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작전 중반, 협회는 노노냥의 소규모 팬미팅을 캠프 인근 마을회관에서 열도록 허가했다.
방송 콘텐츠 겸 사기 진작용이라고 했다.
실전 전투에 지친 탐색자들을 위한 이벤트였다.
말이야 좋았다.
탐색자들 사기 진작이라니, 마치 전쟁터에 위문공연 온 것 같은 그림이지 않은가.
이순신 장군이 명량에서 학익진을 펼치기 전에 위문공연이라도 봤으면 좀 덜 힘들었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마침 그날 세 번째 조 지원이 끝나서 참석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운명이 나를 그 자리로 끌고 갔다고 해야 할까.
둘 다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마을회관은 작았지만 사람들로 가득했다.
각 지부에서 몰려온 탐색자들, 그리고 근처에서 소식 듣고 온 외부인들까지.
좁은 공간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이니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땀 냄새, 화장품 냄새, 그리고 누군가의 도시락 냄새까지 뒤섞여서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노노냥이 무대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여러분! 힘든 작전 중에 잠깐 쉬어가는 시간이에요!"
환호성이 터졌다.
나도 힘없이나마 손을 흔들었다.
솔직히 팔이 후들거려서 제대로 흔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사흘 내내 던전을 돌고 온 몸이 이 정도 흥분에도 반응하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한지연 팀장님이 옆에서 웃었다.
"저렇게 좋아하는 얼굴은 또 처음 보네."
"팀장님도 참..."
부끄러워서 말을 흐렸다.
사실이었으니까 더 부끄러웠다.
팬미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노노냥이 노래를 부르고, 팬 서비스를 하고, 질문을 받았다.
누군가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할 생각 있으세요?" 같은 뻔한 질문을 던지면, 노노냥은 능숙하게 웃으며 받아쳤다.
"아직은 일에 집중하고 싶어요"라는 그 흔한 대답에도 사람들은 열광했다.
방청객들 표정을 보니, 다들 이 잠깐의 휴식 시간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전투복 대신 사복을 입은 탐색자들, 붕대를 감고 온 사람도 몇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노노냥의 웃음 하나가 진통제만큼의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중반쯤,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회관 뒤쪽에서 술 냄새를 풍기는 남자 무리가 들어왔다.
다섯 명 정도였다.
작전 관계자는 아니었다.
행색을 보니 이 지역 유흥업소에서 온 것 같은, 뭔가 거친 인상이었다.
슬리퍼를 끌고, 셔츠 단추를 반쯤 풀어놓고, 눈빛은 이미 반쯤 풀려 있었다.
톰슨가젤 무리 사이에 하이에나가 슬쩍 끼어든 느낌이었다.
다만 이 하이에나들은 굶주린 게 아니라 그냥 심심해서 온 것 같았다.
"어이, 노노냥!"
앞장선 남자가 소리쳤다.
덩치가 크고, 팔에 문신이 있었다.
"오늘 너 이쁘게 꾸미고 왔네?"
노노냥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하지만 방송인답게 웃음을 유지했다.
저 프로페셔널함이라니, 마치 링 위에서 카운트 열까지 세는 걸 견디는 복서 같았다.
"안녕하세요, 팬미팅 중이라..."
"팬미팅? 나도 팬이야, 팬."
남자가 무대 쪽으로 걸어갔다.
주변 스태프들이 막으려 했지만 그가 팔을 휘두르며 밀쳐냈다.
스태프 한 명이 뒤로 밀려 넘어질 뻔했다.
"만져도 되지? 팬서비스잖아."
노노냥이 한 발 물러섰다.
"저, 이건 좀 곤란한데요..."
"곤란해? 지금 장난해?"
남자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저도 사정이 있어서요."
"사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씨발."
그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주변 스태프들이 협회 쪽에 도움을 요청하는 눈치였다.
한지연 팀장님이 상황을 보고 나섰다.
"저기요, 여기 협회 행사장인데요."
"협회? 그래서 뭐?"
남자가 팀장님을 쳐다봤다.
비웃는 눈빛이었다.
"아줌마, 나 이 지역 사람이야. 여기 사장이 누군지 알아?"
사장이라는 단어에 팀장님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순간 주저하는 게 보였다.
나는 그 표정을 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팀장님이 저렇게 주저하는 모습, 처음이었다.
평소라면 협회 뒷배 믿고 당당하게 밀어붙일 사람인데.
"그, 그래도 이건..."
"협회가 여기서 뭐 대단한 척 하는데, 이 지역에서는 우리 사장님 눈치 봐야 되는 거 몰라?"
팀장님이 말을 삼켰다.
뭔가 지역 개발업자와 관련된 얘기 같았다.
협회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는 모양이었다.
협회가 만능이 아니라는 걸, 이런 순간에 뼈저리게 느낀다.
게이트가 열리면 세상이 뒤집혔다고 다들 말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방식은 여전히 돈과 힘이 지배하는구나.
노노냥이 다시 뒤로 물러섰다.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이거 놔주세요..."
노노냥의 목소리가 떨렸다.
방송에서 보던 당당한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순간 그 여린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방송 화면 너머로 늘 밝게 웃던 그 얼굴이, 지금은 겁에 질려 있었다.
그 낙차가 나를 더 흔들었다.
나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과, 나서면 안 된다는 생각이 동시에 부딪혔다.
나서면 어떻게 되지?
협회에서 눈 밖에 나면?
그럼 나도 조 배정에서 밀리는 거 아닌가?
근데 그럼 저 사람은 그냥 저렇게 당해야 되는 거야?
의문문들이 머릿속에서 쳇바퀴 돌듯 맴돌았다.
어느 것도 답이 되지 못했다.
한지연 팀장님도 그 자리에서 굳어 있었다.
"팀장님, 이거 그냥 두고 봐야 해요?"
내가 낮게 물었다.
팀장님이 나를 봤다.
눈빛에 갈등이 가득했다.
"...협회 입장에서는 지역 업체랑 문제 만들면 안 돼."
"근데 노노냥 씨가 저렇게 힘들어하는데요?"
"알아, 나도 알아. 근데..."
근데.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이 없었다.
말줄임표.
팀장님도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순간 뭔가가 마음속에서 뚝 끊어지는 걸 느꼈다.
협회의 논리, 지역 사업자와의 관계, 인력 부족 배정, 실적 뺏기.
다 이해는 갔지만, 지금 이 순간 눈앞에서 노노냥이 손목을 잡힌 채 떨고 있는 걸 그냥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런 게 어른들의 세계라면, 나는 차라리 애새끼로 남고 싶었다.
"저기요."
나도 모르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다리는 여전히 후들거렸지만 발은 멈추지 않았다.
남자가 나를 쳐다봤다.
"뭐야, 이 꼬맹이는?"
"손목 좀 놔주시겠어요."
목소리가 떨렸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남자친구야?"
주변 부하들도 낄낄거렸다.
그 웃음소리가 회관 안에 이상하게 크게 울렸다.
"팬입니다."
짧게 대답했다.
그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팬이 뭘 나서? 꺼져, 애새끼야."
남자가 노노냥의 손목을 더 세게 잡았다.
노노냥이 아픈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끊어졌다.
계산이니 눈치니 하는 것들이 전부 날아가 버렸다.
"놓으라고 했잖아요."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한지연 팀장님이 다급하게 내 팔을 잡았다.
"서준아, 잠깐만..."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남자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 새끼가 진짜..."
순간 회관 안의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방청객들이 숨을 죽이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 핸드폰을 꺼내 촬영을 시작하는 것도 보였다.
노노냥의 눈이 커졌다.
"서준님, 안 돼요, 그냥..."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의 손이 내 어깨를 밀쳤다.
쿵!
나는 뒤로 밀려나며 테이블에 부딪혔다.
주변에서 비명이 터졌다.
등에 통증이 확 번졌지만 신기하게 아프다는 생각보다 다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대로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몸을 일으키며 다시 그를 마주봤다.
남자의 표정이 재밌다는 듯 일그러졌다.
마치 사냥감이 도망치지 않고 되돌아온 걸 보는 맹수의 눈빛 같았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몸싸움 그 이상이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남자의 팔에 새겨진 문신.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문양 같았다.
어디서 봤더라?
분명 최근에, 아주 최근에 어디선가...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회관 밖에서 검은 세단 여러 대가 멈춰 서는 소리가 들렸다.
타이어가 자갈을 밟는 소리, 그리고 문이 여러 개 동시에 열리는 소리.
회관 안의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방금까지 낄낄거리던 남자들의 표정도 순식간에 굳어지는 게 보였다.
문이 벌컥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