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다음 날 아침, 나는 우물가에서 물을 긷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새벽 공기가 아직 차가웠다.
마을 우물은 여관에서 걸어서 오 분 거리, 동네 아주머니들이 아침마다 물동이를 이고 모여드는 사교의 장이자 정보 유통 창구였다.
나는 그 시간을 피해서 갔다.
사람 많은 곳에서 F등급 딱지 붙이고 서 있으면 괜히 눈총받는 것도 지치는 일이었으니까.
촤르르르륵!
두레박이 물을 퍼올리며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맞춰 손끝이 간지러웠다.
뭐지?
처음엔 그냥 손이 시린가 했다.
새벽 우물물이 원래 좀 차갑긴 하니까.
그런데 이 간지러움은 온도랑은 좀 다른 결의 감각이었다.
마치 핸드폰 진동을 손끝으로만 느끼는 것 같은, 미세하지만 분명한 신호.
[스킬 해석 발동]
[대상: 우물]
[재질: 화강암, 마력 침전물 축적, 하위 수맥과 연결]
음, 이건 그냥 우물이 마법 우물이라는 거네.
딱히 새로운 정보는 아니었다.
마을 어른들도 이 우물물이 좀 특별하다고 늘 말했으니까.
"이 물 마시면 감기 안 걸린다"부터 "여기 물로 빤 옷은 색이 안 빠진다"까지, 온갖 근거 없는 미신들이 다 이 우물에서 나왔다.
근데 스킬로 확인해보니 미신이 아니라 진짜였다는 게 좀 웃겼다.
마을 사람들 무식한 게 아니라 감이 좋았던 거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손끝에서 뭔가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USB를 억지로 뽑을 때 같은, 데이터가 덜 복사된 채 끊기는 그 찝찝함.
아니 이 세계에 USB가 있을 리도 없는데, 전생의 감각이 계속 이런 식으로 비유를 만들어내는 걸 보면 나는 이 세계에 완전히 적응 못 한 게 확실했다.
[???]
[알 수 없는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뭐?
나는 두레박을 놓쳤다.
쿵!
두레박이 우물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저 두레박 건지려면 또 밧줄 가진 사람 불러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스킬 알림보다 먼저 머릿속을 스쳤다.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도 생활고부터 걱정한다더니, 딱 내 얘기였다.
[해석 스킬의 부가 정보를 확인합니다]
[히든 스킬 발견: 대여(貸與) Lv.1]
[설명: 해석에 성공한 대상의 능력 일부를 일시적으로 빌려 사용할 수 있다]
[제한: 해석 등급을 초과하는 능력은 대여 불가. 대여 시간은 해석 정밀도에 비례]
뭐지?
뭐지 이거?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대괄호 안의 글자들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혹시 오타인가, 혹시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눈을 비비고 다시 봤는데 글자는 그대로였다.
숨겨진 스킬이라니.
이 세계 스킬 시스템에도 이런 '히든 옵션'이 있는 줄은 몰랐다.
전생에서 회사 인트라넷 뒤지다가 개발자가 실수로 안 지운 관리자 계정 발견했을 때 느낌이 딱 이거였다.
그때도 이랬다.
아무도 안 알려줬는데 우연히 발견해서, 이걸 써도 되나 안 되나 고민하다가 결국 몰래 써봤던 그 죄책감 섞인 흥분.
[욥기 41:1,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낚을 수 있겠느냐]
못 낚아, 리워야단은.
근데 우물 마력 정도는 낚을 수 있는 것 같은데.
이거 성경에도 안 나오는 스킬을 내가 지금 우물가에서 발견한 거 아닌가.
신학적으로 따지면 이건 거의 이단급 발견이었다.
일단 테스트가 필요했다.
이론만 세우고 실전 없이 넘어가는 건 전생 직장인 시절부터 내가 제일 싫어하던 짓이었다.
기획서만 그려놓고 검증 안 하는 팀장들, 딱 그 짝이 되긴 싫었다.
나는 여관으로 돌아가 마당에 있는 늙은 개, '멍구'를 붙잡았다.
멍구는 스킬이 없다.
동물한테는 스킬이 없으니까.
대신 예민한 코를 가지고 있었다.
여관 아주머니 말로는 멍구가 손님 중에 도둑질할 놈을 냄새로 미리 알아챈 적도 있다고 했다.
"미안하다, 잠깐만."
멍구는 꼬리를 흔들며 순순히 앉아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착한 개였다.
사람이었으면 갑자기 붙잡혀서 뭐 하는 거냐고 따졌을 텐데, 개는 그저 나를 믿었다.
그 신뢰가 좀 미안해졌다.
지금 나는 얘를 실험 대상으로 쓰고 있는 거니까.
[스킬 해석 발동]
[대상: 멍구]
[특이사항: 후각 예민도 상급, 스킬 없음]
[대여 시도]
[해석 등급 부족으로 대여 불가]
역시.
스킬이 없는 대상한테서는 스킬을 빌릴 수 없나 보다.
당연한 소리를 확인한 것뿐이었지만, 그래도 규칙 하나를 배웠다는 데 만족했다.
과학 실험이라는 게 원래 이렇다.
아무것도 안 나와도 그게 결과다.
멍구는 실험이 끝난 것도 모르고 계속 내 손을 핥았다.
핥짝! 핥짝!
미안해서 육포 한 조각을 몰래 줬다.
동물 실험 윤리위원회가 있었다면 나는 지금쯤 경고장 하나 받았을 거다.
다음 대상은 여관 아저씨였다.
아저씨한테는 [요리 Lv.1]이라는 소박한 생활 스킬이 있었다.
여관 부엌은 아침부터 국 끓이는 냄새로 가득했다.
아저씨는 국자를 든 채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는데, 그 여유가 나한텐 없는 거라 조금 부러웠다.
"도현아, 왜 자꾸 사람을 그렇게 빤히 봐. 부담스럽다."
아저씨가 국자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아, 죄송해요. 그냥... 요리하시는 모습이 멋있어서요."
입에서 나온 대로 뻥을 쳤다.
사실 나는 아저씨의 요리 스킬 레벨을 스캔하고 있었을 뿐이다.
멋있어서라니, 내 입에서 나온 말 중에 가장 뻔뻔한 문장이었다.
[스킬 해석 발동]
[대상: 여관 주인]
[스킬: 요리 Lv.1]
[대여 시도]
[요리 Lv.1을 30분간 대여합니다]
손끝이 뜨거워졌다.
갑자기 국자를 잡는 감각이 낯설게, 아니 익숙하게 느껴졌다.
마치 몸이 아니라 손끝에 다른 사람의 기억이 얹힌 것 같았다.
간을 맞추는 미묘한 손목 스냅, 국물이 끓는 타이밍을 알아채는 후각의 각성, 이런 게 한꺼번에 밀려들어왔다.
전생에 배달앱으로 시킨 음식만 먹던 나한테는 낯선 감각이었다.
"저 좀 해봐도 돼요?"
"어? 그, 그래라."
아저씨가 얼떨결에 국자를 넘겼다.
표정을 보니 별로 기대는 안 하는 눈치였다.
평소 내가 부엌일이라곤 그릇 나르는 것밖에 못 했으니까 당연했다.
간을 보는 순간 내 입에서 감탄이 나왔다.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정확한 간이었다.
원래 내 손이었으면 소금 한 줌을 통째로 부었을 텐데.
지금은 손끝이 알아서 소금통 위에서 딱 멈췄다.
마치 GPS가 목적지 도착을 알리는 것처럼.
"오, 도현이 너 요리 소질 있었냐?"
아저씨가 눈을 크게 떴다.
"그, 그런가 봐요."
나도 놀란 척하면서 속으로는 완전히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거 진짜 미친 스킬이다.
[욥기]는 이럴 때 인용하는 게 아니지만, 아무튼 나는 리워야단은 못 낚아도 국물 간은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됐다.
30분 뒤, 손끝의 낯선 감각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국자를 든 손이 다시 어설퍼졌다.
대여는 시간제였다.
마치 배달앱 정기구독처럼, 정확히 만료되면 뚝 끊겼다.
[대여 스킬 요리 Lv.1이 만료되었습니다]
아저씨는 계속 국을 끓여달라고 부탁했지만, 나는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했다.
갑자기 요리가 어설퍼지면 의심받을 게 뻔했으니까.
"도현이 너 아까는 잘하더니 왜 갑자기 이래?"
"아, 그게... 손목이 삐끗해서요."
거짓말이 점점 능숙해지는 걸 보니 나도 어딘가 재능이 있긴 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날 밤 방 안에서 혼자 웃었다.
미친놈처럼 웃었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보며 실실 웃는 내 모습을 누가 봤으면 정신병원에 신고했을 거다.
해석은 정보를 읽는 스킬이고, 대여는 그 정보를 실제로 사용하는 스킬이다.
두 개가 합쳐지면 이건 그냥 스킬 카피 앱이었다.
남의 능력을 빌려 쓰는 거니까 도둑질이라고 해야 할지, 인터페이스 접근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렸지만.
법률적으로 따지면 이거 절도죄인가, 아니면 임대차 계약인가.
전생 변호사 친구가 있었으면 물어보고 싶었다.
딴 사람이라면 이 자리에서 세계정복 서사를 짰겠지만, 나는 전생 습성대로 다른 생각을 했다.
이거 잘만 다듬으면, 남한테 스킬 빌려주는 렌탈 사업 하나 차릴 수 있는 거 아닌가?
스킬 공유 오피스 같은 걸 차려서 시간당 대여료를 받는다면, F등급이라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대박 칠 수도 있었다.
검사 스킬, 요리 스킬, 심지어 전투 스킬까지 시간 단위로 빌려 쓸 수 있다면 이게 무슨 노동시장의 혁명이란 말인가.
어이없는 발상이었지만, 어이없어서 더 진심이었다.
일단 F등급 낙오자 딱지를 벗을 방법 하나는 찾은 셈이었다.
다만 나는 이 신박한 발견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F등급이 갑자기 남의 스킬을 빌려 쓴다고 말하면, 좋게 봐줘도 미친놈, 나쁘게 보면 '스킬 강탈범' 취급받을 게 뻔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 반응도 걱정됐다.
"저놈이 내 스킬을 훔쳐갔대"라는 소문이 돌면 나는 순식간에 마을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다.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이 능력을 숨기고 써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조심스러운 결심은 박서준의 자존심 하나 때문에 완전히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