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손 내밀어."
정령이 말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심장이 이상하게 뛰었다.
코어가 손바닥에 붙었다.
순간 뜨거운 통증이 팔을 타고 올랐다.
소리를 지를 뻔했다.
입을 틀어막았다.
뚱보가 자고 있었다.
깨우면 안 됐다.
통증이 뼈 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눈앞이 흐려졌다가 다시 선명해졌다.
그 사이, 몇 초였는지 몇 분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름을 지어줘."
통증이 가시지 않은 채 목소리가 들렸다.
"뭐?"
"나 아직 이름 없다고 했잖아. 계약자가 이름을 지어줘야 완성돼."
"지금? 이 상황에?"
"지금 아니면 언제. 통증이 가라앉으면 넌 딴생각할 거야."
말이 되는 것 같기도, 안 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손바닥이 타는 것 같은 감각 속에서 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숨을 몰아쉬며 코어를 내려다보았다.
무언가를 계속 삼키는 듯한 문양이 표면에서 돌고 있었다.
빙글빙글, 안으로 안으로 말려드는 문양이었다.
보고 있으면 속이 울렁거렸다.
"탐식령."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뭔가를 끝없이 먹어치우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무한탐식령. 나쁘지 않네."
손바닥에 낙인 같은 것이 생겼다.
작은 원형 문양이었다.
문양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삐죽삐죽했다.
손을 펴고 오므릴 때마다 그 문양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날 밤부터 손끝의 감각이 달라졌다.
차갑던 손끝에 뭔가 다른 것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설명할 수 없었다.
그냥 알았다.
오전 9시.
작업장.
나는 A급 엔진 부품을 다시 펼쳤다.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제까지만 해도 낯설던 부품 배치가 오늘은 이상하게 눈에 익었다.
손을 뻗었다.
톱니가 저절로 홈을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톱니가 순서대로 맞아 들어갔다.
네 번째, 다섯 번째까지 매끄러웠다.
손가락이 스스로 방향을 알고 움직이는 것 같았다.
뚱보가 눈을 크게 떴다.
"도현아, 너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잘해."
"연습한 보람이 나왔나 봐."
거짓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스스로도 놀랐다.
목소리에 떨림이 없었다.
평소라면 거짓말할 때 목이 살짝 잠기는데, 그것조차 없었다.
"연습이라니. 어제까지도 세 번째 톱니에서 계속 막혔잖아."
뚱보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봤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게 더 이상했다.
전에는 이런 순간에 늘 눈을 피했다.
오전 11시.
엔진 뼈대가 완성되었다.
두 달 만의 완성이었다.
완성된 뼈대를 손으로 훑었다.
표면이 매끈했다.
군데군데 내가 직접 다듬은 흔적이 보였다.
손이 떨렸다.
이번엔 기쁨 때문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됐어!"
뚱보가 나를 껴안았다.
덩치에 짓눌려 숨이 막혔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순간, 기쁨의 크기가 예상보다 작았다.
느껴야 하는데, 다 느껴지지 않았다.
두 달을 기다린 완성이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상상했던가.
뚱보와 함께 손을 맞잡고 웃는 장면을, 몇 번이나 그려봤던가.
그런데 지금, 뚱보의 품 안에서 나는 그저 숨이 막힌다는 감각 하나만 남아 있었다.
뭔가 빠진 것 같았다.
하지만 무엇이 빠졌는지 알 수 없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뚱보가 소리쳤다.
"시험 접수하러 가자!"
오후 2시.
접수처.
줄이 길었다.
대부분 흑우가 아닌, 정식 신분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그 사이에서 나와 뚱보는 눈에 띄게 초라했다.
옷차림부터 달랐다.
저들은 새 작업복을 입고 있었고, 우리는 여기저기 기름때가 눌어붙은 낡은 옷을 입고 있었다.
줄 앞쪽에서 누군가 우리를 힐끗 보고 웃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뚱보는 못 들은 척 앞만 보고 서 있었다.
나도 못 본 척했다.
"흑우 응시자, 신분 카드 제시하세요."
직원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나는 카드를 내밀었다.
손끝이 카드 모서리에 닿는 순간, 낙인이 살짝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만료 예정 9일 남았네요. 이번이 마지막 기회예요."
9일.
숫자가 명치를 때렸다.
직원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나에게는 인생을 가르는 숫자였는데, 저 사람에게는 그저 화면에 뜬 데이터 한 줄일 뿐이었다.
"압니다."
"시험은 3일 후입니다. A급 엔진 완전 조립, 실전 구동 시험이에요."
3일.
엔진 뼈대는 만들었지만, 완전 조립은 다른 문제였다.
배선, 코어 삽입, 출력 조율까지.
난이도가 훨씬 높았다.
머릿속으로 남은 작업량을 세어봤다.
배선만 최소 이틀.
코어 삽입과 출력 조율까지 합치면 사흘로도 빠듯했다.
아니, 빠듯한 게 아니라 불가능했다.
"할 수 있어."
뚱보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손바닥의 낙인을 만지고 있었다.
접수처를 나오는 길, 뚱보가 물었다.
"근데 진짜 괜찮은 거야? 요즘 너 좀 이상해."
"뭐가 이상한데."
"모르겠어. 그냥... 느낌이."
뚱보는 말을 흐리다가 그냥 웃었다.
"아니다. 신경 쓰지 마. 시험 준비하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정확히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밤이 되어 작업장에 혼자 남았다.
작업대 위에 흩어진 부품들을 내려다봤다.
배선 다발이 엉킨 실타래처럼 쌓여 있었다.
저걸 사흘 안에 다 풀어내야 했다.
"탐식령."
낙인이 반응하며 빛났다.
코어가 다시 형체를 갖췄다.
"불렀어?"
"완전 조립은 자신 없어. 도와줘."
"그건 계약 범위 안이야. 하지만 힘을 더 쓸수록 대가는 커져."
"대가가 뭔데, 아직도 안 말해줄 거야?"
"말해줘도 넌 이해 못 해. 청구서는 항상 나중에 열어보는 게 나아."
"그게 무슨 개소리야."
"믿으면 편해."
말이 되지 않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3일이라는 시간이 나를 몰아붙였다.
나는 낙인을 손톱으로 긁었다.
아무 느낌도 없었다.
그냥 표면일 뿐이었다.
"대가를 미리 말해주면 안 되는 거야?"
"안 되는 게 아니라, 말해도 소용없어. 넌 지금 그걸 감당할 준비가 안 됐어."
"준비가 안 됐다는 게 무슨 뜻인데."
"질문이 많네. 시간 없다고 하지 않았어?"
정령의 말이 맞았다.
시계를 봤다.
밤 11시 20분.
사흘 중 하루가 벌써 반쯤 지나 있었다.
"해줘."
"알겠어."
낙인에서 열기가 퍼졌다.
손끝부터 팔꿈치까지 뜨거운 전류가 흘렀다.
눈앞이 하얘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작업대 앞에 앉아 있었다.
엔진 배선이 절반쯤 완성돼 있었다.
내 기억엔 없는 작업이었다.
시계를 봤다.
새벽 3시 47분.
네 시간 넘게 지나 있었다.
그 네 시간이 통째로 사라진 것 같았다.
"이게 뭐야."
"네가 한 거야. 몸이 알아서 움직인 거지. 나는 그냥 감각을 빌려줬을 뿐이야."
손목이 시큰거렸다.
마치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한 것 같은 피로감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뜨거웠다.
평소 같으면 이 정도 작업 후엔 손이 붓고 물집이 잡혔을 텐데, 지금은 그런 흔적조차 없었다.
그게 더 이상했다.
"이래도 되는 거야? 기억이 없는데."
"기억은 사소한 거야. 결과가 중요하지."
그 말이 목에 걸렸다.
사소하다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나는 완성된 배선 다발을 다시 살폈다.
연결이 정확했다.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정교했다.
분명 내 손이 한 일인데, 내 실력이 아닌 것 같았다.
"이거 진짜 내가 한 거 맞아?"
"네 손으로 했으니까 네가 한 거지. 그럼 누가 한 거야?"
정령의 대답에는 조롱기가 섞여 있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묻는다고 답이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뚱보가 작업장에 왔다.
"밤새 작업했어? 얼굴이 왜 그래."
"좀 무리했나 봐."
거울을 본 적은 없었지만, 뚱보의 표정을 보니 내 얼굴이 어떤 상태인지 짐작이 갔다.
"밥은 먹었어?"
뚱보가 만두를 내밀었다.
평범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뚱보의 얼굴을 보면서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낯설었다.
오래 알던 얼굴인데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 코, 입의 위치는 다 아는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걸 조합한 전체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사진을 뒤집어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찰나였다.
곧 다시 익숙한 얼굴로 돌아왔다.
나는 그 위화감을 애써 무시했다.
"고마워."
만두를 받아 물었다.
맛이 나야 하는데, 나지 않았다.
입안에서 그냥 뜨거운 밀가루 덩어리가 씹히는 느낌뿐이었다.
분명 어제까지는 이 만두가 짭짤하고 고소했다.
뚱보가 새벽마다 사 오는 이 만두 하나가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뜨겁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입안에서 움직일 뿐이었다.
"맛있어?"
뚱보가 물었다.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응. 맛있어."
거짓말이었다.
또 자연스럽게 나왔다.
뚱보가 씩 웃었다.
그 웃음을 보면서, 나는 손바닥의 낙인을 다시 만졌다.
따뜻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오늘도 배선 작업 할 거야?"
"응. 코어 삽입까지 끝내야 해."
"내가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해."
"괜찮아. 나 혼자 할 수 있어."
말이 너무 빨리 나왔다.
뚱보가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웃었다.
"그래, 알았어. 무리하지 마라."
평범한 말이었다.
어머니가 할 법한, 그런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어딘가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왜 그런 소리가 났는지 알 수 없었다.
뚱보가 작업장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남은 만두를 내려다봤다.
반쪼가리였다.
먹어야 하는데 손이 가지 않았다.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뭔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손바닥의 낙인이 다시 뜨거워졌다.
마치 웃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