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재앙님, 밥은 드셨어요?

3화

정적이 오래 이어졌다. 소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도 움직이지 못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폐 속에 공기를 담아둔 채로, 그저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랜턴 불빛 아래 드러난 얼굴은 어렸다. 열여섯쯤 될까. 은발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고 뺨은 야위어 있었다. 목덜미에 남은 흉터 자국이 랜턴 빛을 받아 유난히 도드라졌다. 입고 있는 옷은 낡은 천 조각을 겨우 이어붙인 수준이었다. 어디서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걸까. 이 지하 공간 전체가 저 아이의 세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위층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계단을 두 개씩 건너뛰는 소리, 여러 사람의 숨소리가 뒤섞여 다가오고 있었다. "이도윤!" 강태오였다. 팀원들과 함께였다. 촬영 드론까지 대동한 채. 빨간 표시등이 깜박이는 작은 드론이 강태오의 어깨 옆에서 부웅, 낮게 진동하며 떠 있었다. 저걸 왜 여기까지 가지고 왔을까. 상황 파악보다 기록이 먼저인 사람이다, 저 인간은. "이게 대체 뭐야……." 강태오의 목소리가 떨렸다. 소녀를 본 순간, 그의 얼굴에서 두려움과 흥분이 동시에 지나갔다. 사냥꾼의 눈빛이었다. 위험한 걸 알면서도 손이 먼저 나가는, 그런 종류의 흥분. "태오 선배, 저건 정찰 로그에 없던 개체예요." 윤서아가 태블릿을 확인하며 말했다. 화면에 뜬 마력 수치가 계속 치솟고 있었다. [측정 불가] 장비가 표시할 수 있는 최대치를 넘어서고 있었다. 윤서아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태블릿을 쥔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저 담담함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 팀에서 가장 침착한 사람도 지금은 겁을 먹고 있다는 뜻이었다. 소녀가 몸을 일으켰다. 순간 등 뒤로 반투명한 날개의 잔상이 스쳤다. 실체가 아니라 마력의 잔영이었다. 하지만 그 잔영만으로도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 피부에 닿는 온도가 순식간에 몇 도는 떨어진 것 같았다.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저, 저게 지금……!" 팀원 하나가 뒷걸음질쳤다. 다른 하나는 무기를 꺼냈지만 손이 너무 심하게 떨려 제대로 쥐지도 못했다. 총구가 바닥을 향하다가, 벽을 향하다가, 다시 소녀를 향했다. 저러다 오발이라도 나면 진짜로 끝장이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움직이지 마세요. 자극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네가 뭘 안다고!" 강태오가 소리쳤다. 그 순간 소녀의 눈이 강태오를 향했다. 으르렁거리는 소리 같은 게 공간을 울렸다. 실제 소리가 아니라, 마력이 진동하며 만들어낸 파동이었다.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뼈로 듣는 소리였다. 등줄기를 타고 지나가는 진동이 이가 딱딱 부딪히게 만들었다. 콰앙! 뒤편 잔해 더미가 폭발하듯 튀어 올랐다. 팀원 하나가 그 충격에 밀려 나뒹굴었다. "으악!" 돌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나가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뜨끈한 느낌이 나서 손을 대보니 손끝에 붉은 게 묻어났다. 얕은 상처였다. 지금은 아프지도 않았다. 소녀는 공격한 게 아니었다. 단지 놀라서 반사적으로 마력을 흘려낸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위력이 그 정도였다. 의도한 게 아니라는 게 더 무서웠다. 저 아이가 정말로 화를 내면 어떻게 되는 걸까.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철수! 전원 철수한다!" 강태오가 외쳤다. 팀원들이 서둘러 계단 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발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이고, 누군가는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계단을 올랐다. 윤서아만 그 자리에 남아 나를 봤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눈빛에 담긴 게 뭔지는 알 수 있었다. 걱정, 그리고 망설임. "선배는요?" "저는……" 대답을 하기도 전에 강태오가 소리쳤다. "서아야, 빨리 와!" 윤서아는 잠깐 더 나를 바라보다가, 결국 몸을 돌려 계단 쪽으로 뛰어갔다. 뛰어가면서도 한 번 더 뒤를 돌아봤다. 그 눈빛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소녀가 다시 나를 봤다. 그 시선에 담긴 건 분노가 아니었다. 경계, 그리고 어쩐지 익숙한 감정. 허기. 뺨은 야위었고 눈밑은 검게 그늘져 있었다. 저 압도적인 존재감을 가진 무언가가, 그저 배고픈 아이처럼 보였다.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이 아이는 나를 죽이러 온 게 아니다. 죽일 생각이 있었다면 아까 그 잔해 폭발에서 이미 나는 끝장났을 거다. "저건 사람이 아니야! 지정개체급 반응이라고! 다들 나와!" 강태오의 목소리가 계단 위에서 울렸다. 장비 진동음이 다급하게 삑삑거렸다. 지정개체급. 그 말의 무게를 알고 있었다. 국가 단위 대응 체계가 가동되는 등급이었다. 저 아이가 그런 등급이라니, 믿기 힘들었지만 방금 본 마력 수치가 거짓말을 할 리도 없었다. 소녀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손끝에서 옅은 냉기가 흘러나와 바닥이 살짝 얼어붙었다. 발밑에서 서걱,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뒷걸음치지 않았다. 대신 배낭을 천천히 내렸다. 배낭 속에 뭐가 있었는지 정확히는 몰랐다. 그냥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할 것 같았다. "저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침을 삼키고 다시 말을 이으려 했다. 소녀의 눈이 나를 향했다. 동공이 랜턴 불빛을 받아 옅게 빛났다. 인간의 눈이라고 하기엔 너무 맑고, 너무 깊었다. 그 순간 위쪽에서 다시 강태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도윤! 뭐 하는 거야, 당장 튀어나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순간 소녀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기 때문이다. 손끝에서 뻗어 나온 냉기가 내 발끝을 스쳤다. 서늘한 감각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두려움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까. 판단할 겨를도 없이, 위층 계단에서 게이트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철커덕.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 소리가 무슨 뜻인지,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이 지하에, 저 소녀와 단둘이 남겨졌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