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다정했더니 국가급 재난이라니

5화

은하 쉐어하우스 저녁 식사 자리는 평소보다 조용했다. 감시가 붙었다는 소식이 퍼진 뒤였다. 창밖 골목 어귀에 낯선 사람들이 오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검은 옷을 입은 이들이었다. 걸음걸이가 일정했고, 시선이 항상 한 방향을 향해 있었다. 마법기사단의 감시조였다. 부엌에서는 평소처럼 국이 끓고 있었다. 된장 냄새가 식탁까지 퍼졌다. 하지만 그 익숙한 냄새조차 오늘은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창밖의 그림자들 때문이었다. 식탁에는 다섯 개의 그릇이 놓였다. 한서윤, 김하윤, 차은서, 강도윤. 그리고 빈자리 하나. 원래 없던 관습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다섯 자리는 모두 채워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누군가 강도윤 맞은편 자리를 비워두기 시작했다.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아무도 그 빈자리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 강도윤은 그 빈 그릇을 볼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자신을 마주보는 무언가가 거기 있는 것 같았다. "감시가 붙었다는데, 밥은 잘 먹네." 김하윤이 국을 뜨며 말했다. 숟가락이 그릇 바닥을 긁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먹어야 살죠." 강도윤이 답했다. "그렇게 태평한 거야,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야." "둘 다인 것 같아요." 김하윤은 픽 웃었다. 그러다 이내 표정을 굳혔다. 숟가락을 내려놓는 소리가 딱, 하고 났다. "어제 윤세아 부단장님이랑 무슨 얘기 했어." "별 얘기 안 했어요." "별 얘기 안 했는데 왜 감시가 붙어." "...제가 말을 좀 잘못했나 봐요." "말을 잘못했다는 사람치고 표정이 너무 태평한데." 강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젓가락으로 나물을 집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차은서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소리 없이, 정확한 위치에. "강도윤. 궁금한 것이 있다." "네." "당신의 말이 이 세계의 마법 통신에 영향을 준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 것 같긴 한데." 차은서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눈빛에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검을 겨루기 전 상대의 자세를 살피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검을 쥐지 않았다." "...네?" "수련을 며칠째 쉬었다는 뜻이다." 김하윤이 끼어들었다. "은서 언니가 원래 아침마다 마당에서 검 휘두르는데, 요즘 안 나가더라. 그거 너 때문이야?" 강도윤은 당황했다. "저 때문이라니, 무슨……." "진짜야. 새벽마다 목검 부딧힐 소리 들렸었는데 요즘 조용하잖아. 나도 이상하다 생각했어." 차은서가 젓가락을 다시 들었다. "당신이 있으면 마음이 흐트러진다. 검은 흐트러진 마음으로 쥐는 것이 아니다." "제가 뭘 어떻게 했다고……."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다." 강도윤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차은서는 더 설명하지 않고 식사를 계속했다. 젓가락을 움직이는 손끝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강도윤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식탁 위로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창밖에서 낮은 발소리가 지나갔다. 감시조가 골목을 오가는 소리였다. 다섯 사람 모두가 그 소리를 들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한서윤이 화제를 돌렸다. "내일부터 감시조가 정문에 상주할 겁니다. 다들 불편하겠지만 협조해주십시오." "언니는 알고 있었어?" 김하윤이 물었다. "뭘." "윤세아 부단장이 강도윤이랑 어제 마당에서 얘기한 거." 한서윤의 손이 잠시 멈췄다. 국을 뜨던 숟가락이 그릇 위에서 멈춰 섰다. "몰랐습니다." "근데 왜 표정이 그래." "...무슨 표정 말입니까." "방금 되게 놀란 표정이었는데." 한서윤은 젓가락을 다시 움직였다.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은 그릇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그 시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강도윤은 그 어색한 침묵을 눈치챘다.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감정선이 이 집 안에 얽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이 다섯 사람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는 것 같았다. 그 실의 한쪽 끝을 자신이 쥐고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껴졌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김하윤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나 오늘 학술원 게시판에서 재밌는 거 봤어." "뭔데." "누가 그러더라. 은하 골목 근처에 사는 어떤 남자가 목소리로 사람들 마음을 흔든다고. 만나본 사람들은 다 그 목소리가 그리워진다고." 강도윤의 얼굴이 굳었다. "그 사람이 나라는 거, 아직 아무도 몰라." "당연히 알지. 이 동네에서 이방인이 너밖에 없잖아." "그래도 게시판에까지 올라갈 줄은……." "학술원 애들 소문 퍼지는 속도 몰라서 그래? 하루면 골목 하나 다 돈다." 김하윤은 턱을 괴고 강도윤을 빤히 쳐다보았다. 눈빛에 장난기가 있었지만, 그 아래 다른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나만 알던 게 다 알려지는 거, 별로 안 좋아해." "...그게 무슨 뜻이에요." "몰라도 돼." 김하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그릇을 치웠다. 부엌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평소보다 빨랐다. 물소리가 곧 크게 들렸다. 그릇을 씻는 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거칠었다. 차은서가 낮게 말했다. "저 아이도 흔들리고 있다." "네?" "신경 쓸 것 없다. 다들 그럴 것이다." 차은서는 그렇게만 말하고 자리를 떴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조용히 들렸다. 한서윤과 강도윤만 남았다. 식탁 위에는 빈 그릇들과 아직 온기가 남은 국그릇 하나가 놓여 있었다. 강도윤은 맞은편의 빈자리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그 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한서윤 씨." "네." "저 때문에 다들 힘들어지는 거예요?" 한서윤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길게 이어졌다. 무언가를 재는 것 같기도 했고, 무언가를 참는 것 같기도 했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 세계 사람들은, 인정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걸 아무렇지 않게 줍니다. 사람은 처음 받아보는 것에 쉽게 흔들립니다." "인정받는 거요?" "당신은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습니다. 그리고 그 말에 대답을 합니다. 이 세계에서는 그런 대화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강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자신에게는 너무 평범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는 방식일 뿐인데, 이곳에서는 그것이 특별한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그럼 저는 그냥 있는 대로 있으면 되는 거예요? 아니면 뭔가를 바꿔야 해요?" "모르겠습니다. 저도 아직." 한서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짧게 났다. "저도 흔들리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부엌으로 향했다. 뒷모습에서 평소의 단정함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걸음걸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강도윤은 홀로 식탁에 남았다. 빈 그릇 다섯 개가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중 하나는 처음부터 아무도 채우지 않았다. 그는 그 빈 그릇을 오래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감시조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창틀에 걸린 달빛과 겹쳐서, 그림자는 실제보다 더 크게 늘어져 있었다. 그날 밤, 강도윤은 잠들지 못했다. 방 안은 어두웠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지만 눈이 감기지 않았다. 낮에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돌았다. 차은서의 굳은 눈빛. 김하윤의 물소리. 한서윤의 흔들리던 걸음걸이. 창문 너머로 낮은 말소리가 들렸다. 감시조 두 명이 나누는 대화였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밤의 정적 속에서는 또렷하게 들렸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몰라. 근데 부단장님이 직접 관리한다는 걸 보면 심상치 않은 것 같아." "위에서는 이걸 그냥 이방인 문제로 보는 게 아니라던데." "그럼 뭐로 보는데." "통신망 전체의 위협. 그렇게 부른다더라." "통신망 전체?" "응. 마법 통신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갔대. 그게 저 안에 있는 그 이방인이랑 연관 있다고." "그게 사실이면 이거 감시조 몇 명으로 될 일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위에서 신경 쓰는 거지." 강도윤은 창문 옆에 서서 그 대화를 들었다. 커튼 틈으로 바깥을 살짝 내다보았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골목 어귀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자신이 그저 평소처럼 말을 건넨 것뿐인데, 어느새 국가 단위의 위협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만이 확실했다. 그는 다시 침대에 앉았다.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만져보았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있었던 목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통신망을 흔든다니.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신의 존재가 낯설게 느껴졌다. 방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그의 방 앞에 멈춰 서 있었다. 강도윤은 숨을 죽였다. 발소리의 무게로 미루어 짐작해보려 했지만, 알 수 없었다.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오래 서 있지 않았다. 잠시 후 발소리는 다시 멀어졌다. 문을 두드리지는 않았다. 강도윤은 그 발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서윤일 수도 있었고, 김하윤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차은서였을 수도 있었다. 세 사람 모두 오늘 각자의 방식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으니까. 다만, 이 집 안에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조용히 자라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느껴졌다. 강도윤은 다시 창가로 다가갔다. 감시조는 여전히 골목 어귀에 서 있었다. 담뱃불 하나가 어둠 속에서 붉게 빛났다가 사라졌다. 창밖 멀리, 왕성의 첨탑 위로 붉은 신호탄이 짧게 솟아올랐다가 사라졌다. 강도윤은 눈을 크게 떴다. 방금 본 것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하려 했지만, 붉은 빛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첨탑은 원래의 어두운 실루엣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감시조 두 사람도 그 신호탄을 본 모양이었다. 골목 어귀에서 나누던 대화가 갑자기 멈췄다. 잠시 후 한 사람이 다급하게 어딘가로 뛰어갔다. 남은 한 사람은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강도윤은 그 광경을 창문 너머로 지켜보았다.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었다. 하지만 그 붉은 빛이 사라진 자리에서, 무언가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 좋아요 0 · 로그인 후 좋아요/별점/댓글 참여 가능

댓글 0

  •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