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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결국 답을 보냈다. "오늘 안에 50병은 무리예요. 대신 내일까지 20병은 가능합니다." 짧게 썼다. 최대한 사무적으로. 이모티콘도 안 붙였다. 이런 종류의 손님한테는 친절함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걸, 지난 석 달 동안 몸으로 배웠다. 답은 바로 왔다. [문의] 왜 안 됨? 재료도 준다는데. 말투가 뭔가 시비 거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노트북 화면에 뜬 저 짧은 문장 하나가, 마치 내 작업실 문을 발로 뻥 차고 들어온 느낌이었다. "재료가 있어도 조합엔 시간이 걸려요. 상급 포션은 한 병당 최소 응결 시간이 40분이고, 저는 한 번에 세 병 이상 동시 조합이 안 돼요." 계산기를 두드려볼 것도 없었다. 40분씩 50번이면 밤을 새워도 모자랐다. 이 바닥에서 시간은 재료보다 비싸다. [문의] 그럼 알바 써서 하면? "저 혼자 운영합니다." 이 대답을 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살짝 쓰렸다. 혼자, 라는 단어가 이렇게 자주 튀어나올 일인가 싶었다. 사장이면서 직원이고, 영업이면서 배송이고, 심지어 클레임 응대까지 나 혼자였다. 가내수공업이라는 말이 이렇게 딱 맞아떨어질 줄은 몰랐다. [문의] 그럼 다른 데 알아봐야겠네. 뚝, 대화가 끊겼다. 허탈했다. 사기든 진심이든, 사람 진 빼는 방식이 똑같구나 싶었다. 나는 노트북을 덮으려다 말고 다시 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채팅창을 몇 번 더 스크롤했다. 아무 반응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 *** 그런데 삼십 분 뒤, 다시 메시지가 왔다. [문의] 후기 봤음. 성능 진짜임? 같은 사람이었다. 아이디도 그대로, 말투도 그대로. 나는 픽 웃었다. 헤어진 지 삼십 분 만에 다시 연락하는 전 애인도 아니고. "거짓 후기는 안 남겨요. 재구매율이 그걸 증명하고요." [문의] 재구매율 몇 프로임? "공개 안 해요." [문의] 그럼 안 믿음. 이쯤 되니 짜증보다는 신기함이 앞섰다. 이렇게까지 의심 많은 손님은 처음이었다. 보통은 후기 몇 개 보고 그냥 결제하거나, 아예 안 사거나 둘 중 하나였다. 이렇게 집요하게 캐묻는 사람은 드물었다. 마치 취조받는 기분이었다. 형사님, 저는 그냥 포션 파는 사람인데요. "믿든 안 믿든 좋아요. 대신 소량으로 먼저 테스트해보세요. 두 병만 보내드릴게요, 무료로." 답이 늦었다. 5분, 10분. 뭔가 잘못 말했나 싶어 노트북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 혹시 내가 저 문장에 뭔가 오해살 만한 걸 섞었나. 무료라는 단어가 사기꾼 냄새를 풍긴 건 아닐까. 상급 포션 두 병이면 시세로도 꽤 나가는 금액인데, 그걸 그냥 준다니까 오히려 의심스러웠던 걸까. [문의] 왜 무료로 줌? 뭔가 있음? 하아. "그냥 성능 확인시켜드리려는 거예요. 딴 의도 없습니다." [문의] 알겠음. 주소 보냄. 간결했다. 마치 방금까지의 의심은 없었던 일처럼. 이 사람 감정 기복이 날씨보다 변덕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 주소가 왔다. 강남 어딘가의 대형 빌딩이었다. 개인 주소가 아니라 사무실 주소처럼 보였다. 층수도 없고, 호수도 없었다. 그냥 건물 이름과 도로명 주소, 그리고 받는 사람 칸에 적힌 건 이상하게도 이름이 아니라 '지옥에서온용'이라는 닉네임 그대로였다. 택배 상자에 포션 두 병을 조심스레 담았다. 완충재를 두 겹으로 감쌌다. 상급 포션은 충격에 약하다. 유리병 안의 조합액이 흔들리면 효능이 떨어진다. 병 표면에 맺힌 옅은 안개 같은 김이, 상자를 여닫는 짧은 순간에도 훅 끼쳐 왔다. 은은한 허브 향과 쇠 비린내가 섞인,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익숙해진 냄새였다. 포장을 마치고 나니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 창밖을 봤다. 아무도 없었다. 당연하지, 5층이니까. 그런데도 그 시선의 잔상 같은 게 등 뒤에 남아 있었다. 목덜미가 살짝 서늘했다. 에어컨 바람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8월 한복판에 에어컨 바람이 서늘한 게 뭐 이상할 게 있나. 택배를 보내고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다른 주문들을 처리했다. 중급 포션 열 병, 해독제 다섯 병, 자잘한 문의들. 손님들 대부분은 평범했다. 가격 물어보고, 배송 기간 물어보고, 결제하고 끝. 그 정체불명의 손님만큼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사람의 답이 안 오는 사흘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채팅창을 확인했다. 마치 답장을 기다리는 게 습관이 된 것처럼. *** 나흘째 되던 날, 알림음이 울렸다. 띠링. [지옥에서온용] 후기 남겼음. 확인해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후기창을 열었다. 손가락이 살짝 떨렸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사람이 대체 뭐라고 썼을지, 좋은 말일지 나쁜 말일지 감이 안 잡혔다. ★★★★★ "진짜였음. 던전에서 죽다 살아났음. 회복 속도 미친 수준. 재주문함." 짧고 투박한 문장이었다. 맞춤법도 대충이고, 감탄사 하나 없었다. 그런데 그 다섯 개의 별이, 그 어떤 화려한 후기보다 진짜처럼 느껴졌다. 죽다 살아났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이 바닥에 있으면 안다. 던전에서 회복포션이 없어서 죽는 사람이 매년 몇 명인지도. 그런데 그 아래로 곧바로 대량 주문이 들어왔다. [문의] 상급 회복포션 50병. 이번엔 언제까지 가능? 말투가 바뀌어 있었다. 여전히 딱딱했지만, 의심이 사라진 자리에 뭔가 다른 게 들어와 있었다. 조급함, 혹은 기대감. 문장 하나하나가 예전보다 빨리 달려오는 느낌이었다. "제작 순서상 열흘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문의] 좋음. 결제함. 결제 알림이 바로 떴다. 금액을 확인하고 눈을 의심했다. 시세보다 20퍼센트나 더 얹어서 보낸 금액이었다. 계좌 앱 화면을 세 번쯤 다시 켰다. 숫자가 바뀌어 있지는 않았다. "금액이 잘못 들어온 것 같은데요." [문의] 아님. 그게 맞음. 재료비 포함이라 생각해. 이상한 사람이었다. 처음엔 무료 샘플조차 의심하더니, 이번엔 웃돈을 아무렇지 않게 얹어 보낸다. 극과 극을 왔다 갔다 하는 이 낙차가, 오히려 사람을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감사합니다." 답이 없었다. 대신 다른 메시지가 왔다. [문의] 근데 님 진짜 혼자서 이 정도 퀄리티 뽑음? 어디 소속 아님? 손끝이 멈췄다. 이 질문,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질문이었다. 길드에서도, 동종 업계 사람들한테서도. 다들 내가 어디 소속인지, 뒤에 누가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혼자예요. 어디 소속 아니고요." [문의] ... 한참 동안 답이 없었다. 화면 위 '입력 중' 표시가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켜지고, 꺼지고, 다시 켜지고. 마치 저쪽에서 문장을 썼다 지우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것 같았다. 뭔가 말하려다 지우고, 다시 말하려다 지우는 게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노트북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 점 세 개가 깜빡이는 걸 지켜봤다. 마치 상대방의 망설임이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체감상으로는 몇 분이었는데, 실제로는 채 일 분도 안 됐을지도 모른다. 이런 종류의 침묵은 항상 실제보다 길게 느껴진다. 마침내 메시지가 도착했다. [문의] 나중에 시간 되면 얼굴 한번 보고 싶은데. 괜찮음?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 정체불명의 손님이, 갑자기 얼굴을 보자고 한다. 방금 전까지 재료값이니 웃돈이니 하던 딱딱한 사업 대화와는 결이 완전히 다른 문장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세 번쯤 다시 읽었다. 혹시 오타인가, 혹시 다른 뜻인가 하고. 그런데 아무리 읽어도 뜻은 하나였다. 얼굴. 보고 싶다. 노트북 화면 옆에 놓인 시계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창밖은 이미 깜깜했고, 방 안에는 나 혼자였다. 그 사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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