히 나를, 그리고 내 손에 들린 지도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도망칠까, 아니면 저 틈 안으로 뛰어들까, 머릿속에서 두 가지 선택지가 팽팽하게 맞붙었지만 오래 고민할 틈은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좁은 틈 안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몸을 반쯤 접어 틈 사이로 밀어넣는 그 짧은 순간에도, 등 뒤에서 뭔가가 빠르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발밑의 바닥이 사라지며 나는 어둠 속으로 그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도를 손에서 놓치지 않으려 꽉 움켜쥔 채, 나는 그 어둠이 대체 얼마나 깊은지도 모른 채 계속해서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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