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얼굴을 보자는 말에 나는 사흘을 답하지 않았다.
낯선 사람과의 대면. 상상만 해도 손끝이 저렸다. 5년 동안 나는 딱 필요한 사람들 — 택배 기사, 편의점 알바생 — 만 마주치고 살았다. 그마저도 눈을 잘 못 맞췄다. 계산대 앞에서 카드를 내밀 때도 시선은 항상 바코드 리더기 언저리에 걸쳐 두었다. 사람의 얼굴을 정면으로 본다는 건, 나에게는 일종의 격투기였다.
사흘 동안 나는 휴대폰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대화창 맨 위에는 "얼굴 한번 뵙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세요?"라는 문장이 그대로 떠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하루에도 열 번씩 읽었다. 읽을 때마다 위장이 조금씩 쪼그라들었다.
거절하는 문장을 썼다 지웠다. 스무 번쯤 반복했다. "죄송한데 저는—" 까지 쓰고 지우고, "실은 제가—" 까지 쓰고 지우고. 결국 아무것도 보내지 못한 채 사흘이 지났다.
나흘째 되던 날, 답장을 보냈다.
"저는 대면 거래는 안 해요. 죄송합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화면이 꺼진 채로 3분쯤 그대로 두었다. 상대가 뭐라고 답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손이 축축해졌다. 실망했다는 말, 왜 그러냐는 질문, 혹은 거래를 끊겠다는 통보.
띠링.
[지옥에서온용] 알겠음. 그럼 다음 주문 얘기나 하자.
의외로 순순했다. 나는 안도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주 조금, 서운했다.
서운함의 정체를 그때는 몰랐다. 아무렇지 않게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그 태도가, 마치 문을 두드리다가 별일 아니라는 듯 돌아서는 발소리처럼 느껴졌다면 — 그건 너무 과한 해석일까.
***
그 뒤로 주문이 폭주했다.
지옥에서온용이라는 닉네임은 격주로 대량 주문을 넣었다. 회복포션 오십 병, 해독제 삼십 병, 강화 촉매 스무 세트. 처음엔 개인이 쓸 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았다. 길드 단위로 소모하는 물량이었다는 걸.
작업실은 점점 좁아졌다. 재료 상자가 벽을 채우고, 완성품이 쌓이고, 나는 하루 열여섯 시간씩 조합대 앞에 앉아 있었다. 밥은 삼각김밥 아니면 컵라면이었다. 어느 날은 그마저도 잊고 있다가 새벽 세 시에 배가 고파서 깼다.
딸그락.
유리병 부딪는 소리.
치이익—.
조합액이 끓어오르는 소리.
사그락.
말린 약초를 빻는 소리.
손목이 저렸다. 눈이 침침했다. 어깨는 늘 돌덩이를 얹은 것처럼 뻐근했다. 새벽에 손을 씻으면 손끝이 갈라져 따가웠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았다.
멈출 이유가 없었다. 정확히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내 물건을 필요로 한다는 감각이, 그동안 잊고 있던 무언가를 건드렸다. 그게 뭔지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조합대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5년 전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됐다.
"이서 님 포션 아니면 안 씀."
어느 날 후기창에 그런 문장이 달렸다. 나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네 번째 읽었을 때는 화면을 캡처해서 폴더에 저장까지 했다.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면서.
필요한 사람. 대체 불가능한 존재.
그게 이렇게까지 나를 흔들 줄은 몰랐다. 5년 동안 나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었다. 방 안에서, 이 좁은 공간에서,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저 짧은 한 줄의 후기가, 마치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고 "너 거기 있었구나"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
그날 밤, 나는 결국 폭발했다.
조합 실패였다. 열 시간 넘게 매달린 상급 강화 촉매가 마지막 응결 단계에서 무너졌다. 온도를 0.5도 단위로 맞춰가며 저어야 하는 공정이었다. 화력 조절기 눈금을 몇 번이나 확인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액체는 마지막 순간에 색이 뒤집혔다. 원래는 짙은 남색이어야 할 것이 탁한 갈색으로 변했다.
유리병이 부글부글 끓다가, 퍽— 소리와 함께 안에서부터 균열이 갔다.
쨍그랑.
작업대 위로 액체가 쏟아졌다. 시큼한 냄새가 방 안을 채웠다. 코를 찌르는 산성 냄새. 창문을 열어야 하나 생각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 진짜."
목소리가 갈라졌다. 다섯 시간을 투자한 재료였다. 재료값만 이십만 원이 넘었다. 통장 잔고를 떠올리자 손이 떨렸다.
주저앉아서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바닥에 흘러내린 조합액이 서서히 굳어가는 걸 멍하니 바라봤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체 뭘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인정받고 싶어서? 누군가 필요로 해줘서?
5년 동안 애써 외면했던 질문이 갑자기 목을 조르듯 밀려왔다.
내가 이렇게까지 조합대에 매달리는 이유가, 정말로 돈 때문일까. 아니면 "이서 님 포션 아니면 안 씀"이라는 그 한 문장 때문일까.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후기 몇 줄에, 나는 내 존재를 걸고 있었던 걸까.
무릎을 세우고 이마를 묻었다. 방 안은 조용했다. 형광등이 지지직, 한 번 깜빡였다가 다시 켜졌다. 그 미세한 점멸이 신경을 긁었다.
***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똑똑.
나는 얼어붙었다. 이 시간에, 이 건물에, 나를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택배도 이미 다 받았고, 배달도 시킨 적 없었다. 시계를 봤다. 밤 열한 시가 넘어 있었다.
똑똑똑.
이번엔 조금 더 힘이 실린 노크였다. 나는 숨을 죽였다. 혹시 아래층 사람이 뭔가 항의하러 왔나. 아니면 관리실. 머릿속으로 온갖 가능성을 굴렸지만 어느 것도 딱 들어맞지 않았다.
다각.
문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사람의 걸음이었다. 조심스럽지만 망설임 없는 걸음. 신발 굽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또렷했다. 하이힐이나 구두 같은, 단단한 소리였다.
"저기, 계세요?"
여자 목소리였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는데도 어쩐지 낯이 익었다. 낮고 담백한, 어딘가 서두르지 않는 말투.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대체 누구지. 이 주소를 아는 사람은 없어야 하는데.
"윤이서 님 맞으시죠? 지옥에서온용, 아니, 강하린입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대면 거래는 안 한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머릿속이 하얘졌다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닉네임. 격주로 대량 주문을 넣던, 후기창에 저런 문장을 남기게 만든, 나를 몇 달 동안 필요로 해줬던 그 사람.
"...주소는 어떻게 아셨어요."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문에 손을 대고 있었는데,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나오는 게 느껴졌다.
문 너머로 목소리가 웃음기를 띠었다.
"택배 송장에 다 나와 있던데요. 죄송해요, 근데 진짜 급한 일이라."
너무 태연한 말투라 오히려 화가 나야 정상인데, 이상하게도 화보다 다른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이 목소리의 주인이, 지금 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 있다는 사실이 자꾸만 실감 나지 않았다.
나는 문을 열지 않은 채로 물었다.
"무슨 일이신데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문 너머에서 숨을 고르는 기척이 났다.
"제가... 지옥룡 토벌대 길드 리더예요."
순간 손잡이를 잡은 손에서 힘이 빠졌다.
지옥룡 토벌대.
국내 최상위 랭킹 길드 중 하나. 뉴스에서, 커뮤니티에서 수도 없이 봤던 이름. 랭킹 게시판 맨 위에 항상 걸려 있던, 손에 잡히지 않던 이름.
그 리더가 지금, 내 작업실 문 앞에 서 있다는 거였다.
나는 문에 등을 기대고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손끝이 저렸다.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는데, 그게 두려움 때문인지 다른 무엇 때문인지 나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문 너머에서, 강하린이라는 이름의 그 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문 좀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오래 안 걸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