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산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 두 시가 넘어 있었다. 버스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뛰던 게 저녁 여덟 시쯤이었는데, 거기서부터 걸어 올라온 시간을 계산하면 벌써 여섯 시간째 다리를 움직이고 있는 셈이었다. 전생에 이 정도로 부지런했으면 진작 승진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지만 지금 그딴 헛소리를 곱씹을 여유는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올라온 끝에 마주한 건 녹슨 철제 펜스와 '입산 통제, 지반 붕괴 위험 지역'이라고 적힌 낡은 경고판 하나였는데, 경고판은 페인트가 절반쯤 벗겨져서 글자를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관리를 안 할 거면 차라리 경고판을 떼는 게 낫지 않나, 싶었지만 어차피 이 산에 올 사람이 나 말고 몇이나 되겠느냐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나는 펜스 아래쪽이 약간 벌어진 틈을 발견하고 배낭을 먼저 밀어넣은 다음 몸을 구겨 넣어 통과했다. 옷자락이 철사에 걸려 찢어지는 소리가 났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새 옷도 아니고 어차피 이 옷은 오늘로 임무가 끝날 예정이었으니까.
산길로 들어서자마자 공기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도심의 매캐한 냄새 대신 습기와 흙, 이끼 냄새가 코를 채웠고, 손전등 불빛이 닿는 곳마다 뒤엉킨 나뭇가지와 이끼로 덮인 바위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볼 때는 이런 냄새가 낭만적으로 느껴졌는데, 직접 맡아보니 그냥 축축하고 좀 비렸다. 나는 지도를 꺼내 방향을 확인하려 했는데, 지도 위의 빛이 산속에 들어서면서부터 훨씬 또렷해져 있었다. 마치 나침반처럼, 지도 위의 붉은 도장 문양이 특정 방향으로 옅게 흔들리며 반응하고 있었다. 이 지도를 처음 손에 넣었을 때는 그냥 낡은 종잇조각인 줄 알았는데, 산에 들어오니까 이렇게 존재감을 드러내다니. 도구도 자기가 쓰일 곳을 알아보는 건가,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그 반응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기는 동안 발밑에서 젖은 낙엽이 밟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산이라는 공간 자체가 소리를 증폭시키는 건지, 아니면 내 감각이 평소보다 곤두서 있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발밑이 미끄러워질 때마다 손전등 불빛으로 앞을 비추고, 나뭇가지가 얼굴을 스칠 때마다 팔로 막아내며 걷는 그 반복 속에서, 나는 등 뒤에서 이상한 기척이 느껴진 걸 알아차렸다. 산길로 들어선 지 삼십 분쯤 지났을 때였다.
처음엔 그냥 짐승인가 싶었다. 산에 밤중에 멧돼지나 고라니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걸음을 재촉했는데, 그 기척은 이상하게도 발소리 없이, 마치 공기의 압력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멧돼지가 발소리도 안 내고 다닌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럼 이건 뭐란 말인가. 나는 손전등을 등 뒤로 돌려 비춰봤지만, 어둠뿐이었다. 나뭇가지 몇 개와 흔들리는 이파리들,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앞을 향해 걸었다. '별거 아닐 거야, 겁먹지 마.'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지만, 심장은 이미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럴 때 보면 몸은 머리보다 솔직하다는 게 문제였다. 머리는 괜찮다고 하는데 몸은 벌써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으니.
몇 걸음 더 걸으며 나는 애써 딴생각을 하려 했다. 이런 산속에서 라면 한 그릇 끓여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하는 생뚱맞은 상상이 떠올랐다가, 지금 이 상황에 그런 걸 생각하는 내 정신 상태가 걱정될 지경이었다. 위기 상황에서도 배가 고프다는 감각만은 정직하게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했다. 그렇게 잡생각으로 두려움을 밀어내려 애쓰는 동안에도, 등 뒤의 기척은 사라지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문제는 그 기척만이 아니었다. 산길을 따라 오르던 도중, 분명히 평평했던 땅이 갑자기 움푹 꺼져 있는 걸 발견했는데, 그 구덩이 주변으로는 흙이 마치 누군가 일부러 파헤친 것처럼 뒤집혀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구덩이 가장자리를 손전등으로 비춰보다가, 그 깊이가 사람 키를 훌쩍 넘는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섰다. 만약 저기 빠졌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반 붕괴 위험이라는 경고판이 괜히 붙어 있는 게 아니었나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구덩이 벽면에는 자연적으로 생겼다고 보기 힘든 반듯한 선들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도구로 깎아낸 것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 있는 그 선들은 자연의 붕괴 흔적이라기보다는 어떤 의도를 가진 작업의 결과물처럼 보였다.
누가, 대체 왜 이런 산속 한복판에 이렇게 깊은 구덩이를 파고, 그것도 이렇게 반듯하게 깎아 놓았을까. 짐승을 잡기 위한 함정이라면 이렇게까지 정교할 필요는 없을 텐데. 나는 구덩이 안쪽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동시에 그 안에 손전등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 뭔가가 웅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먼저 뒤로 빠졌다. 호기심과 공포가 동시에 몸을 붙잡고 반대 방향으로 당기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엔 공포 쪽이 이겼다.
나는 그 구덩이를 크게 돌아서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지도 위의 붉은 도장은 여전히 같은 방향을 향해 옅게 떨리고 있었고, 나는 그 흔들림을 나침반 삼아 발걸음을 옮기는 것 외에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이상 되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몇 걸음 채 못 가서, 앞서 느꼈던 그 기척이 이번엔 훨씬 가까워졌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누군가 내 등 바로 뒤에서 숨을 참고 지켜보고 있는 듯한 그 압박감에, 나는 걸음을 옮기는 다리 근육이 뻣뻣해지는 걸 느꼈다.
나뭇가지 사이로 뭔가 검은 형체가 스치듯 지나간 것 같기도 했는데, 확신할 수는 없었다. 눈의 착각인지, 아니면 진짜로 무언가가 움직인 건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인 채 사방을 둘러봤다. 손전등 불빛이 흔들리는 게 내 손이 떨리고 있다는 증거였는데, 나는 그 떨림을 억누르려 손전등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손끝의 떨림은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 보였다. 바위처럼 생긴 저 형체도 사실은 뭔가가 웅크리고 있는 게 아닐까, 저 나무 그림자도 사실은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오갔다. 평소라면 웃어넘길 만한 망상들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 어느 것도 확실하게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그때, 오른쪽 숲속에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짐승의 발소리라기엔 너무 무겁고, 너무 규칙적인 그 소리에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뚝, 뚝, 뚝. 일정한 박자로 이어지는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 걸음을 세듯이 무겁게 내딛는 소리와 닮아 있었다. 짐승이라면 이렇게 규칙적으로 움직일 리 없었다. 나는 손전등 불빛을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천천히 돌렸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 오른 것 같은 감각과 함께,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무엇이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채로 그 자리에 서서 다음 소리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