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다음 날, 윤세아는 정식으로 은하 쉐어하우스를 방문했다.
이번엔 갑옷 차림이었다. 은빛 갑주가 아침 햇살을 받아 차갑게 번쩍였다. 어깨에는 왕성 마법기사단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날개를 펼친 매와 그 아래를 가로지르는 검, 익숙한 사람이라면 한눈에 계급을 알아볼 표식이었다.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허리에 찬 검집. 걸을 때마다 나는 낮은 금속음. 발걸음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발소리.
대문 앞에 선 그녀의 표정은 어제보다 훨씬 단단했다.
한서윤이 대문을 열고 그녀를 맞이했다.
"부단장님이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공식 조사입니다."
윤세아의 목소리는 짧고 건조했다. 사적인 감정이 섞일 자리가 없다는 걸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듯한 말투였다.
한서윤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몸을 옆으로 비켰다. 안으로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거실에는 강도윤이 앉아 있었다. 어제와 같은 얼굴이었다. 다만 옷이 바뀌어 있었고, 머리는 아직 덜 마른 채였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그의 뒤통수 쪽 머리카락을 옅게 비췄다.
"어제 뵀었죠."
강도윤이 먼저 인사했다. 자연스럽게, 마치 어제 만난 이웃에게 인사하듯이.
한서윤이 눈을 크게 떴다. 시선이 두 사람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두 분이 이미 아는 사이였습니까."
윤세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강도윤 맞은편에 앉았다. 등을 곧게 세우고, 무릎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얹었다. 훈련받은 자세였다.
한서윤은 뭔가 더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대신 부엌 쪽으로 몇 걸음 물러서서, 이 대화가 자신의 몫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듯 팔짱을 꼈다.
"오늘은 정식으로 묻겠습니다."
"네."
"당신, 라디오 방송을 아십니까."
강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라디오요? 그게 여기서 왜 나와요."
"이 세계에는 통신 결정석이라는 게 있습니다. 목소리를 멀리 보내는 도구입니다."
윤세아는 잠시 말을 멈췄다. 다음 문장을 고르는 듯했다.
"최근 왕성 마법기사단 훈련소 근처 결정석 몇 개가 오작동을 일으켰습니다."
"제가 그거랑 무슨 상관이……."
"들어보십시오."
윤세아는 품에서 작은 결정석 하나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표면에 미세한 균열이 있었다. 균열 사이로 아주 옅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살아있는 것처럼, 숨을 쉬듯 명멸하는 빛이었다.
강도윤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유리 같기도 하고 얼음 같기도 한, 그러나 손끝을 대면 미세하게 따뜻할 것 같은 질감이었다.
"사흘 전, 이 결정석이 갑자기 빛을 냈습니다. 그 순간 근처에 있던 제 부대원 열두 명이 동시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훈련 중이었는데도요."
강도윤은 침을 삼켰다.
"이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이 결정석이 반응한 시각을 기록에서 찾아봤습니다."
윤세아는 손끝으로 결정석 표면을 살짝 문질렀다. 빛이 아주 잠깐 밝아졌다가 다시 잦아들었다.
"첫 소환 신전에서 있었던 사건, 그리고 이 골목에서 있었던 감정 공명, 두 사건과 시각이 정확히 겹칩니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한서윤도 부엌 쪽에서 걸음을 멈췄다.
"믿기 어렵겠지만, 당신이 무언가를 말할 때마다 이 세계의 통신 마법이 반응하고 있습니다."
강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끝이 저절로 무릎 위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제 부대원들이 왜 울었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결정석에 남은 잔향을 분석했습니다."
윤세아는 결정석을 두 손으로 감싸듯이 쥐었다. 눈을 잠깐 감았다가 다시 떴다.
"당신이 신전에서 했던 말, 그 문장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침착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대단하다고.'"
강도윤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기억이 났다. 신전에서, 낯선 세계에 떨어진 그 순간에도, 그는 겁에 질린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별생각 없이. 그냥 나오는 대로.
"제 부대원들은 매일 지휘관에게 실수를 지적받습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낯선 목소리가 갑자기 그들을 인정해줬습니다. 처음 듣는 말이었을 겁니다."
윤세아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저도, 그날 밤 그 잔향을 들었습니다."
강도윤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울었습니까."
정적.
윤세아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결정석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닙니다."
윤세아는 눈을 피했다. 대답이 없었다. 강도윤은 더 묻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걸 보았다. 갑주 아래 감춘 손이었지만, 완전히 감춰지지는 않았다.
한서윤이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강도윤 씨의 말이, 결정석을 통해 이 세계 전체에 퍼진다는 뜻입니까."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윤세아는 결정석을 다시 품속으로 넣으려다 멈췄다.
"하지만 진원지가 그의 목소리라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강도윤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눈앞의 두 여자가 자신을 두고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게 정확히 어떤 무게를 지닌 것인지는 아직 감이 오지 않았다.
"저는 그냥…… 평소처럼 말한 거예요."
그는 손을 들어 뒷목을 문질렀다.
"누가 힘들어 보이면 위로해주고, 누가 잘한 거 있으면 칭찬해주고.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그게 여기서는 이상 현상입니다."
윤세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말투에 날이 서 있었다.
"이 세계에서 남자는 여자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게 규칙입니다. 당신은 그 규칙을 어기고 있습니다. 모르고 어기든, 알고 어기든, 결과는 같습니다."
강도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선이 바닥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윤세아의 얼굴로 올라왔다.
"그 규칙이 잘못된 것 아닌가요."
윤세아는 순간 말을 잃었다. 갑주 안에서 어깨가 아주 살짝 굳었다.
"그런 말은……."
"제가 여기 규칙을 몰라서 그렇게 말한 게 잘못이라는 건 알겠어요. 조심할게요."
강도윤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규칙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건 다른 문제 아닌가요."
윤세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창밖에서 새 우는 소리가 아주 멀게 들렸다. 한서윤은 부엌 문틀에 손을 짚은 채로, 둘 사이의 공기가 팽팽해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 정적 사이로, 윤세아가 들고 있던 결정석이 다시 옅게 빛났다.
웅—.
낮고 짧은 울림이었다. 하지만 방 안에 있던 세 사람 모두가 그 소리를 들었다.
강도윤이 방금 한 말이, 그대로 결정석에 스며들고 있었다.
윤세아는 결정석을 황급히 품에 넣었다. 늦었다는 걸 알았지만.
손바닥으로 가슴 위를 눌렀다. 결정석의 빛이 옷 사이로 옅게 새어 나오다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이건, 보고해야 합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를 잡아가시게요?"
"...아직은 아닙니다."
윤세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갑주가 다시 낮은 금속음을 냈다.
"당분간 이 집을 벗어나지 마십시오. 왕성 마법기사단의 감시가 붙을 겁니다."
한서윤이 항의하려 했지만 윤세아는 손을 들어 막았다.
"이건 협박이 아닙니다. 보호입니다."
그녀는 강도윤을 잠깐 바라보다가, 다시 한서윤을 보았다.
"이 현상이 밖으로 퍼지면, 강도윤 씨도, 이 집 사람들도 위험해집니다."
한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어느 것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윤세아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등을 돌린 채, 그러나 나가지는 않았다.
"강도윤 씨."
"네."
"어제 밤, 당신이 별을 보고 있다고 했죠."
"네."
강도윤은 살짝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 대화를 기억하고 있다는 게 의외였다.
"그 별, 이 세계 사람들도 매일 봅니다. 그런데 아무도 새삼스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게 이상한가요."
"모르겠습니다."
윤세아는 고개를 돌려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갑주 사이로 드러난 눈빛이 조금 전보다 부드러워져 있었다.
"다만, 당신이 뭘 보고 있는지, 저는 계속 신경이 쓰일 것 같습니다."
강도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그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윤세아는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한서윤은 그녀가 사라진 문을 오래 바라보았다. 팔짱을 낀 채로, 무언가 확인하려는 듯 문틀을 응시했다.
"괜찮아?"
한참 후에야 그녀가 물었다.
강도윤은 여전히 손끝이 차가웠다. 손을 펼쳤다가 다시 오므렸다.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모르겠어요."
그는 낮게 대답했다.
"그냥…… 제가 한 말이, 어딘가에서 계속 울리고 있다는 게, 좀 이상해서요."
한서윤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밤, 왕성 마법기사단 본부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다.
넓은 회의실. 벽마다 걸린 결정석 등불이 낮게 웅웅거렸다. 탁자 위에 놓인 지도, 그 위를 가로지르는 붉은 선들. 훈련소와 은하 골목을 잇는 선이었다.
"진원지가 확정되었습니다. 은하 골목의 이방인입니다."
윤세아가 보고했다. 갑주는 벗지 않은 채였다. 얼굴에는 피로가 옅게 배어 있었다.
단장이 물었다. 나이 든 얼굴, 그러나 눈빛만은 젊은이보다 날카로웠다.
"위험도는."
"측정 불가입니다."
"측정 불가라니."
단장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회의실에 앉은 다른 기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윤세아에게 쏠렸다.
"그의 말 한 마디가 결정석 망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윤세아는 지도 위, 은하 골목을 가리켰다.
"만약 그가 의도적으로, 혹은 우연히, 더 큰 범위에서 발언하면……."
윤세아는 말을 잠시 멈췄다. 방금 낮 동안 들었던 목소리가 귓가에 다시 울리는 듯했다. 규칙이 잘못된 것 아닌가요.
"이 세계의 통신 체계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등불의 웅웅거림만이 유일한 소리였다.
단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감시 인원을 늘려라. 그리고 부단장, 당신이 직접 그를 관리한다."
윤세아는 고개를 숙였다.
"명 받겠습니다."
회의실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갑주의 금속음이 복도에 낮게 울려 퍼졌다.
대답과는 다르게, 그녀의 가슴 한쪽이 이상하게 뛰고 있었다.
건조한 임무였다. 그저 위험 요소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결정석에 남아있던 그 목소리가, 그리고 오늘 낮 그가 던진 그 질문이, 자꾸만 다시 떠올랐다.
규칙이 잘못된 것 아닌가요.
윤세아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강도윤이 어제 보고 있었다던, 그 별이 아직 그곳에 떠 있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밤이었다. 그런데 왠지, 오늘 밤은 그 별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그녀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