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여섯 살, 검을 쥐다

4화

숨소리가 가까워졌다. 낮고 무거웠다. 숨을 쉴 때마다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나무 뒤에 몸을 붙였다. 손바닥에 땀이 찼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처럼 뛰었다. 숫자를 세려고 했다. 하나, 둘, 셋. 세다가 잊어버렸다. 부스럭.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 덤불이 흔들렸다. 나는 숨을 더 참았다. 폐가 아파왔다. 숨을 쉬면 들킬 것 같았다. 그런데 숨을 안 쉬어도 곧 들킬 것 같았다. 둘 다 맞는 말이었다. 달빛이 구름 사이로 잠깐 드러났다. 그 빛 속에서 나는 그것을 보았다. 회색 털. 사람보다 세 배는 큰 몸집. 어깨 높이가 나무 중턱까지 닿았다. 회색곰이었다. 마수라고 불리는, 보통 짐승보다 훨씬 크고 사나운 것.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회색곰은 무리 짓지 않는다고 했다. 혼자 다니고, 혼자 사냥하고, 혼자 죽인다고 했다. 그 문장을 읽을 때는 그냥 정보였다. 지금은 아니었다. 곰이 코를 들었다. 냄새를 맡는 소리가 들렸다. 킁, 킁. 숨소리와 냄새 맡는 소리가 겹쳐서 들렸다. 나는 숨을 참았다. 곰의 눈이 이쪽을 향했다. 노란 눈동자였다. 동공이 세로로 길게 찢어져 있었다. 그 눈이 나를 정확히 겨눴다. 들켰다. 달아나야 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발이 땅에 뿌리박힌 것 같았다. 이런 걸 겪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큰 것. 이렇게 가까운 죽음. 곰이 앞발을 들었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한 걸음, 두 걸음. 거리가 줄어드는 속도가 이상할 만큼 빨랐다.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손이 허리춤으로 갔다. 거기, 아무것도 없었는데, 검이 있었다. 하얀 검. 여신이 보여준 것과 똑같은 검. 손이 검을 쥐었다. 그 순간,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이 검을 어떻게 쓰는지, 배운 적이 없는데 알고 있었다. 손목의 각도. 발의 위치. 무게를 싣는 방향까지, 전부 몸이 알고 있었다. 배운 게 아니라 원래 있던 것처럼. 곰의 앞발이 내려왔다. 나는 옆으로 몸을 굴렸다. 땅바닥이 어깨를 긁었다. 아픈 걸 느낄 새도 없었다. 앞발이 땅을 내리쳤다. 흙먼지가 튀었다. 바로 옆이었다. 한 발만 늦었어도 저 발 아래 깔렸을 거리. 곰이 다시 몸을 돌렸다. 나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두려움이 몸 전체를 채웠다. 숨이 얕고 빨라졌다. 그런데 손은 떨리지 않았다. 이상했다. 머리는 무서운데 손은 무섭지 않았다. 두 개의 다른 사람이 한 몸에 들어있는 것 같았다. 곰이 달려들었다. 검을 들었다. 순간, 시야가 이상하게 느려졌다. 곰의 근육이 움직이는 방향, 발톱이 그리는 곡선, 목덜미의 각도까지 전부 보였다. 시간이 늘어난 것 같았다. 아니, 시간은 그대로였고 내가 보는 방식이 달라진 거였다. 곰의 발톱 다섯 개가 하나씩 따로 움직이는 게 보였다. 바람이 곰의 털을 스치는 방향까지 보였다. 나는 검을 휘둘렀다. 일격이었다. 단 한 번. 검이 곰의 몸을 가로질렀다. 저항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물을 가르는 것 같았다. 무게가 있어야 하는데 없었다. 이렇게 큰 짐승을 베는데 손끝에 아무 반동도 없었다. 곰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소리도, 피도, 무게도 있었지만, 그 순간의 감각은 이상하게 비현실적이었다. 내가 벤 게 아니라 검이 벤 것 같았다. 곰의 두 몸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쓰러졌다. 땅이 흔들렸다. 한 번, 두 번. 몸이 땅에 닿을 때마다 진동이 발밑으로 전해졌다. 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숨이 가빴다. 검을 든 손이 무겁게 느껴졌다. 몇 초 전까지 가볍던 검이 지금은 돌덩이처럼 느껴졌다. 검성. 그 힘이 진짜라는 걸, 그제야 확인했다. 여신이 한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 나는 정말로 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안도가 밀려왔다가, 곧바로 다른 생각이 들어왔다. 어머니. 어머니가 아직 오지 않았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안도는 사라졌다. 몸을 돌려 숲을 되짚어 걸었다. 방금 있었던 곳으로. 어머니가 시간을 끈다고 했던 그 자리로. 걸으면서 계속 불렀다. "엄마." 대답이 없었다. "엄마, 나야."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숲의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곰의 죽음이 다른 짐승들을 물러나게 한 걸까, 아니면 그저 밤이 더 깊어진 걸까. 바람 소리만 들렸다. 나뭇잎 스치는 소리, 그것뿐이었다. 갈림길로 돌아왔다. 경사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횃불의 흔적은 없었다. 발자국도 흐릿했다. 땅에 남은 흔적을 눈으로 더듬었다. 여기서 헤어졌다. 분명히 여기였다. 어머니는 이 자리에서, 나에게 먼저 가라고 했다. "엄마!" 조금 더 크게 불렀다. 메아리만 돌아왔다. 내 목소리가 나무 사이로 흩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소리. 그것뿐이었다. 숨이 가빠졌다. 다리가 떨렸다. 혼자 온 게 아니었다. 분명히 어머니와 같이 왔었다. 같이 도망쳤고, 같이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여기, 이 숲 한가운데, 나 혼자였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그 생각이 점점 커졌다. 어머니는 시간을 끈다고 했다. 조금만 있으면 갈게, 라고 했다. 그 목소리, 그 표정을 떠올렸다. 웃고 있었다.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웃음이 지금 다르게 보였다. 조금은 얼마만큼일까. 한 시간일까, 두 시간일까, 세 시간일까. 숫자를 세어보았다. 곰을 만나기 전까지, 나무 아래 앉아서 세 시간을 보냈다. 그 세 시간 동안 나는 무서워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한 자리에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마다 놀라며 세 시간을 견뎠다. 곰과 싸운 시간은 아주 짧았다. 몇 분, 어쩌면 그보다 짧았을 수도 있다. 체감으로는 길었지만 실제로는 순식간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마 네 시간, 어쩌면 다섯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다섯 시간. 다섯 시간 동안, 시간을 끈다는 사람이 오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몸이 먼저 알았다. 머리로 인정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손끝이 차가워졌다. 입안이 말랐다. 침을 삼켰는데 넘어가지 않았다. 아니야. 아닐 거야. 시간을 잘못 셌을 수도 있다. 곰과 싸운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길었을 수도 있다. 체감과 실제가 다를 수 있으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해봤지만, 손끝의 냉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뛰기 시작했다. 경사 아래로, 아버지의 성이 있던 방향으로. 발이 나뭇가지에 걸리고, 돌에 채였다. 아프다는 감각도 나중에 왔다. 지금은 그저 발을 앞으로 내딛는 것, 그것만 생각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옆구리가 찢어질 듯 아팠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안 될 것 같았다. 한참을 달리다 발이 뭔가에 걸렸다. 넘어졌다. 손바닥이 흙에 파묻혔다. 무릎에서 뜨거운 통증이 올라왔다. 일어나려는데, 손끝에 뭔가 만져졌다. 부드럽고, 젖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집어 눈앞으로 가져왔다. 달빛에 비춰봤다. 천 조각이었다. 작게 찢겨 나온 조각. 가장자리가 거칠게 뜯겨 있었다. 칼로 자른 게 아니라 힘으로 찢긴 흔적이었다. 색을 확인했다. 붉은빛이 섞인 갈색. 어머니가 입고 있던 옷과 같은 색이었다. 나는 그 천 조각을 손에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쉬어야 하는데 쉬어지지 않았다. 천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게 느껴졌다. 이게 왜 여기 있어. 왜 여기, 이 자리에 떨어져 있어. 머리가 답을 알고 있는데, 그 답을 받아들이는 걸 몸이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으로 시선을 던졌다. 경사 아래, 나무들 사이, 그 어디쯤에도 사람의 형체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대답은 없었다. 바람만 지나갔다. 천 조각을 쥔 손을 가슴에 붙였다.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번엔 방향을 몰랐다. 그저 앞으로, 어둠이 짙어지는 쪽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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