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브리핑실 조명이 유난히 차갑다.
형광등 불빛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깜빡인다. 오래된 건물의 전기 배선 탓인지, 이 회의실에 들어올 때마다 늘 한기가 먼저 느껴졌다. 형광등 아래 강태오의 얼굴이 번들거린다. 땀도 아니고 기름기도 아닌, 그냥 그 사람 특유의 번들거림이다. 자신감인지 무심함인지 구분이 안 되는 표정.
"이도윤, 이번 탐사는 너 혼자 간다."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혼자요? 60층을요?"
"어. 정찰조 인원이 부족해서 그래."
부족한 게 아니라 필요 없다는 뜻이겠지.
나는 속으로 삼켰다. 겉으로는 고개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답은 짧게, 표정은 담백하게.
그게 내가 이 팀에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굳이 반박해서 얻는 게 없다는 걸 이 년 동안 배웠다. 반박하면 시간이 늘어지고, 시간이 늘어지면 강태오의 눈치가 더 날카로워진다. 그럴 바엔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게 편했다.
회의실 테이블에는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묵혼 미궁의 단면도. 위에서부터 층별로 색이 다르게 표시돼 있는데, 60층은 색조차 칠해지지 않은 미지의 구간이었다. 아직 정보가 없다는 뜻이다. 색이 없다는 게 아니라, 색을 칠할 근거가 없다는 뜻.
백응 탐사대에 들어온 지 벌써 이 년째다.
스킬은 딱 하나, [온기보존].
대상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능력.
전투에는 쓸모가 없다.
대신 극저온 던전에서는 생존 필수 스킬로 취급되어야 마땅한데,
강태오는 그걸 취급하지 않았다.
"넌 그냥 밥이나 잘 챙겨. 그게 네 역할이야."
밥 담당, 온기 담당, 잡무 담당.
팀원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급식계.
부정하고 싶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나는 던전 안에서 전투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몬스터가 나타나면 뒤로 물러나고, 다른 팀원들이 정리하면 그 사이에 보온팩을 돌리고, 상처를 처치하고, 체온이 떨어진 사람 옆에 붙어 온기를 나눠주는 게 내 일이었다. 그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강태오는 그 일을 부끄러운 일처럼 취급했다.
회의실 구석에서 윤서아가 손을 들었다.
그녀의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원래 서아는 회의 중에 발언을 잘 하지 않는 편이었다. 조용히 듣고, 필요한 순간에만 짧게 의견을 내는 타입이었다. 그런 서아가 손을 들었다는 건, 그만큼 이 상황이 이상하다는 뜻이었다.
"태오 선배, 그래도 혼자 보내는 건 좀……."
"서아야, 넌 신경 쓸 거 없어."
강태오가 말을 끊었다. 서아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가 다시 다물렸다.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말은 결국 나오지 못했다.
윤서아의 눈이 나를 향했다. 미안함이 묻어 있는 눈빛이었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실은 안 괜찮았다.
혼자 60층이라니. 그 층은 지금까지 우리 팀이 가본 적 없는 심층이다. 지도상에 색조차 칠해지지 않은 미지의 구간. 그런 곳에 다섯 명이 나눠 갈 짐을 나 혼자 짊어지고 들어가야 한다는 게 정상적인 판단일 리 없었다. 그런데도 회의실 안에는 그 누구도 강하게 반대하지 않았다. 강태오의 말이 곧 결정이었고, 나머지는 그 결정에 맞춰 조용히 움직였다.
관제실에서 전달된 자료를 훑었다.
[묵혼 미궁 제60층 — 마력 반응 이상 감지]
숫자가 이상했다. 평균치의 세 배.
화면에 뜬 그래프는 일정한 선을 그리다가 갑자기 치솟는 구간이 여러 번 반복됐다. 마치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것처럼.
박정호 관제사가 화면 너머로 목소리를 보냈다.
"이도윤 씨, 심층에서 비정상적인 마력 파동이 계속 잡힙니다. 조심하세요."
"어떤 종류의 파동입니까?"
"그건…… 아직 저희도 모릅니다."
모른다는 말이 가장 무섭다.
모르는 걸 향해 혼자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더 무섭다. 박정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게 깔려 있었다. 그도 이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눈치였다. 다만 그 역시 강태오의 결정을 뒤집을 권한은 없었다.
장비를 챙기는 손이 평소보다 느렸다.
배낭에 넣은 건 비상식량 두 팩, 보온팩 세 개, 응급처치 키트가 전부였다.
원래는 다섯 명이 나눠 들 짐을 나 혼자 짊어져야 한다.
강태오는 그마저도 절반으로 깎았다.
"짧게 정찰만 하고 오는 거니까 무겁게 챙길 필요 없어."
짧게, 라는 말이 자꾸 걸렸다.
짧게 갔다가 길게 못 돌아오는 경우를 나는 이미 몇 번 봤다. 이 일을 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짧게'라는 말은 대체로 그 말을 한 사람의 착각이라는 것이다. 던전은 사람의 예상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특히 심층으로 갈수록 그렇다.
배낭을 메면서 무게를 가늠해봤다. 평소의 절반. 손끝으로 지퍼를 잠그는데 손가락이 조금 뻣뻣했다. 추워서가 아니라 신경이 곤두서서 그런 거였다.
"도윤 선배."
윤서아가 다가와 보온병을 하나 더 쥐어줬다. 병 표면이 아직 따뜻했다. 방금 챙겨온 모양이었다.
"이거라도 가져가요."
"고마워. 근데 너도 필요할 텐데."
"저는 위층에 있잖아요. 선배가 더 급해요."
서아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보온병을 건네는 그 짧은 순간에도 손끝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나는 그 떨림을 못 본 척했다. 못 본 척하는 게 서로에게 편할 때가 있다.
나는 웃었다. 진심으로 웃은 건 아니었다.
"괜찮아. 나 원래 잘 버텨."
그 말이 얼마나 얇은 위로인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잘 버틴다는 말은 사실 아무 근거도 없는 말이었다. 그냥 이 순간을 넘기기 위한 말. 서아도 그걸 알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더 캐묻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멀리서 강태오가 짐을 챙기라고 소리쳤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나는 보온병을 배낭 옆주머니에 쑤셔넣고 지퍼를 마저 잠갔다.
출발 직전, 강태오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이도윤. 60층까지 갔다가 이상 있으면 바로 복귀 신호 보내. 우리가 데리러 갈 거니까."
데리러 온다는 말.
나중에서야 그 말이 얼마나 가벼운 약속이었는지 알게 됐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때는 그 말을 그냥 형식적인 안전 절차 정도로 받아들였다. 팀장이 팀원에게 던지는 의례적인 말. 실제로 지켜질 거라고 믿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순간에는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게이트가 열렸다.
차가운 공기가 먼저 밀려나왔다. 지하 통로 특유의 습하면서도 서늘한 공기였다. 그 공기가 얼굴에 닿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했다. 어깨가 움츠러들고, 숨이 살짝 짧아졌다.
입구에 서서 뒤를 돌아봤다.
팀원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무심함, 안도, 그리고 서아의 불안.
강태오는 벌써 다른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 같은 건 이미 관심 밖이라는 듯. 다른 팀원 몇 명은 그냥 무표정하게 서 있었고, 서아만이 이쪽을 계속 보고 있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다녀올게요."
대답은 없었다.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 관제실 스피커에서 박정호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이도윤 씨, 마력 반응이 방금…… 다시 증폭됐습니다."
문이 닫혔다.
나는 그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한 채,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