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주문 대신 순간이동이라니

4화

귀국한 지 사흘 만에, 본좌는 국가 마법관리원 — 세간에서는 이를 무림맹*이라 불렀다 — 앞에 서게 되었다. *무림맹: 원래는 무림 세력들의 총연합체를 뜻하나, 여기서는 마법사들을 관리하는 관공서를 낯설게 이르는 표현. 건물은 거대한 유리탑이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그 형상이 마치 한 자루의 검을 세워놓은 듯하여, 본좌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것을 올려다보았느니라. '과연 무림맹의 총단이란 것이 예사롭지 않도다. 유리로 지었다는 것이 신묘하나, 저 정도 높이라면 경공을 써서 단숨에 오를 수도 있을 성싶구나.' 물론 그런 짓을 했다가는 곧바로 경비들에게 붙잡힐 것이 뻔했으므로, 본좌는 순순히 정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내판에는 알 수 없는 화살표와 숫자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었으나, 다행히 접수처라는 곳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통행패 — 마법사 라이센스 — 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대기실에는 본좌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저마다의 손바닥만 한 요물 — 스마트폰이라 부른다는 것 — 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손가락은 쉴 새 없이 화면 위를 움직였는데, 본좌는 그것이 무공 초식의 손짓과 비슷하다 여겼으나 곧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느니라. "다음 응시자, 이도현 씨." 직원의 부름에 본좌는 앞으로 나섰다. "시험 항목은 마력 측정, 실전 전투, 이론 필기입니다. 순서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알겠소." 마력 측정실에 들어서자 거대한 수정구가 놓여 있었다. 사람 머리통 세 개는 들어갈 법한 크기였는데, 그 속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감독관이라는 자가 옆에서 태블릿을 들고 서서 하품을 참는 얼굴로 말했다. "손을 수정구 표면에 대세요. 자연스럽게." 본좌가 손을 대는 순간, 수정구는 붉게 물들며 요란한 경보음을 냈다. 삐이이이이- [측정 불가. 기기 한계 초과.] [재측정을 권장합니다.] [재측정을 권장합니다.] 똑같은 알림이 두 번이나 반복되었다. 본좌는 그것이 마치 겁먹은 부하가 같은 말을 더듬거리며 되뇌는 형국이라 여겼느니라. 감독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이거 고장 났나?" "아뇨, 저는 그냥 서 있었을 뿐이오." "...진짜요? 다른 거 안 했어요?" "본좌는 그저 손을 댔을 뿐이니라." 감독관이 수정구를 두어 번 두드려보더니, 결국 고개를 저으며 태블릿에 무언가를 급히 적었다. "...일단 다음 항목으로 넘어갈게요. 이건 나중에 정비팀 불러야겠다." 실전 전투 시험에서는 마법 인형과 대결해야 했다. 시험장은 커다란 원형 경기장이었고, 인형은 사람보다 조금 큰 체구에 강철 같은 표면을 지니고 있었다. 감독관이 신호를 보내자 인형이 먼저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참으로 조악한 초식이로다.' 본좌는 검을 뽑아 들고 순간이동으로 인형의 뒤로 파고들었다. 타악- 인형의 목이 떨어졌다. 목이 떨어진 몸통은 몇 걸음 더 걸어가다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경기장 안은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주문 없이 이동한 거예요?" 감독관이 놀라 물었다. "그러하오." "영창도 안 하고, 마법진도 안 그리고요?" "본좌에게 그런 것은 필요 없느니라." "무영창 전이는 5급 마법사도 못 하는 건데." 감독관은 태블릿을 든 손을 떨며 무언가를 계속 적었다. 옆에 서 있던 다른 감독관이 슬쩍 다가와 화면을 들여다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이거 기록 오류 아니야?" "저도 몰라요. 일단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필기시험은 그럭저럭 통과했다. 마법 이론이라는 것이, 본좌가 몸으로 겪어온 것들을 글로 옮긴 것에 불과했으니 크게 어려울 것이 없었느니라. 다만 문제 중 몇몇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최신 마도구의 명칭을 물었는데, 그것들은 본좌가 평생 본 적 없는 물건들이었다. 정답을 알 리 없으니 대충 그림처럼 생긴 것을 고르고 넘어갔다. 최종 결과가 나왔다. [등급: 신입 1급 마법사] [통행패 발급 완료.] 작은 카드 한 장이 손에 쥐여졌다. 이것이 곧 통행패라는 것이었다. 실로 초라한 크기였으나, 이제 본좌도 정식으로 인정받은 존재가 되었느니라. '실로 감개무량하도다. 예전에는 무림맹의 인정 따위 필요 없었건만, 이제는 이런 얇은 종이 쪼가리 하나가 신분을 증명한다니.' 카드를 뒤집어 보니 본좌의 얼굴이 조그맣게 인쇄되어 있었는데, 촬영할 때 미처 표정을 준비하지 못하여 다소 얼빠진 낯이었다. 본좌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다시 찍어달라 말할 용기는 나지 않았느니라. "축하드립니다. 신입 1급은 정말 드문 케이스예요." "고맙소." "근데... 계좌는 없으신가요? 공납 받으실 때 필요해서." "공납이 무엇이오." "돈이요, 돈." 직원이 한숨을 쉬며 설명했다. 계좌란 것은 곳간과 비슷한 것으로, 그 안에 돈이 쌓이면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본좌는 그런 곳간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결국 직원의 안내를 받아 근처 은행이라는 곳까지 걸어가 신분증 — 이 또한 통행패의 일종이라 여겼다 — 을 내밀고 새로운 곳간을 하나 만들었다. 알아보니 신입 라이센스만으로는 당장 큰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갑 사정은 여전히 곳간이 텅 빈 형국이었느니라. '허허, 이제야 세상에 나와 보니 곳간이 텅 빈 것부터 배우게 되는구나. 참으로 통탄할 일이로다.' *** 건물을 나서자 서은하가 기다리고 있었다. 2년 만에 다시 본 조국의 하늘 아래에서 그녀는 여전히 서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검은 코트 자락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고, 그 모습이 마치 그림자처럼 조용히 서 있는 듯했다. "통과했네." "보고 있었소?" "당연하지. 수정구 고장 낸 사람이 어디 흔한가." "본좌가 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스스로 고장 난 것이오." "둘 다 같은 말이야." "돈이 하나도 없소. 이제 뭘 먹고 살아야 하오." "그거 때문에 임무를 하는 거야." 서은하는 짧게 웃더니 코트 안쪽에서 서류 봉투를 꺼냈다. 그 봉투는 겉보기에는 평범한 문서 같았으나, 손에 쥐는 순간 미약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본좌는 그것이 함부로 열람되지 않도록 걸어둔 인장이라는 것을 곧 알아차렸느니라. 본좌가 그것을 열어보니, 내용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명문 마법학원 잠입 임무] [대상: 정재열가(家) 두 딸] [목적: 신원 보호 및 유괴범 조직 소탕] "학원에... 잠입하란 말이오?" "학생 신분으로 들어가는 거야. 전입생으로." "본좌가 학생 노릇을 한단 말이오? 이 나이에?" "넌 이제 열일곱이잖아. 딱 고1이야." 반박할 말이 없었다. 본좌는 서류를 다시 살폈다. 서류 곳곳에는 이해할 수 없는 도표와 학생들의 신상 정보가 정리되어 있었는데, 두 소녀의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하나는 눈매가 매서웠고, 다른 하나는 웃는 얼굴이었다. "이 유괴범 조직이란 것이 대체 무엇이오." 서은하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 짧은 순간의 그늘을 본좌는 놓치지 않았느니라. "고마력 학생들만 노려서 사라지고 있어. 최근 몇 달 사이에 세 명." "세 명이나?" "응. 그리고 다음 대상이 정재열의 두 딸일 확률이 높아." "확률이라니. 확실한 것이 아니오?" "세상에 확실한 게 어디 있어." 서은하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본좌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평소의 장난스러운 기색이 사라지고, 오직 냉정한 결의만이 남아 있었다. "한 마리도 놓치지 마라." 그 한마디에 실린 무게가 예사롭지 않았다. 단순한 보호 임무가 아니라는 것을, 본좌는 직감했느니라. "...한 마리라니. 그것들이 사람이 아니란 말이오?" "그건 가서 알게 될 거야." 또 그 대답이었다. 정보를 딱 필요한 만큼만 흘리는 그 습성은 2년 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았느니라. 본좌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저 여인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필요한 정보의 절반만 던져주고, 나머지는 본좌가 알아서 몸으로 부딪혀 알아내라는 식이었다. "학원 이름이 무엇이오." "청람학원. 국내 5대 명가 자제들이 다니는 곳이야." "5대 명가라니, 그것이 무엇이오." "가서 보면 알아. 다들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애들이니까 조심해." 본좌는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 임무가 단순한 신원 보호를 넘어서는 무언가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으나, 더 캐물어봐야 서은하는 입을 열지 않을 것이 분명했느니라. 다음 날 아침, 본좌는 교복을 입고 청람학원 정문 앞에 섰다. 교복이라는 것은 실로 이상한 복장이었다. 소매가 짧고 목깃이 뻣뻣하여 움직이기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으나, 이것이 학생이라는 신분의 정복이라 하니 별수 없었다. 거대한 석조 건물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다. 정문에 새겨진 문양은 오래된 가문의 상징처럼 보였고, 담장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은 계절에 맞지 않게 무성한 잎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곳이 곧 본좌가 잠입할 무림의 총단*이로다.' *총단: 무림 세력의 중심 본부. 본좌는 옷매를 한 번 가다듬고, 어깨를 곧게 펴며 정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두 소녀를 지켜야 한다는 임무보다도, 이 낯선 복장으로 낯선 이들 사이에 섞여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큰 부담으로 다가왔느니라.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등록되지 않은 이질적인 마력 파동이 학원 곳곳의 감지진에 미세하게 걸렸다는 것을, 본좌는 알지 못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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