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강도현은 스마트폰을 후드 주머니에 쑤셔 넣고 골목 그늘로 몸을 붙였다.
등이 벽돌 벽에 닿았다.
차가운 감촉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숨을 죽였다.
서걱, 서걱.
낫을 든 형체가 셋.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오고 있었다.
강도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예전 정원에서 본 하위 개체와는 뭔가 달랐다.
그때 그것들은 짐승처럼 걸었다.
발을 질질 끌고,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냄새를 맡듯 코를 킁킁거렸다.
지금 저 셋은 아니었다.
걸음걸이가 절도 있었다.
왼발, 오른발, 왼발.
간격이 일정했다.
짐승이 아니라 명령을 받는 병사처럼 움직였다.
강도현의 목덜미에 소름이 올라왔다.
〈이거 조련된 개체야.〉
【 경고: '사령왕'의 잔존 지휘 개체가 감지되었습니다. 】
"잔존?"
강도현은 낮게 되물었다.
입술이 거의 붙은 채로 새어 나온 말이었다.
죽인 게 끝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게이트가 클리어됐다고 알려진 지 며칠이나 지났는데.
저것들은 어디서 기어 나온 걸까.
그는 이번 몸으로 저 셋을 정면으로 상대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스탯이 붙었다지만 뼈와 근육은 열여섯 소녀 그대로였다.
팔뚝은 그의 옛 팔뚝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한 방이면 갈비뼈가 부러질 몸이었다.
'싸우지 마라. 숨어라.'
삼십 년간 몸에 박힌 원칙이었다.
적을 상대할 수 없을 땐 지형을 이용한다.
전면전은 답이 아니다.
버틸 수 없는 몸으로 버티려는 순간 죽는다.
강도현은 골목 안쪽 쓰레기 수거함 뒤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쿵.
무릎이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혔다.
아팠지만 소리는 내지 않았다.
곰팡내와 썩은 내가 코를 찔렀다.
축축한 종이 상자 냄새, 상한 음식물 냄새.
숨을 얕게 쉬었다.
폐 깊숙이 들이마시면 기침이 터질 것 같았다.
형체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
붉은 눈이 골목 안쪽을 훑었다.
강도현은 몸을 더 낮췄다.
등이 새어 나온 쓰레기봉투에 닿았다.
젖은 비닐의 촉감이 팔뚝을 스쳤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쿵. 쿵.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크게 울렸다.
〈들리면 안 돼.〉
【 스킬 '기척 은폐'가 발동됩니다. 】
체온이 급격히 낮아지는 감각이 들었다.
피부 위로 서늘한 기운이 얇게 덮였다.
숨소리마저 흡수되는 느낌이었다.
형체의 시선이 그대로 지나갔다.
'통했다.'
강도현은 그제야 숨을 조금 더 깊게 들이켰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근육 하나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형체들은 골목을 지나쳐 큰길 쪽으로 걸어갔다.
서걱, 서걱.
낫 끝이 바닥에 스치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강도현은 그 뒷모습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몰래 찍었다.
손이 떨렸지만 렌즈는 흔들리지 않게 최대한 벽에 고정했다.
팔꿈치를 쓰레기 수거함 모서리에 걸치고, 숨을 참으며 초점을 맞췄다.
셋의 뒷모습이 화면 안에 온전히 담겼다.
낫의 곡선, 걸음의 간격, 옷처럼 몸에 붙은 검은 천 조각까지.
강도현은 녹화 버튼을 누른 채 입술을 깨물었다.
이 정도 화질이면 충분하다.
【 실시간 배포가 시작되었습니다. 】
【 시청자 수: 3 】
작은 숫자였다.
아무도 관심 없는 새벽 방송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새벽 세 시, 알려지지 않은 채널, 얼굴도 모르는 목소리.
강도현은 낮은 목소리로 마스크 안에서 중얼거렸다.
"이게 사령왕 잔존 세력이다."
짧은 설명 몇 마디를 붙였다.
형체들의 걸음걸이, 무기, 이동 방향.
"세 개체. 낫 형태 무기 소지. 이동 경로는 북쪽. 걸음이 통일된 걸 보면 지휘 개체가 있거나, 아니면 저것들 자체가 지휘 개체다."
예전 브리핑 습관 그대로였다.
간결하고, 사족 없이, 필요한 정보만.
【 시청자 수: 47 】
【 시청자 수: 210 】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었다.
강도현은 화면 구석에 뜬 숫자를 보며 눈썹을 좁혔다.
'뭐지, 이 속도.'
채팅창이 폭주하듯 올라왔다.
[저거 실화냐]
[사령왕 잔존세력? 저 게이트 클리어된 거 아니었나]
[목소리 이상한데 애냐]
[진짜면 신고해야 하는거 아님]
[카메라 각도 왜 저래 손 떠는거같은데]
강도현은 채팅을 보지 않았다.
지금은 저 형체들의 위치를 놓치지 않는 게 우선이었다.
카메라를 살짝 돌려 큰길 쪽 시야를 확보했다.
형체들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같은 간격을 유지하며 멀어지고 있었다.
'저게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한다.'
그는 골목 벽을 따라 몸을 조금씩 옮겼다.
발소리가 나지 않게, 발끝부터 조심스럽게 디뎠다.
그때 화면 상단에 알림 하나가 떠올랐다.
【 '락온(오현민)' 님이 이 방송을 자신의 채널에 공유했습니다. 】
강도현은 그 이름을 몰랐다.
멈춰 서서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
락온. 오현민. 낯선 조합이었다.
하지만 채팅창이 다음 순간 폭발했다.
【 시청자 수: 4,208 】
【 시청자 수: 19,532 】
숫자가 미친 듯이 올라갔다.
1초에 수백씩 뛰는 게 보일 정도였다.
댓글창은 아예 읽을 수 없는 속도로 흘러갔다.
[락온 채널에서 왔다]
[이거 진짜 던전 영상이면 개미친 특종인데]
[배포자 신원 뭐야 확인 안 되냐]
[저 목소리 진짜 애같은데 위험한거 아님]
[신고 접수함 게이트넷에]
[아니 저거 지금 실시간이면 위치 특정되는거 아냐]
강도현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위치 특정.〉
그 단어가 머릿속에 꽂혔다.
숫자가 늘어날수록 좋을 줄 알았다.
목격자가 많아지면 증거가 되고, 증거가 되면 이 세계의 위험을 알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 신원 확인 요청 1,204건이 접수되었습니다. 】
【 게이트넷 정책상 신원 미확인 배포자는 24시간 내 서류 제출이 필요합니다. 】
강도현의 숨이 멎었다.
'하필 지금.'
90일짜리 카운트다운도 못 채웠는데, 이번엔 24시간짜리 마감이 또 하나 걸렸다.
몸을 건너 뛸 때마다 붙는 새로운 청구서 같았다.
숨 돌릴 틈도 주지 않는 시스템이었다.
소녀의 몸으로 얻은 얼마 안 되는 은신처가, 순식간에 수만 명의 눈앞에 노출된 것이다.
얼굴은 마스크로 가렸지만, 목소리는 그대로 나갔다.
말투도, 습관도, 브리핑하는 방식까지.
〈이러면 신원 조회가 오래 안 걸릴 거야.〉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스마트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강도현은 채팅창을 다시 훑었다.
[배포자 신원 뭐야 확인 안 되냐]는 문장이 자꾸 눈에 걸렸다.
누군가는 이미 그를 찾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때였다.
골목 끝에서 형체들의 발소리가 멈췄다.
서걱, 서걱, 하던 소리가 뚝 끊겼다.
강도현의 몸이 반사적으로 굳었다.
낫을 든 실루엣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왼쪽부터, 그다음 가운데, 그다음 오른쪽.
셋이 순서대로 방향을 바꾸는 모습이 마치 하나의 명령을 받은 것 같았다.
붉은 눈이 이번엔 정확히 강도현이 숨은 방향을 향했다.
〈설마.〉
마치 방송 소리를, 아니면 폭증한 시청자 수의 파장을, 어떻게든 감지한 것처럼.
강도현의 손끝이 스마트폰 위에서 얼어붙었다.
녹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숫자는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 시청자 수: 32,109 】
멈추지 않는 숫자와, 멈춰버린 형체들의 시선 사이에서, 강도현은 숨조차 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