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청림고등학교 2학년 3반 복도는 점심시간마다 사람이 넘쳤다. 급식을 일찍 먹은 아이들이 매점으로 몰려갔다가 다시 교실로 돌아오는 시간이면, 좁은 복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강물처럼 흘렀다. 신발 끄는 소리, 웃음소리,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뒤섞여 벽에 부딪히고 흩어졌다.
류나겸은 그 틈에서 눈에 띄지 않는 편이 좋았다.
늘 그래왔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2년을 보내면 무난히 졸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특별히 친한 사람이 없어도 괜찮았다. 특별히 미움받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게 나겸이 택한 생존법이었다.
그날은 특별할 게 없었다. 여느 때처럼 매점에서 산 빵 하나를 손에 들고,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었다. 비닐 포장이 손안에서 바스락거렸다. 배가 고팠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습관처럼, 다른 이유가 없어서 산 빵이었다.
계단 아래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겸은 무심코 시선을 들었다.
천서준과 그 무리가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하수아, 이봄, 추가영. 학년에서 가장 화려한 세 여학생이 서준을 둘러싸고 웃고 있었다. 서준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늘 그랬다. 학교 안에서 그가 지나가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목소리, 걸음걸이, 심지어 무심하게 흘리는 웃음 하나까지도.
나겸은 벽 쪽으로 몸을 붙였다. 스쳐 지나가면 그만이었다. 그 정도의 거리는 익숙했다. 눈을 내리깔고, 발걸음을 조금 늦추고.
하지만 그 순간, 우기환이 서준의 뒤에서 걸어 나오며 나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저 새끼야, 서준아.
서준의 걸음이 멈췄다.
멈춘 발걸음 하나에, 무리 전체의 시선이 따라 멈췄다. 하수아가, 이봄이, 추가영이, 그리고 지나가던 다른 학생들 몇몇까지도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나겸의 몸이 순간 굳었다.
— 뭐가?
서준의 목소리는 낮았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평범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평범함이 오히려 나겸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우기환의 얼굴에 낭패한 표정이 떠올랐다가, 곧 애처로운 것으로 바뀌었다. 그 전환이 너무 빨라서, 나겸은 순간 숨을 삼켰다. 저건 연기다. 직감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낼 틈이 없었다.
— 야, 나 진짜 말 안 하려 했는데... 수아랑 봄이, 가영이한테 돈 주고 이상한 짓 시키려던 거, 나 다 봤거든.
복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지나가던 발걸음들이 하나둘 멈췄다. 웅성거림이 잦아들고, 그 자리에 정적만이 남았다. 시선들이 나겸을 향해 모여들었다. 마치 렌즈가 한 점으로 초점을 맞추듯이.
나겸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 무슨 소리야.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물러섰다. 등이 벽에 닿았다. 차가운 감촉이 셔츠 너머로 스며들었다.
하수아가 눈을 크게 떴다. 놀란 듯한, 그러나 어딘가 준비된 듯한 표정이었다. 이봄은 입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오는 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추가영의 표정이 굳었다. 세 사람의 반응이 마치 짜놓은 각본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 나 진짜... 얘가 우리한테 돈 준다고 이상한 데로 오라고 했었어.
하수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손끝도 떨렸다. 그 떨림이 진짜인지, 만들어진 것인지 나겸은 구분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 아니야. 나 그런 적 없어.
목소리가 자기 것 같지 않았다. 너무 얇고, 너무 힘이 없었다.
— 아니라고? 그럼 왜 우리한테 문자를 보냈는데?
이봄이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들이밀었다. 화면이 눈앞에서 흔들렸다. 나겸은 그 화면을 보지도 못했다. 눈이 초점을 맞추지 못한 채 흔들렸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계단 위쪽에서, 아래쪽에서, 옆 반 교실 문 너머에서 아이들이 목을 빼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시선이, 소리 없는 손가락질이, 순식간에 그를 둘러쌌다.
숨이 가빠졌다. 손끝이 저릿하게 떨렸다.
'이게 뭐야. 이게 무슨 상황이야.'
서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진짜야?
짧은 물음이었다. 그러나 그 물음 안에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다. 서준은 나겸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눈빛에는 나겸이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저 판정을 기다리는 대상, 이미 유죄가 확정된 피고인을 보는 눈이었다.
나겸은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이 좁아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니라고 말해봤자 누가 들어줄까. 이미 세 명이 증언하고 있었다. 이미 복도를 채운 아이들 절반이 그 말을 믿고 있었다.
'왜 아무도 내 말을 안 들어.'
우기환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서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손짓이었다. 오래된 친구 사이에서나 나올 법한 동작.
— 봐, 말 못 하잖아. 저놈 원래 좀 이상했어.
원래 좀 이상했다는 말. 나겸은 그 말을 곱씹었다. 원래, 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가 순식간에 자신을 짓눌렀다. 언제부터 이상했다는 걸까. 누가 그렇게 정했을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서준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이 모든 것을 결정지었다.
단 한 번의 끄덕임.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복도를 채운 웅성거림은 그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야?", "쟤가?", "미친 거 아니야." 목소리들이 겹치고 부딪히며 하나의 소음으로 뭉쳐졌다.
누군가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찰칵.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마치 그 한 번의 소리가 나겸의 남은 학교생활 전체를 결정지어버린 것 같았다.
나겸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서 있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손에 든 빵이 바닥에 떨어졌다.
툭.
포장지가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아무도 그것을 주워주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것을 발로 슬쩍 밀어냈고, 누군가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고 지나갔다. 그 광경이, 어쩐지 나겸 자신의 처지와 똑같아 보였다.
그날 오후가 되기도 전에, 전교생이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성범죄를 저지르려다 걸린 놈. 여학생 셋에게 돈을 주고 이상한 짓을 시키려던 놈. 이름과 얼굴이 순식간에 짝지어졌고, 그 짝은 다시는 떼어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하게 굳어갔다.
교실로 돌아가는 길, 나겸은 누군가의 시선을 등 뒤에서 느꼈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 시선이 진짜라는 걸 확인하게 될 테니까.
진실은 그 소문 속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