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왕성 마법기사단 부단장실에는 늘 서늘한 공기가 감돌았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 때문인지, 벽에 걸린 방어 결계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 방에 들어서면 누구든 등줄기가 조금 서늘해졌다. 윤세아는 그 냉기를 좋아했다. 머릿속이 맑아졌다.
그녀는 보고서를 다시 읽었다. 세 번째였다.
《감정 공명. 원인 불명. 진원지 은하 골목.》
짧은 문장인데도 자꾸 눈이 갔다. 최근 부대 안에서 이상한 일이 잇따르고 있었다. 훈련 중 갑자기 눈물을 보이는 기사가 늘었다. 검을 맞대던 병사가 갑자기 손을 놓고 주저앉았다는 보고도 있었다. 사기 저하 보고가 반복됐다. 원인은 늘 같았다.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냥, 갑자기,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기사들의 말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훈련장에서, 식당에서, 성벽 위에서. 장소는 달랐지만 증상은 같았다. 윤세아는 그 보고들을 하나씩 서류철에 꽂으며 어떤 규칙을 찾으려 했다. 시간대는 제각각이었다. 날씨도 상관없었다. 유일하게 겹치는 것은 지리적 위치였다. 왕성에서 걸어서 반 시간 거리, 은하 골목 부근.
윤세아는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주, 검술 훈련 중 이유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순간이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피로 때문이라고 정리했다. 다른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창을 열었다. 밤바람이 들어왔다. 소금기는 없었다. 대신 도시 특유의 먼지 냄새와, 아주 미약하게, 낯선 냄새가 스쳤다.
따뜻한 냄새였다.
빵 굽는 냄새와도 비슷했고, 오래된 나무 냄새와도 비슷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떤 종류의 위로처럼.
윤세아는 그 표현이 떠오른 것이 이상했다. 위로라는 단어를 냄새에 붙인 적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그 단어를 지우려 했다. 잘 지워지지 않았다.
윤세아는 창을 닫았다.
"부단장님."
부하 기사가 문을 두드렸다.
"은하 골목 조사, 직접 나가시겠습니까."
윤세아는 잠시 생각했다. 부단장이 직접 나가는 일은 드물었다. 보통은 하급 기사들에게 맡기고 결과만 받아 보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이번 일은 관례를 따를 수 없었다.
"보고서는 몇 건이나 더 올라왔지."
"오늘 오후까지 열두 건입니다."
"그 전 주엔 몇 건이었나."
"세 건이었습니다."
윤세아는 서류철을 덮었다.
"내가 간다."
"단독으로 말입니까?"
"단독으로."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위험한 건 알고 있다."
부하 기사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윤세아의 목소리에는 어떤 종류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드는 무게가 있었다. 부하 기사는 고개를 숙이고 문을 닫았다.
그날 밤, 윤세아는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은하 골목을 걸었다.
갑옷 대신 얇은 외투를 입었다. 검은 허리춤에 숨겼다.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는 것이 이 일의 절반이었다. 발소리를 죽이는 것도, 시선을 피하는 것도 훈련의 일부였다.
골목은 좁았다. 양쪽으로 낮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창문 틈으로 흘러나오는 불빛이 벽돌 위에 조각조각 떨어졌다. 어디선가 국 끓이는 냄새가 났다. 아이 우는 소리도 잠깐 들렸다가 끊겼다.
윤세아는 걸으며 생각했다. 열두 건. 전주보다 네 배. 진원지는 좁혀지고 있었다. 은하 골목, 그중에서도 특정 건물 근처. 보고서에 기록된 좌표를 그녀는 이미 외우고 있었다.
골목 끝에 담쟁이로 덮인 건물이 보였다. 은하 쉐어하우스였다.
건물은 오래되어 보였다. 담쟁이가 벽 전체를 덮고 있어서 창문 몇 개만 겨우 드러나 있었다. 마당으로 이어지는 낮은 나무 문이 열려 있었다.
마당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키가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특별히 잘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밤하늘을 올려보고 있었다. 두 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였다. 자세가 이상하게 편안해 보였다. 경계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었다.
윤세아는 걸음을 늦췄다.
이 세계 사람이라면 밤중에 낯선 이의 발소리를 듣고 그렇게 무방비하게 서 있지 않았다. 경계 없음, 그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남자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누구세요?"
목소리에 긴장이 없었다. 놀란 기색도 없었다.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이 시간에요?"
"당신도 이 시간에 마당에 서 있잖습니까."
"그건 그렇네요."
남자는 순순히 인정했다. 윤세아는 그 반응이 낯설었다. 이 세계의 남자들은 대개 반박하거나, 무시하거나, 명령했다. 순순히 인정하는 남자는 드물었다. 그녀는 그 낯섦을 잠시 곱씹었다.
"이름이 뭡니까."
윤세아가 물었다.
"강도윤입니다. 당신은요?"
"먼저 묻는 쪽이 이름을 밝히는 법 아닌가요."
"그럼 제가 먼저 밝혔으니 이제 당신 차례네요."
윤세아는 순간 말이 막혔다. 이런 식의 대꾸는 처음이었다. 대개 이 세계 사람들은 그녀의 말투에 압도되거나, 정색하고 물러섰다. 강도윤이라는 남자는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었다.
"윤세아입니다."
"윤세아 씨. 밤공기 좋죠."
"당신은 왜 여기 서 있습니까."
"별 보려고요. 여기 별이 진짜 많더라고요."
윤세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별이 많았다. 그녀는 이 도시에서 이렇게 많은 별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매일 같은 하늘이었을 텐데 새삼스러웠다. 성벽 위에서 야간 순찰을 돌 때도 이만큼 많은 별을 본 기억은 없었다.
"제 나라에서는 별이 거의 안 보였어요. 여기 오니까 그게 제일 신기하더라고요."
"당신 나라."
"아, 말이 헛나왔네요. 여기가 제 나라는 아니니까."
강도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진짜인지 아닌지, 윤세아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당신, 최근 이상한 일들에 대해 아는 것 있습니까."
윤세아가 본론을 꺼냈다.
"이상한 일요?"
"감정이 갑자기 흔들린다는 보고가 많습니다. 이 근방에서."
강도윤의 표정이 살짝 흐려졌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윤세아는 그 흐려짐을 놓치지 않았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정말입니까."
"네."
윤세아는 그의 눈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시선이 흔들리지도, 지나치게 고정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확신할 수도 없었다. 이 세계에 온 지 며칠 안 된 이방인이라는 소문은 이미 들은 바 있었다. 소문은 대개 절반쯤 사실이었다.
"방금, 표정이 조금 변했습니다."
"제가요?"
"제가 감정 얘기를 꺼내니까요."
강도윤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건... 저도 요즘 좀 이상해서요."
"이상하다니."
"그냥, 별거 아닌 일에도 마음이 좀 크게 움직여요. 여기 사람들 사정을 들으면 이상하게 눈물이 나기도 하고."
윤세아의 손끝이 살짝 굳었다. 그것은 부대 안에서 반복되던 증상과 정확히 같은 설명이었다.
"당신, 신전에서 소환된 사람 맞습니까."
강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무것도 모르는 게 당연하겠군요."
"저 아무것도 모르는 거 맞아요. 여기 규칙도 잘 몰라서 매번 눈치 보고 있어요. 어제도 식당에서 인사법을 잘못해서 주인 아주머니한테 한소리 들었어요."
윤세아는 피식 웃음이 나올 뻔했다. 참았다.
"인사법을 어떻게 잘못했습니까."
"손을 잘못 올렸대요. 여기선 왼손으로 인사하면 실례라고."
"맞습니다. 왼손은 검을 잡는 손이니까요."
"그런 이유였구나. 아무도 설명을 안 해줘서 그냥 혼만 났어요."
윤세아는 그 대답이 어딘가 억울하게 들려서, 잠깐 표정을 풀었다. 다시 곧바로 정색했다.
"당신 같은 사람이 이 도시를 흔들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제가요?"
"모르는 척하는 겁니까, 정말 모르는 겁니까."
"정말 모르는 건데요. 저 여기 온 지 열흘도 안 됐어요. 도시를 흔들 힘이 있었으면 진작에 집에 가는 방법부터 찾았을걸요."
그 말에는 어떤 종류의 진심이 묻어 있었다. 윤세아는 그 진심을 의심하는 동시에, 의심하고 싶지 않다는 낯선 충동을 느꼈다.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밤벌레 우는 소리만 들렸다.
"혹시,"
강도윤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저 때문에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거예요?"
"확실친 않습니다."
"만약 저 때문이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해요?"
윤세아는 그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대개 조사 대상은 혐의를 부인하거나 자신을 방어하는 데 급급했다. 이 남자는 방어보다 먼저 방법을 물었다.
"모릅니다. 저도 아직."
"그럼 알아내면 알려주세요. 저도 여기서 뭔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진 않아서요."
윤세아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조사는 계속될 겁니다."
"저 잘못한 거 있어요?"
"모릅니다. 그래서 조사하는 겁니다."
강도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표정이 이상하게 순진해 보였다. 윤세아는 그 순진함을 믿을 수 없었다. 이 세계에서 순진함은 대개 위장이었다. 위장이 아니라면, 더 위험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어떤 힘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더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다음에 또 뵙겠네요."
강도윤이 인사처럼 말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조사 결과에 따라 다릅니다."
강도윤은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뭔가 무섭게 말씀하시네요."
윤세아는 대답 없이 몸을 돌렸다. 골목을 빠져나가며, 그녀는 뒷목이 이상하게 뜨겁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밤공기는 차가웠는데.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뒷목에 손을 짚었다. 열은 없었다. 그런데도 뜨거운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윤세아는 그것을 훈련 중 피로의 잔재라고 정리하려 했다. 그러나 그 정리는 어딘가 억지스러웠다.
골목 어귀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강도윤은 여전히 마당에 서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 자세가 처음 봤을 때와 똑같았다. 마치 그녀가 오지 않았던 것처럼.
윤세아는 그 무해함이 오히려 마음에 걸렸다. 무해함을 가장하는 자는 대개 가장 위험한 자였다. 하지만 강도윤에게서는 가장한다는 느낌이 없었다. 가장하지 않는데도 위험할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것이 그녀를 더 불편하게 했다.
부단장실로 돌아온 윤세아는 보고서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이방인 강도윤. 무해해 보이나 확신할 수 없음. 추가 감시 필요.》
펜을 놓는 순간, 그녀는 오늘 밤 자신이 처음으로 부대의 사기 저하를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골목을 걷는 내내, 강도윤과 대화하는 내내, 그녀의 머릿속에서 보고서와 증상과 열두 건의 사례들이 잠시 지워져 있었다.
왜 잊었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창밖에서 다시 바람이 불었다. 이번에는 창을 열지 않았는데도, 그 따뜻한 냄새가 방 안까지 스며든 것 같았다. 윤세아는 고개를 저었다. 착각일 것이다. 그녀는 서류철을 정리하며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었다.
책상 위에 놓인 열두 건의 보고서가, 마치 그녀를 지켜보듯 조용히 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