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탐색자가 저 하나라니

2화

버스가 도착한 곳은 청주 외곽의 임시 작전 기지였다. 컨테이너 건물이 줄지어 서 있고, 각 지부 마크가 붙은 천막들이 그 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부터 낯설었다. 진천에서는 이런 규모의 작전 기지를 본 적이 없었다. 컨테이너 하나하나가 부대(unit)처럼 정렬돼 있고, 그 사이로 지프차들이 오가고 있었다. 이게 진짜 헌터 협회의 힘이구나, 싶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시선이 몰렸다. "저게 걔야?" "뭔 애가 저렇게 어려." "교복이잖아, 교복." 누군가 낄낄거렸다. 나는 교복 위에 걸친 방호코트를 괜히 만졌다. 부끄러운 게 아니라 그냥 어색해서였다. 시선이라는 게 이렇게 무거운 거였나. 등에 뭔가 얹힌 것처럼 어깨가 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팀 단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서로 어깨를 툭툭 치며 인사를 나누고,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하고. 나만 혼자였다. 아, 진짜 혼자구나. 그 사실이 새삼스럽게 목구멍을 눌렀다. 등록 데스크로 갔다. 서류를 내밀자 접수원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진천 지부, 이서준?" "네." "혼자 왔어요?" "네, 저희 지부엔 저밖에 없어서요." 접수원이 뭔가 말하려다 그냥 삼켰다. 표정이 좀 안타까웠다. 꼭 뭔가를 알고 있는데 말해주지 않는 그런 눈빛이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는 나중에야 알게 됐다. "편성표 확인해드릴게요. 잠시만요." 접수원이 모니터를 두드리는 동안 나는 주변을 다시 훑었다. 다른 지부 부스에는 최소 세 명, 많으면 열 명 가까이 몰려 있었다. 진천은 나 혼자. 숫자로 보면 답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여기, 배정된 천막 번호예요. 3구역, 청주 지부 옆에 붙어 있으니까 찾기 쉬울 거예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접수원이 작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기분 탓이었을까. 아니면 진짜였을까. 그건 나중에 알게 됐다. 임시 배정된 천막으로 갔다. 청주 지부 소속 탐색자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천막 안은 담배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장비들이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그 위에 걸터앉아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 왔네."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삼십 대 초반쯤, 눈빛이 날카로웠다. 마치 먹잇감을 감정하는 눈빛이었다. "이서준이라고?" "네, 잘 부탁드립니다." 격식체로 인사했다. 낯선 상대니까 당연했다. 아니, 낯선 상대이기도 했지만 그냥 습관이었다. 어른들 앞에서는 존댓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A랭크 상위라며. 근데 나이가..." "고등학생입니다." 순간 천막 안이 조용해졌다. 카드놀이를 하던 사람들도 멈췄다. 공기가 얼어붙는 게 느껴졌다. 그 다음엔 웃음이 터졌다. "고등학생?" "미친, 진짜야?" "진천은 애를 갈아쓰네." "야, 저거 진짜 A랭크 상위 맞아? 서류 잘못 온 거 아니야?" 비웃는 웃음이었다. 나는 뭐라 대꾸할 말이 없어서 그냥 웃었다. 어색한 웃음이었다. 속으로는 이미 열 번쯤 되받아치는 말을 상상했지만,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톰슨가젤이 하이에나 무리 앞에서 웃는 게 이런 느낌일까. 아니, 웃는 톰슨가젤은 없겠지. 리더가 손을 내밀었다. "박정호. 청주 지부 팀장이야. 편성표 보니까 너 우리 조에 붙였던데." "네, 그렇게 나왔더라고요." "뭐 할 줄 알아?" "보통 정찰이랑 선봉을 맡아왔습니다." "오, 선봉? 위험한 거네." 박정호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그 웃음이 뭘 의미하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 우리 조에서도 선봉 서라." "...알겠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마음속으론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거, 텃세다. 너무 노골적인 텃세라서 오히려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어느 조직이든 낙하산처럼 끼어든 사람에게 위험한 일을 떠넘기는 건 흔한 일이다. 나는 그저 나이 어린 낙하산일 뿐이었다. 실적이야 뭐가 중요한가. 이 사람들 눈엔 그냥 편성표에 억지로 끼워 맞춘 숫자 하나일 뿐이었다. "참고로." 박정호가 덧붙였다. "우리 조엔 이미 선봉 담당이 있어. 근데 오늘부터는 네가 해. 걔한테 좀 쉬라고 해야겠다." 옆에 있던 남자 하나가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고맙다는 건지 비웃는 건지 구분이 안 되는 웃음이었다. 작전 브리핑이 시작됐다. 대형 스크린에 지도가 떴다. 사람들이 천막 밖 광장으로 몰려나가 스크린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 목표는 청주 인근 폐광 던전입니다." 본부에서 파견된 관리자가 설명했다. 나이 지긋한 남자였다. 목소리에 피곤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얼마나 많은 브리핑을 반복했을지 짐작이 갔다. "고블린 웨이브 조짐이 확인됐고, 최악의 경우 고블린 로드 발생 가능성도 있습니다." 고블린 로드. 그 단어에 천막 안 분위기가 확 가라앉았다. 방금까지 낄낄거리던 사람들도 표정이 굳었다. 고블린 로드가 뭔지는 나도 안다. 일반 고블린 무리가 특정 개체를 중심으로 진화하면서 생기는 상위 개체. 숫자로만 밀어붙이는 웨이브와는 차원이 다른 위협이다. "조 편성은 아시다시피 각 지부 균등 배분입니다만..." 관리자가 잠시 말을 멈추고 서류를 뒤적였다. 그 잠깐의 정적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진천 지부는 인원 사정상 이서준 탐색자 한 명이 세 개 조에 걸쳐 지원을 나갑니다." 세 개 조? 나는 손을 들었다. 손을 드는 손끝이 살짝 떨렸다. "저기, 세 개 조요?" "네, 순차적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혼자서요?" "이서준 탐색자님 실력이면 충분하다고 판단됩니다." 박정호가 옆에서 픽 웃었다. "봐라, 벌써 갈려나가네."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가즈아, 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데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정신줄이라도 잡으려고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질문 있습니까?" 관리자가 형식적으로 물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당연했다. 남의 일이니까. 브리핑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이 흐렸다. 비가 올 것 같았다. 공기 중에 습기가 잔뜩 배어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아?" 한지연 팀장님이었다. 관리 업무 때문에 본부와 통화하고 있다가 이제 온 모양이었다. 숨이 좀 가빠 보였다. 급하게 달려온 것 같았다. "팀장님, 세 개 조 지원이라니요." "들었어. 나도 방금 알았어." 팀장님 표정이 굳어 있었다. 평소 침착하던 얼굴이 저렇게 무너지는 걸 처음 봤다. "이거 좀 이상한데." "이상한 정도가 아니에요. 저 혼자 세 배로 뛰라는 거잖아요." "내가 항의해볼게." "소용 있을까요?" 팀장님이 잠시 침묵했다. ... 대답이 없다는 건, 소용없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걸 눈치로 알았다. 어른들 세계도 결국 힘 있는 쪽이 이기는 거였다. 진천 지부는 힘이 없었다. 그러니까 진천 지부의 유일한 탐색자인 나도 힘이 없었다. "일단 오늘은 정찰만 나가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네..." 대답은 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정찰만이라는 말이 얼마나 가벼운 위로인지, 팀장님도 알고 나도 알았다. 장비를 챙기며 생각했다. 왜 항상 나만 이 모양일까. 왜 나는 거절을 못할까. 답은 뻔했다. 거절하면 진천이 위험해지니까. 그리고 나는, 착한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게 두려웠다. 진천에 남은 사람들 얼굴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이라는 말이 스스로도 지겨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천막 밖으로 나서는데 박정호가 다가왔다. "야, 선봉." "...네." "실력 좋다며. 보여줘봐." 그의 눈빛에 조롱이 가득했다. 나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속으로는 이순신 장군이 명량에서 열두 척으로 버텼다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도 지금 딱 그 심정이었다. 숫자는 하나도 유리하지 않은데, 물러설 곳도 없는. 정찰팀이 던전 입구로 이동했다. 걸음을 옮기는 동안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청주 지부 사람들끼리는 낄낄거리며 이야기를 나눴지만, 나는 그저 뒤에서 조용히 따라 걸었다. 발밑에서 자갈이 부서지는 소리만 유난히 크게 들렸다. 어둡고 축축한 폐광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공기가 확 바뀌었다. 마나 농도가 짙었다. 피부에 닿는 공기가 마치 젤리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안쪽이 조금씩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앞에서 뭔가 움직였다. 고블린이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눈이 여러 개 빛났다. 그 눈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뒤를 돌아봤다. 청주 지부 사람들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박정호가 낮게 중얼거렸다. "...숫자가 왜 이렇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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