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오전 9시.
설매가(雪梅家) 대전 바닥은 차가웠다.
돌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무릎을 타고 허벅지까지 스며들었다.
무릎을 꿇은 지 벌써 한 시간이 넘었다.
다리는 이미 감각이 없었다.
그런데도 아프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몸보다 먼저, 다른 무언가가 이 순간을 알고 있었다.
앞에는 은빛 마력석이 놓여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 표면은 매끄러웠고 은은한 빛을 품고 있었다.
손을 대면 재능이 드러난다고 했다.
색이 붉으면 화계, 푸르면 수계, 하얗게 빛나면 신성계.
그 외에도 흙빛이면 지계, 회색이면 풍계.
여섯 살이 되는 해, 설매가의 아이들은 모두 이 돌 위에 손을 얹는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의 앞날이 결정된다.
대전 안에는 마도사 다섯이 늘어서 있었다.
흰 로브를 입은 이들, 가슴에 설매가의 문장을 단 이들.
그들의 시선은 이미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기대라기보다는 형식적인 확인의 눈빛이었다.
설매가의 핏줄이라면 당연히 무언가는 나올 거라는, 그런 안일한 시선.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이상한 확신이었다.
여섯 살짜리 아이가 가질 수 없는 확신.
나는 이 순간이 처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어디서, 언제, 무엇으로 살았는지는 흐릿했다.
이름도, 얼굴도, 심지어 성별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몸이 먼저 알았다.
이 세계의 규칙을, 이 순간의 무게를, 뒤에 올 결과를.
돌 위에 손을 얹기 전, 짧은 순간 숨을 멈췄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어쩌면, 하는 기대는 없었다.
기대라는 감정 자체가 자리하지 않았다.
그저 확인의 절차였다.
이미 알고 있는 결과를 몸으로 증명하는 절차.
손끝을 돌 위에 얹었다.
돌은 차가웠다.
그리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색도, 빛도, 열기도 없었다.
대전 안이 조용해졌다.
마도사들의 시선이 등에 꽂혔다.
그 시선의 온도가 바뀌는 걸 느꼈다.
기대에서, 의심으로.
"무(無)입니다."
측정관의 목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무.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
이 가문에서 태어난 아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나쁜 결과.
대전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누군가의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하녀들이 서로 눈치를 주고받는 게 느껴졌다.
아버지, 이태준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나는 그 얼굴을 보며 숨을 참았다.
그 얼굴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다시 해봐."
아버지가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다.
그러나 그 낮음이 더 무서웠다.
손을 다시 얹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측정관이 고개를 저었다.
작은 몸짓이었지만, 대전 전체가 그 몸짓을 읽었다.
"다시."
이번엔 명령이었다.
목소리에 떨림이 섞여 있었다.
세 번째로 손을 얹었다.
돌은 여전히 차가웠고, 여전히 조용했다.
세 번째까지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경우는, 설매가 역사상 몇 번이나 있었을까.
나는 그 답을 몰랐다.
그러나 아버지의 얼굴이 그 답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아버지의 손이 올라가는 걸 보았다.
피할 새도 없이 뺨이 얼얼해졌다.
소리보다 통증이 먼저 왔다.
그리고 그 뒤에 소리가 대전 안에 울려 퍼졌다.
"무재능. 설매가에 무재능이라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분노가 아니라 수치심이었다.
나는 그 차이를 알았다.
안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여섯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분노는 상대를 향한다.
수치심은 자기 자신을 향한다.
그런데 그 화살이 지금, 나에게 꽂히고 있었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그러나 조심스럽게.
어머니, 한지연이었다.
"태준님, 그만하세요."
어머니가 내 앞을 막아섰다.
어머니의 치맛자락이 눈앞을 가렸다.
익숙한 향, 라벤더와 비슷한 냄새.
그 냄새가 아주 잠깐, 숨을 쉬게 해주었다.
"비켜."
"서하는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이 아이는 설매가의 명예를 무너뜨렸어."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이제 이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
설매가, 명예, 그 두 단어가 반복될 때마다 목소리가 커졌다.
어머니의 등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등 뒤에서 아버지의 손이 다시 올라가는 걸 보았다.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손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그 짧은 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손이 어머니의 뺨을 쳤다.
소리가 대전 전체에 울렸다.
마도사들 중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그들의 침묵이 아버지의 행동을 허락하고 있었다.
그 침묵도 이 가문의 규칙 중 하나였다.
어머니는 쓰러지지 않았다.
대신 나를 더 세게 감쌌다.
그 팔이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놓지 않았다.
"엄마……。"
목이 메었다.
눈물이 나야 하는데 나오지 않았다.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지금 울면, 상황이 더 나빠진다는 걸.
전생의 기억이었을까, 아니면 이 몸에 새겨진 본능이었을까.
구분할 수 없었다.
그저 눈물을 삼키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오늘 부로."
아버지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서하는 설매가의 사람이 아니다."
대전 안이 완전히 멈췄다.
마도사들도, 하녀들도, 아무도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서하.
그 이름이 이제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아버지의 입에서 떨어져 나왔다.
"태준님, 안 됩니다."
어머니가 소리쳤다.
목소리가 대전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 소리에 몇몇 하녀들이 놀라 고개를 숙였다.
"어디로 보낼지는 내가 정한다."
아버지가 다가왔다.
발소리가 하나씩, 정확하게 바닥을 울렸다.
손에 회초리가 들려 있었다.
나는 그 회초리를 보았다.
전생의 기억 어딘가에서, 이런 매를 맞아본 적이 있었던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매의 재질, 길이, 그것이 살을 가르는 각도까지도 몸이 미리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첫 번째 매가 등을 갈랐다.
숨이 턱 막혔다.
시야 끝이 하얗게 번졌다.
등에서 시작된 통증이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졌다.
두 번째 매.
다리가 후들거렸다.
무릎이 꺾일 것 같았다.
그러나 쓰러지면, 다음 매가 더 깊이 들어올 거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버텼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버텨야 한다는 확신만이 있었다.
세 번째 매.
눈앞이 하얘졌다.
"태준님, 제발!"
어머니가 아버지의 팔을 붙잡았다.
그 팔에 매달리듯, 어머니의 온몸이 흔들렸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밀쳤다.
어머니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어머니는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얼굴에는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그런데도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이 아이는 오늘 밤 안에 이 집에서 나간다."
아버지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산 채로 나가든, 죽어서 나가든 상관없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마법 없는 아이는 이 나라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숲으로 쫓겨나면, 짐승의 먹이가 되거나 굶어 죽는다.
귀족가의 무재능 자식들이 그렇게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나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녀들이 몰래 나누던 대화, 마도사들이 눈짓으로 주고받던 이야기.
그 조각들이 이제야 하나로 맞춰졌다.
죽어서 나가든 상관없다.
그 문장이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되풀이됐다.
어머니가 몸을 일으켜 나를 끌어안았다.
"괜찮아, 서하야."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엄마가 있잖아. 엄마가 어떻게든 할게."
그 말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어머니의 말은 언제나 이렇게 평범했다.
밥은 먹었니, 무리하지 마라, 엄마가 있잖아.
그 평범함이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절박한 말처럼 들렸다.
어머니의 팔이 나를 감싼 채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이 등으로, 다시 가슴으로 전해졌다.
이 사람은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설매가의 안주인이라 해도, 가주인 아버지 앞에서는 힘이 없었다.
그 사실을 여섯 살의 눈으로도 읽어낼 수 있었다.
다시 매가 날아왔다.
네 번째.
등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는 감각이 들었다.
피인지, 그저 통증의 착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다섯 번째.
등이 뜨겁고 차가운 것을 동시에 느꼈다.
의식이 자꾸 끊어졌다가 이어졌다.
대전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보였다.
"엄마……。"
입술을 움직였지만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목구멍 안쪽이 말라붙은 것 같았다.
어머니가 무언가 대답한 것 같았는데, 그 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눈앞이 점점 흐려졌다.
대전의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기둥에 새겨진 문양이, 마도사들의 흰 로브가, 아버지의 굳은 얼굴이 뒤섞여 하나의 얼룩처럼 번졌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 대신 우는 얼굴.
나는 그 얼굴을 눈에 담으려 애썼다.
그러나 시야는 이미 검게 물들고 있었다.
그리고 어둠이 나를 삼켰다.
그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 시선이, 오래전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