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자폭 검사, 이세계서 터지다

1화

법정 안은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이상했다. 서른 명은 족히 앉아있을 방청석이 텅 비어 있었고, 딱 세 사람—피고인 가족 두 명과 나—만이 앉아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주운전 사망사고, 그것도 뺑소니. 언론이 안 다뤄줄 사건도 아닌데, 아무도 안 왔다. 세상이 이런 일에 얼마나 무감각해졌는지, 그 텅 빈 방청석이 증명하고 있었다. 판사가 판결문을 읽는 동안 나는 손끝의 스위치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양복 안쪽 주머니에 넣어둔 리모컨을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손톱으로 스위치 표면을 긁는 소리가 내 귀에만 유독 크게 들렸다. 법정 서기는 눈치도 못 챘다. 당연하다, 검사가 폭탄을 갖고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나. "피고인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다."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인 놈에게, 집행유예. 웃기지 않나? 웃긴데 나만 안 웃는다. 판사는 판결문을 덮으며 안경을 고쳐 썼다. 그 손짓이 어찌나 사무적이던지, 사람 목숨 하나가 서류 한 장으로 정리되는 그 순간이 이렇게 담백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방청석 뒤쪽에 앉은 피고인 가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그 한숨소리를 정확히 들었다. 7년 전에 아내를 잃었다. 작년엔 아들을 잃었다. 둘 다 같은 방식으로, 같은 종류의 인간에게. 아내는 신호를 지키다가 죽었고, 아들은 인도를 걷다가 죽었다. 둘 다 죄가 없었다. 가해자들은 둘 다, 집행유예 아니면 벌금형이었다. 법은 그때도 지금도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참으십시오, 검사님. 법치국가입니다." 법치국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그 단어를 씹어 먹었다. 오늘도 씹었다. 어금니가 갈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세게 씹었다. [전도서 1:2,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러네요, 목사님. 정확한 진단입니다. 근데 저는 헛된 걸 알면서도 뭘 하나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법정을 나서면서 나는 판사와 눈을 마주쳤다. 판사는 나를 알아봤다. 같은 청사에서 몇 년을 마주친 사이였으니까. 그는 나에게 작게 목례를 했고, 나도 목례로 답했다. 서로 아무 말도 안 했지만, 그 눈빛 안에 담긴 무언가가 있었다. 당신도 알잖아, 이게 정의가 아니라는 거. 근데 그건 판사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법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들기로 한 거다. 나는 검사 배지 안쪽에 숨겨둔 것을 꺼냈다. 동료들이 알았다면 기함했을 물건이었다. 폭탄이라고 하면 거창하고, 사제 폭발물이라고 하면 정확하다. 재료는 인터넷에서 다 구할 수 있었다. 검색 기록은 지우는 방법도 인터넷에서 배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든 정보를 알려준 게 국가가 관리하는 인터넷망이었다. 법치국가가 나에게 폭탄 제조법을 가르쳐준 셈이다. 이런 걸 두고 자업자득이라고 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시스템의 구멍인 건가. 검사가 이런 걸 왜 만드냐고? 7년을 준비하면 뭐든 만들 수 있다, 사람이란 게. 처음엔 그냥 죽고 싶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그냥 죽는 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인생, 뭐라도 하나 터뜨리고 가야 하지 않겠나. 판사석 바로 아래, 법정 마루 밑에 미리 설치해둔 게 있었다. 오늘 이 순간을 위해서 세 번이나 야간에 법원 청사에 몰래 들어왔다. 검사 신분증이 이럴 때는 참 편리했다. 딸깍. 스위치를 눌렀다. 마지막 순간에 나는 딱히 아무 생각도 안 했다. 원래 이런 순간에는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던데, 개뻥이었다. 그냥 눈앞이 하얘졌을 뿐이다. 소리도 안 들렸다. 빛도 딱히 강렬하지 않았다. 그냥, 하얬다. * 눈을 떴을 때 나는 아직 살아 있었다. 살아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실패했나"였다. 두 번째 생각은 "근데 여기 뭐야"였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손끝에 닿는 바닥의 감촉이 이상했다. 차갑고 매끄러운 대리석. 법원 마루는 이런 재질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법원엔 이렇게 넓은 공간이 없다. 천장이 너무 높았다. 목이 아플 정도로 고개를 꺾어야 끝이 보였다. 대리석 기둥이 사방에 서 있었고, 바닥엔 금빛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법원 건물엔 이런 인테리어 예산 없다. 아무리 예산 짠 국가라도, 이 정도 스케일의 건축물을 짓는 데 필요한 예산 심의 통과가 안 될 거다. 그러니까 이건 법원이 아니다. 그리고 내 주변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잔뜩 있었다. 대략 서른 명쯤, 겁에 질린 얼굴로 서로를 붙잡고 있었다. 청호고등학교라고 명찰에 쓰여 있는 게 보였다. 방금까지 법정에 있던 검사와 어디 다른 지역 고등학생 무리가 왜 같이 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됐다. 심지어 몇몇 애들은 체육복 차림이었다. 체육 시간에 갑자기 여기로 온 건가. 그럼 나는 재판 시간에 여기로 온 건가. 시공간이 대체 뭔 기준으로 사람을 끌어온 건지, 알 방법이 없었다. "저기요, 아저씨도 소환된 거예요?" 누군가 물었다. 소환? 그 단어를 듣자마자 나는 머리를 싸매쥐었다. 판타지 소설도 안 읽는 내가 이런 일을 겪는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평소에 웹소설이라도 좀 봐놨으면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법이라도 알았을 텐데. 지금 이 순간 가장 후회되는 게 폭탄을 터뜨린 게 아니라 판타지 장르를 안 읽은 거라니, 참 나답다. 주변을 살피자 학생들의 표정이 제각각이었다. 어떤 애는 울고 있었고, 어떤 애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두드리다가 안 켜지는 걸 확인하고 절망했고, 어떤 애는 이 상황이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나이대별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이렇게 다르구나. 나는 그저 손끝의 리모컨—이제는 아무 의미도 없어진 그 스위치를 아직도 쥐고 있다는 걸 깨닫고 조용히 주먹을 풀었다. 촤아아악! 갑자기 신전 정면의 커다란 문이 열리며 흰 로브를 입은 노인이 들어왔다. 신관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는데, 말투가 지나치게 나긋나긋해서 오히려 무서웠다.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눈빛만은 형광등처럼 차가웠다. "환영합니다, 카나한 왕국의 새로운 축복받은 자들이여." AKASHA VEL SOTHIS. RASU EL KANAHAN. 신관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언어가 흘러나왔고, 그 순간 허공에 빛나는 글자들이 떠올랐다. [대소환 의식이 완료되었습니다] [개별 위계 및 스킬을 배정합니다] 뭔 게임 로딩화면 같은 게 눈앞에 뜬다.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으니까. 게다가 판사도, 법정도, 폭탄도 없는 이 공간에서 미쳐봤자 손해는 나만 보는 거였다. 학생들 하나하나에게 빛의 문양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신관이 학생 이름을 하나씩 부를 때마다, 그 학생의 몸 위로 은빛 문양이 떠올라 잠깐 반짝이다가 스며들었다. "이건우, 위계: 검사(劒士). 스킬: 검기 발현." 안경 쓴 남학생 하나가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입을 벌렸다. "박서연, 위계: 정찰자. 스킬: 기척 감지." 긴 머리 여학생이 옆 친구를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 "정재현, 위계: 신관 후보. 스킬: 정화의 빛." "최유나, 위계: 마도사. 스킬: 화염구 시전." 이런 식으로 신관이 이름을 부르며 위계를 발표했다. 학생들 얼굴에 안도와 흥분이 동시에 번졌다. 판타지 세계에 소환됐는데 능력을 받는다니, 저 나이대엔 오히려 로또 아닌가. 몇몇은 손바닥에서 작은 불꽃이 피어오르는 걸 보고 환호성을 질렀고, 몇몇은 자기 몸에 새겨진 검기의 잔상을 보며 서로 자랑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겁에 질려 울던 애들이 이제는 눈을 빛내며 스킬을 시험해보고 있었다. 젊다는 게 저런 거구나. 적응 속도가 나랑은 차원이 다르다. 내 차례가 됐다. "강태호." 신관이 내 이름을 부르는데, 그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 방금까지 학생들을 부를 때와는 확연히 다른, 뭔가 께름칙한 걸 씹은 표정이었다. "위계... 산출 불가." 주변이 웅성거렸다. 신관은 다시 뭔가를 중얼거리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빛의 줄기가 내 몸을 훑고 지나갔는데, 그 감촉이 마치 엑스레이를 통과하는 것처럼 서늘했다. 빛의 문양이 내 몸 위로 떠올랐다가, 이내 검붉게 변색됐다. 방금까지 다른 학생들 몸에 새겨졌던 은빛과는 전혀 다른, 마치 응고된 피 같은 색이었다. [비정상 개체 감지] [해당 개체는 '소환 명단'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위계 부여 프로토콜 오류: 강제 대체 위계 적용] [위계: 소환되지 않은 자] [스킬: 폭산(爆散)] 소환되지 않은 자? 나는 초청도 안 받은 파티에 껴서 케이터링만 축내는 인간이 된 셈이었다. 웃기지도 않는데, 왜인지 그게 제일 웃겼다. 가만 보니 이것도 나름 일관성이 있었다. 법정에서도 초청 안 받은 폭탄을 터뜨렸고, 여기서도 초청 안 받은 존재로 끼어들었으니까. 어디 가든 불청객 신세는 못 벗어나는 팔자인가 보다. "이, 이게 무슨..." 신관의 목소리가 떨렸다. 노인이 이렇게 당황하는 걸 보니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신관 옆에 서 있던 시종 하나가 급히 두꺼운 책자를 펼쳐 뭔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책자를 넘기는 손이 눈에 보일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욥기 41:21, 그 입에서는 불이 나오고 불꽃이 튀는구나] 야, 정확히 내 얘기잖아. 성경이 나를 이렇게 정확하게 예언해줄 줄은 몰랐다. 아니, 예언이 아니라 그냥 묘사인가. 아무튼 지금 이 상황에서 성경 구절 하나가 이렇게 소름 돋게 맞아떨어지는 게, 신학적으로 뭘 의미하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주변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쏠렸다. 방금까지 자기들끼리 흥분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나를 마치 잘못 배달된 폭발물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실제로 폭발물 맞으니 틀린 시선은 아니었다. 검기 발현으로 신났던 남학생도, 화염구로 흥분했던 여학생도, 모두 슬금슬금 나에게서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났다. 아까까지 서른 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무리 한가운데 나 혼자 덩그러니 남는 형국이 됐다. "저 아저씨... 뭐예요?" 누군가 속삭였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나도 몰랐으니까, 방금까지 나는 그냥 검사였다. 정확히는 사람을 죽이려던 검사였고, 지금은 정체불명의 폭탄 인간이 됐다. 경력 갈아치우는 속도가 참 무섭다. [비정상 개체는 즉시 격리 대상으로 지정됩니다] 뭔 놈의 격리. 신전 벽 쪽에서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창을 세우고 다가오는 게 보였다. 발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타고 규칙적으로 울렸다. 저벅, 저벅, 저벅. 그 소리가 점점 커질수록 내 등줄기는 점점 서늘해졌다. 소환된 지 5분도 안 됐는데, 나는 벌써 이세계의 수배자가 된 모양이었다. 법정에서도 도망칠 곳이 없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다만 이번엔 상대가 창을 든 갑옷 무장 병력이라는 게, 조금 더 골치 아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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