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쇠 냄새가 먼저 났다.
녹슨 못을 핥은 것 같은, 비릿하고 차가운 냄새.
그다음은 소리였다.
웅ㅡ웅ㅡ.
낮게 울리는 진동음이 발바닥부터 올라왔다.
그때 나는 열세 살이었다. 중학교 1학년, 첫 던전 입장.
담임이 인솔하던 견학이었다. 요즘엔 초등학생도 견학을 간다지만 그때만 해도 중학교 1학년이 최연소였다. 다들 신기해했다. 나도 그랬다. 버스 안에서부터 애들은 떠들었다. 던전 안에 몬스터가 있냐, 진짜 위험한 거 아니냐, 안전요원이 다 잡아준다더라. 나는 창가에 붙어 앉아서 그냥 창밖만 봤다. 딱히 겁이 나서는 아니었다. 그냥 원래 그런 성격이었다.
게이트 안쪽은 상상보다 평범했다. 회백색 벽, 인공적인 조명, 안전요원들이 깔아둔 발광 테이프. 영화에서 보던 것 같은 어둠침침한 동굴은 없었다. 오히려 지하 주차장 같았다. 다만 공기가 좀 무거웠다. 숨을 쉴 때마다 폐 안쪽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이 구역은 이미 클리어된 안전 구역입니다. 여러분은 그냥 견학만 하시면 돼요."
안전요원이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5년이나 지난 일이니까.
반 아이들은 재잘거렸다. 누구는 벽을 만져보고, 누구는 발광 테이프를 밟으며 장난쳤다. 나는 조용히 뒤에서 걸었다. 딱히 무리에 끼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혼자 튀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뒤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갔을 뿐이다.
그러다 발을 헛디뎠다.
쿵.
넘어진 손바닥 밑에서 뭔가 빛났다. 씨앗처럼 생긴, 손톱만 한 결정체였다. 처음엔 그냥 반짝이는 돌인 줄 알았다. 관광지에서 파는 모조 보석 같은 거.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안쪽에서 뭔가 일렁였다. 마치 그 안에 작은 불씨가 들어있는 것처럼.
주웠다. 그게 실수였다.
두근.
손안에서 그것이 뛰었다. 심장처럼.
두근, 두근.
처음엔 내 심장이 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건 내 손안의, 그 결정체가 뛰는 소리였다. 손바닥을 통해 진동이 팔뚝까지 올라왔다. 소름이 돋았다. 놀라서 던져버리려 했는데, 손가락이 말을 안 들었다. 마치 그 결정체가 내 손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눈앞이 하얗게 지워지고, 낯선 문자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각성 조건 충족]
[직업 : 연금술사]
주변에서 비명이 들렸다. 아니, 비명이 아니라 탄식이었다. 그 미묘한 차이를, 그때는 몰랐다. 지금은 안다.
"어, 저거 연금술사네."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그 말투에 담긴 실망을 나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마치 복권을 긁었는데 꽝이 나온 걸 옆에서 지켜본 사람 같은 말투였다.
"아 뭐야, 재미없게."
"난 또 검사나 마법사인 줄."
"쟤 이제 평생 물약만 만들겠네."
전투 각성자가 아니라서 실망. 화력이 아니라서 실망. 쓸모없는 직업이라서 실망.
아이들은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지 않았을 거다. 하교 후 저녁 먹을 때쯤엔 다 잊었겠지. 그런데 나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웅성거림을 통째로 외우고 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쓸데없는 데서 기억력이 좋다.
그 순간 세계가 모래처럼 흩어졌다.
***
눈을 뜨면 늘 같은 천장이다.
5년이 지났다. 나는 이제 열여덟, 작업실 겸 자취방인 원룸에서 산다.
창밖은 아직 어둡다. 새벽 다섯 시.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몸이 먼저 깬 거다. 조합 도중에 잠들어버려서 그런지 목이 뻐근했다. 손목을 돌려보니 우드득 소리가 났다. 관절이 늙은이처럼 삐걱거렸다. 열여덟짜리 몸에서 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작업대 위에는 어젯밤 완성하다 만 하급 회복포션 다섯 병이 나란히 서 있었다. 뚜껑을 아직 안 닫아서 살짝 김이 서려 있었다. 재빨리 뚜껑을 돌려 닫았다. 온도 관리에 실패하면 효과가 반으로 뚝 떨어진다. 그 사실을 몸으로 배운 게 벌써 몇 번인지.
방 안은 좁다. 침대 하나, 작업대 하나, 작은 냉장고 하나. 벽 한쪽엔 조합 재료를 정리해둔 선반이 빼곡하다. 약초 말린 것, 마정석 조각, 정제수가 든 유리병들. 이 안에서 나는 먹고, 자고, 만든다. 세 가지가 거의 구분이 안 갈 만큼 붙어산다.
연금술사.
5년 전 그 순간 이후로 내 몸에 새겨진 이름표.
전투력 제로. 방어력 제로. 회피율... 그것도 딱히.
대신 뭔가를 '만드는' 재능만큼은 각성 판정 상위 3퍼센트라고 했다. 상위 3퍼센트짜리 재능이 있어도 사회는 그걸 재능이라 부르지 않았다.
"쓸모없다"고 불렀다.
그 말을 들은 뒤로 나는 학교를 그만뒀다. 검정고시로 대신했다. 사람들 눈을 피해 작업실에 틀어박히는 게 편했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은 늘 내 손목의 각성자 인식표를 흘긋거렸다. 등급란에 적힌 '비전투'라는 세 글자를 읽고는, 대체로 시선을 거뒀다.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한번은 편의점에서 계산하다가 뒤에 줄 선 남자가 인식표를 보고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아, 비전투. 요즘도 저런 게 각성이라고 나오나."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냥 봉지를 챙겨서 나왔다. 집에 와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화가 났다기보다는, 그냥 몸에서 힘이 빠졌다.
비웃음은 소리 없이도 아프다는 걸 그때 배웠다.
***
작업대 한쪽엔 낡은 노트북이 놓여 있다. 액정 한 귀퉁이에 실금이 가 있는데, 고치지 않고 그냥 쓴다. 화면엔 '이서의 물약가게'라는 이름의 개인 마켓 페이지가 떠 있다.
각성자 전용 커뮤니티 안에 있는 작은 개인 판매 채널. 길드도 아니고 상단도 아니고, 그냥 나 혼자 운영하는 가게다.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고, 택배로 보내고, 후기가 쌓이면 조금 웃는다.
그게 전부다. 그거면 됐다.
후기 중엔 이런 것도 있다.
'비전투 각성자가 만든 거라길래 반신반의했는데, 효과 확실합니다.'
'가격 대비 품질 최고예요.'
그 정도 후기에도 나는 며칠씩 기분이 좋았다. 사람이 참 별거 아닌 걸로도 산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살았다.
딩동.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늦은 시간 주문은 드물다. 보통 이 시간엔 아무도 안 깨어 있으니까.
확인.
[닉네임 : 지옥에서온용]
[문의] 상급 회복포션 50병, 즉시 결제 가능. 오늘 안에 만들 수 있습니까?
오타인가 싶어 다시 읽었다. 오타가 아니었다.
"50병을... 오늘?"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보통 주문은 한두 병, 많아야 다섯 병이다. 하루 만에 상급 포션 50병이라니, 이건 개인이 아니라 부대 단위 수요다. 상급 포션 하나 만드는 데도 정제와 응축, 안정화까지 최소 두 시간은 걸린다. 50병이면 밤을 새워도 못 끝낸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닉네임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지옥에서온용. 무슨 중2병 게임 아이디 같은 이름이었다. 프로필 사진도 없고, 거래 후기도 하나 없었다. 신규 계정이었다.
장난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무시하려던 순간,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문의] 재료는 이쪽에서 댈 수 있음. 제작비만 청구해. 답장 기다림.
손끝이 살짝 저릿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었다. 장난이라기엔 너무 구체적이었고, 진심이라기엔 너무 갑작스러웠다.
나는 잠시 커서를 마우스 위에 올려둔 채 화면만 노려봤다. 재료를 댈 수 있다는 말이 걸렸다. 상급 포션 재료는 흔치 않다. 시장에서 정식으로 구하려면 등급 인증이 필요하고, 그 등급 인증은 대체로 길드나 상단 소속만 받을 수 있다. 개인이 그걸 무더기로 가지고 있다는 건, 뒤가 있다는 뜻이거나 아니면 정말로 뭔가 급한 사정이 있다는 뜻이다.
둘 다 별로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문의] 급합니다. 답장 부탁.
세 번째 메시지가 도착했다. '급합니다'라는 세 글자에 붙은 존댓말이 어색했다. 앞의 두 메시지는 반말이었는데, 이건 갑자기 존댓말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것처럼.
혹은, 같은 사람인데 뭔가에 쫓기고 있거나.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새벽 다섯 시 반.
나는 답장 창에 커서를 올려둔 채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몇 번이나 움찔거렸다가 멈췄다.
쓸까, 말까.
쓴다면 뭐라고 써야 하나.
'죄송하지만 그 물량은 불가능합니다'라고 쓰려다가 지웠다.
'재료 먼저 보여주실 수 있나요'라고 쓰려다가도 지웠다.
이상하게, 그냥 무시하고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세 글자, '급합니다' 밑에 깔린 무언가가 자꾸 신경을 긁었다.
화면 오른쪽 아래 시계가 5시 47분을 가리켰다.
메시지 창은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상대는 아직 접속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