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전생하면 다들 검신이 되거나 대마법사가 된다던데, 나는 왜 이 지경일까.
[스킬 감정 결과: 해석(解析) Lv.1]
[등급: F (최하급)]
[설명: 대상의 정보를 분석한다. 전투 활용도 없음]
마을 신관님이 그 문구를 읽어주던 순간, 광장에 있던 애들 절반이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못 참은 절반은 그냥 웃었다.
그 웃음소리, 되게 크고 청량했다.
동네 스피커로 틀어놔도 손색없을 웃음이었다.
15년 전, 나는 서울 어딘가의 데이터센터에서 밤샘 장애 대응을 하다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원인은 모른다.
과로였는지, 신의 실수였는지, 아니면 그냥 운이 없었는지.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알람이 스무 개쯤 동시에 터지던 새벽 세 시, 그리고 커피 대신 마신 에너지드링크 세 캔이었다.
그다음은 그냥 암전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 세계였고, 몸은 '이도현'이라는 이름의 열다섯 살짜리였다.
[욥기]씩이나 인용할 처지도 못 된다.
이건 그냥 employee handbook에도 안 나오는 부당해고 통지서였다.
퇴직금도 없고, 인수인계도 없고, 심지어 사유서도 없는.
회사 게시판에 "이도현님, 회사 사정으로 인해" 어쩌고 하는 공고문 한 줄도 안 붙여준 셈이다.
"이도현, F등급이라니. 안타깝네요."
신관님이 애써 위로랍시고 던진 말이었다.
"제 잘못은 아니잖아요."
나는 최대한 억울함을 숨기고 대답했다.
실은 안 숨겼다.
목소리에 억울함이 그냥 형광펜으로 밑줄 그은 것처럼 선명했다.
각성의 날.
이 세계 아이들은 열다섯이 되면 마을 광장에 모여 스킬을 받는다.
신이 내려주는 건지, 어떤 시스템이 랜덤박스를 돌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한 번 정해진 스킬은 죽을 때까지 간다는 거였다.
환불도 없고, 재구매 유도 이벤트도 없다.
그냥 뽑으면 끝. 오늘 뽑기 10연차 이벤트라던가, 확률 상승 배너 같은 것도 없이 순수하게 운빵이었다.
촤르르르륵!
박서준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을 때, 광장 전체가 함성을 질렀다.
[스킬 감정 결과: 육체강화 Lv.2]
[등급: B (상급)]
"역시 이장님 아들이여!"
누가 그렇게 소리쳤다.
사투리 섞인 아저씨 목소리였다.
박서준은 팔짱을 끼고 씩 웃었다.
"당연하지. 나 정도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
기본은 개뿔.
랜덤박스에서 SSR 뽑은 놈이 실력이라고 우기는 걸 본 적 있나.
나는 그날 처음으로 본 적이 있었다.
심지어 시작부터 Lv.2였다.
나는 Lv.1도 감사해야 할 처지인데, 저놈은 사은품까지 챙겨간 셈이었다.
김민재의 화염술 Lv.1, 정우의 창술 Lv.1이 이어졌고, 다들 적당히 쓸만한 등급이었다.
김민재는 손끝에서 작은 불씨를 피워 올리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고, 정우는 창을 허공에 몇 번 휘둘러 보이며 괜히 자세를 잡았다.
둘 다 딱히 대단한 반응은 없었지만, 최소한 "쓸모없음"이라는 낙인은 안 찍혔다.
그게 이렇게 부러울 일인가 싶었는데, 그날 이후로 계속 부러웠다.
마지막으로 한소미라는 상인의 딸이 나왔다.
[스킬 감정 결과: 교섭 Lv.1]
[등급: D (하급)]
"에휴, 저도 망했네요."
한소미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D면 나보다 두 등급이나 높은데.
F와 D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강이 흐른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등급표를 보면 F, E, D, C, B, A, S 순이었는데, 신관님 설명에 따르면 F는 "전투 및 생산 활동에 활용 불가능한 등급"이었고 D는 최소한 "제한적 활용 가능"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 한 줄 차이가 내 인생 전체를 요약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각성 이후 삶은 예상대로 흘러갔다.
박서준과 그 패거리는 마을 청년 훈련대에 발탁됐고, 나는 여관 뒷마당에서 장작을 패는 알바를 뛰었다.
훈련대는 매일 아침 마을 광장에서 구호를 외치며 뛰었고, 나는 그 옆을 지나가며 장작더미를 옮겼다.
가끔 박서준이 나를 보고 "야, 낙오자, 오늘도 나무 패냐?" 하고 말을 걸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네, 저는 나무를 팹니다. 당신은 사람을 패시나요?" 하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실제로는 그냥 "네"라고만 했다.
현실은 사이다 없는 짜장면 같은 거였다.
[전도서 3: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지금은 그냥 장작 팰 때였다.
여관 주인 아저씨는 나를 처음 주워온 사람이었다.
원래 이 마을 출신인 '이도현'은 부모 없이 떠돌던 애였고, 그 몸에 내가 들어앉은 지도 어느새 반년이 넘었다.
반년이면 계약직으로 따지면 슬슬 정규직 전환 이야기가 나올 시기인데, 이 세계에는 그런 제도가 없었다.
그냥 계속 장작을 팼다.
"도현아, 오늘도 장작 다 패면 국밥 한 그릇 얹어줄게."
아저씨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인심 좋은 얼굴에 굳은살 박인 손.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나를 낙오자라고 안 부르는 사람이었다.
가끔은 국밥 대신 만두를 얹어주기도 했는데, 그날은 특별히 기분이 좋은 날이라는 뜻이었다.
"감사합니다."
존댓말이 절로 나왔다.
전생의 습관인지, 이 세계의 예의인지 나도 헷갈렸다.
어쩌면 그냥 을의 습관인지도 모르겠다.
전생에서도 갑에게는 늘 존댓말을 썼으니까.
쾅!
장작 하나가 반으로 쪼개지며 튀었다.
순간 손끝이 저릿했다.
아, 이거 F등급 몸으로 이 짓 하는 것도 은근히 스킬이 필요하구나.
박서준 같은 애들은 육체강화 스킬로 도끼질 한 번에 장작 세 개씩 쪼갠다던데, 나는 한 개도 힘겨웠다.
이게 배달앱 리뷰로 치면 "양 적음, 배달 늦음, 그래도 사장님이 친절함" 정도의 별점이었다.
[스킬 해석 발동]
[대상: 장작]
[재질: 참나무, 강도 하급, 균열 다수]
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시스템 메시지였다.
해석 스킬이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에도 발동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 밑에는 심지어 "건조도: 78%, 예상 화력: 중급" 같은 세부 항목까지 붙어 있었다.
장작 감정서치고는 지나치게 상세했다.
누가 이런 걸 요구했다고.
딱히 쓸모는 없었다.
장작이 참나무인 걸 안다고 국밥이 더 맛있어지는 건 아니니까.
건조도가 78%인 걸 안다고 내 팔 힘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쓸데없이 정확한 정보였다.
마치 배달앱에서 "이 가게는 리뷰 평점 4.9지만 실제로는 그냥 무난함"이라는 숨겨진 진실을 알려주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 무의미한 발견이 시작이었다.
나는 전생에 시스템 엔지니어였다.
버그를 찾는 게 직업이었고, 쓸모없어 보이는 로그 한 줄에서 치명적인 익스플로잇을 찾아내는 게 특기였다.
새벽 세 시에 서버 로그를 스크롤하다가 아무도 눈치 못 챈 메모리 릭 하나를 찾아내는 그 쾌감, 그거 하나로 밤샘을 견뎠던 사람이다.
최약의 스킬이라고?
웃기지 마라.
분석 로그를 무시하는 엔지니어는 죽은 엔지니어다.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니, 이번엔 무시 안 하기로 했다.
전생에서 못 다한 일을 여기서라도 제대로 해보자는 다짐, 뭐 그런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습관이 죽지를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여관 뒷방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낡은 나무 천장에는 균열이 몇 줄 나 있었는데, 반사적으로 해석을 걸어볼까 하다가 참았다.
지금은 장작 얘기를 먼저 정리해야 했다.
해석이 사물의 속성까지 읽어낸다면, 사람의 스킬도 그냥 '이름'만 읽는 게 아니라 더 깊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등급이라는 것도 결국 누군가가 매긴 라벨일 뿐, 그 라벨 밑에 숨겨진 원본 데이터는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전생에서 시스템 로그를 파듯이, 이 세계의 스킬 시스템에도 로그가 남아있을 것 같았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뭔가 큰 걸 건드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마치 프로덕션 서버에 실수로 DROP TABLE을 날리기 직전의 그 감각과 비슷했다.
확인 버튼을 누르기 전, 손끝이 미묘하게 떨리는 그 순간.
그리고 그 예감은, 다음 날 아침,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맞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