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오늘 훈련대 애들이랑 결계 너머 좀 다녀올 건데, 너도 와라."
박서준이 여관 앞에 떡하니 서서 말했다.
장작을 패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쩍 소리 없이 도끼가 그대로 얼어붙은 느낌이었다.
표정이 딱 하나였다.
왜지.
전생에 나는 데이터센터 화재 알람이 울려도 눈 하나 깜빡 안 하던 인간이었다.
그런데 열다섯 살짜리 몸으로 이런 말을 들으니까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몸이 어리면 정신도 따라가는 건가, 이거 진짜 억울한 부작용이다.
"제가요? 왜요?"
"짐꾼 필요해서."
박서준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낙오자도 쓸모는 있어야지."
짐꾼.
전생 32세 경력의 시스템 엔지니어가 15세 몸으로 짐꾼 취급받는 이 상황을, 나는 뭐라 정의해야 할지 몰랐다.
서버 다운 나면 새벽 세 시에도 콜 받던 몸이 지금은 어느 도련님의 짐 나르는 셔틀 신세라니.
이력서에 이걸 어떻게 적어야 하나, 그런 헛생각까지 든다.
한소미가 옆에서 팔짱을 끼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서준아, 이건 좀 아니지 않아? 결계 너머는 위험지역인데."
"내가 있는데 뭐가 위험해."
박서준이 자기 팔을 툭툭 치며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한소미는 여전히 눈썹을 찌푸린 채 나를 슬쩍 쳐다봤다.
동정인지 걱정인지 구분이 안 가는 눈빛이었는데, 어쨌든 이 파티 안에서 유일하게 상식이 살아 있는 사람인 건 확실했다.
문제는 그 상식이 박서준 앞에서는 항상 밀린다는 거였다.
결계.
마을을 둘러싼 마력의 벽으로, 오크와 각종 몬스터가 서식하는 외곽 지대와 인간 거주지를 나누는 경계선이었다.
이 세계에서 결계는 임대차 계약서 같은 거였다.
안쪽은 안전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온갖 규제를 받아들이는 구역이고, 바깥은 계약 조항 자체가 없는 무법지대.
그런 곳에 열다섯 살짜리 애들이 소풍 가듯 발을 들이려 하고 있었다.
훈련대라고 해봤자 아직 열다섯짜리 애들 무리인데, 다들 결계 너머로 나가는 게 마치 놀이공원 가는 것처럼 신나 있었다.
김민재가 화염구를 손끝에서 뿌뿌 만들며 낄낄댔다.
"오크 한 마리쯤 내 화염술로 훅 태워버리지 뭐."
"불장난 하다가 산불 내는 거 아니냐."
정우가 창을 어깨에 걸치고 거들었다.
"우리 다섯이면 웬만한 몹은 다 잡아."
다섯.
박서준, 김민재, 정우, 한소미, 그리고 짐꾼 이도현.
숫자가 딱 안 맞아 보였다.
전투원 넷에 화력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 하나.
이건 던전 파티 구성표가 아니라 그냥 봉사활동 명단이었다.
나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만류하려 했다.
"저기, 결계 밖은 훈련대 정식 임무 아니면 못 나가는 거 아니었나요?"
"규정은 규정이고, 능력은 능력이지."
박서준이 코웃음을 쳤다.
"넌 그냥 조용히 따라와서 짐이나 지켜."
[전도서]에 이런 말은 없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은 성경 구절처럼 예언이었다.
이거 사고 난다.
확신이 든다는 게 아니라, 그냥 경험상 이런 대화 패턴 뒤에는 항상 사고가 따라왔다.
전생에서도 "이 정도는 괜찮아요, 배포만 살짝 바꾸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팀장 뒤에는 항상 장애가 터졌다.
결국 나는 짐꾼 신세로 따라나섰다.
안 간다고 하면 박서준이 무슨 헛소문을 낼지 몰랐고, 무엇보다 이 여관 아저씨 얼굴에 먹칠하는 건 싫었다.
아저씨는 나를 손자처럼 챙겨주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그 은혜를 낙오자 딱지 하나로 갚기엔 좀 그렇지 않나.
결계 문지기 아저씨는 순찰조 명단에 우리를 못 끼워줬는지, 박서준이 이장 아들이라는 걸 앞세워 억지로 통과증을 뽑아냈다.
"이장님 아들이 다 책임진다고 했으니께, 나는 모른 척 할틴디."
사투리 섞인 목소리로 문지기 아저씨가 손을 휘휘 저었다.
"근디 짐꾼 총각은 왜 저래 낯빛이 허여? 뭔 일 있는겨?"
"아뇨, 그냥 원래 이 얼굴이에요."
거짓말이었다.
속으로는 이미 장례식장 조문객 표정을 짓고 있었다.
촤르르르륵!
결계 문이 마력으로 된 막을 열며 소리를 냈다.
결계 밖으로 나온 순간, 공기 자체가 달랐다.
습하고, 뭔가 짐승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동네 목욕탕 탈의실 냄새랑 비슷하다고 하면 너무 정겹게 들릴까 봐 다시 표현하자면, 그냥 젖은 짐승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숨 쉬는 냄새였다.
"우와, 진짜 나오네."
김민재가 신난 목소리로 중얼댔다.
정우도 콧구멍을 벌리며 숲 냄새를 들이마셨다.
"오, 이거 은근 상쾌한데?"
상쾌하다는 표현이 이 상황에 쓰일 수 있다는 게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스킬 해석 발동]
[대상: 결계 너머 대지]
[특이사항: 마력 밀도 상급, 몬스터 서식 흔적 다수, 오크 부족 영역 추정]
다수라고?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대여도, 해석도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니라 도망칠 타이밍을 알려달라고 있는 거 아닌가.
근데 스킬은 늘 나한테 도망치라는 말은 안 해주고 그냥 상황만 브리핑해준다.
불친절한 인수인계 문서 같은 스킬이다.
한소미가 내 옆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도현아. 너 뭔가 이상하게 신경 쓰는 것 같은데."
"그냥, 좀 예감이 안 좋아서요."
"예감?"
한소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낙오자가 예감은 있어?"
박서준이 뒤에서 들으라는 듯 말을 던졌다.
낙오자한테 예감이 없다는 근거는 뭘까.
F등급이랑 예감이랑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아마 F등급은 등급표 어딘가에 "예감 없음"이라고 작게 각주라도 달려 있나 보다.
언젠가 그 등급표 원본을 찾아서 정정 요청을 넣고 싶다.
한 시간쯤 걸어가자, 나무들이 이상하게 부러져 있는 흔적이 보였다.
뭔가 큰 것이 지나간 자국이었다.
가지가 아니라 몸통째로 꺾여 있었는데, 그 각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사람 손으로 부러뜨렸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헬스장 3년 다닌 오크였다.
[스킬 해석 발동]
[대상: 부러진 나무]
[분석: 강력한 타격, 발자국 폭 40센티, 오크 성체 추정]
40센티라니.
내 발보다 두 배는 큰 발자국이었다.
운동화 매장에 가도 저 사이즈는 주문 제작이나 가능할 것 같은데, 이 세계 오크들은 그냥 맨발로 저러고 다닌다.
"이봐, 이쯤에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박서준이 콧방귀를 뀌었다.
"쫄았냐? 낙오자다운 발언이네."
김민재도 킬킬 웃었다.
정우만 발자국을 한번 내려다보고는 살짝 표정이 굳었다가, 이내 애써 웃으며 창을 고쳐 잡았다.
그 순간, 숲 저편에서 낮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워어어어어!
다섯 명 전부가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박서준 얼굴에서 자신감이 살짝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방금까지 여유롭던 눈빛이 순식간에 계산기를 두드리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저, 저건 그냥 한 마리 소리 아니야?"
정우가 창을 고쳐 잡으며 물었다.
목소리가 아까보다 한 톤 높아져 있었다.
누가 봐도 불안이 목소리 끝에 매달려 있었다.
숲 안쪽에서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하나, 둘, 셋... 열은 넘게 세다가 그만뒀다.
나는 그 소리를 세면서 손가락을 접었다가, 손가락이 다 접힌 순간 세는 걸 관뒀다.
숫자가 늘어날수록 손가락보다 심장이 먼저 접혔다.
[스킬 해석 발동]
[대상: 접근하는 무리]
[분석: 오크 전투 부대, 최소 12개체, 리더급 개체 1 포함]
열두 마리.
리더급까지.
전생이었으면 이쯤에서 "이건 담당자 소관이 아닙니다"라고 티켓을 넘겼을 거다.
그런데 여기선 넘길 담당자가 없다.
담당자가 바로 나, 짐꾼 신세인 나였다.
나는 그 순간 확실히 깨달았다.
이건 짐꾼이 겪을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