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몸이 바닥에 내던져졌다.
등이 아팠다. 아니, 아플 텐데 아프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픔이 있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누가 고통이라는 감각을 스위치처럼 꺼버린 것 같았다.
【재생 완료.】
또 저 알림이다.
이젠 저 짧고 건조한 문장 하나가 뜰 때마다 속에서 뭔가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재생 완료라니. 사람 몸에다가 무슨 동영상 재생하듯 그런 표현을 쓰는 거야.
마차가 완전히 뒤집힌 채 옆으로 누워 있었다.
바퀴 하나는 아예 빠져서 저 멀리 나뒹굴고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아직도 헛돌며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부서진 창틀 사이로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탄내와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도련님! 괜찮으세요?"
소영이 나를 끌어당겼다. 손목을 잡는 힘이 셌다. 다행히 그녀도 크게 다치지 않은 듯했다. 이마에 작은 상처 하나, 옷자락이 조금 찢어진 것 말고는 큰 외상은 없어 보였다.
주변에서 병사들이 급히 대열을 재정비하고 있었다. 방패를 세우는 소리, 창을 바닥에 박는 소리, 거친 숨소리들이 뒤섞였다.
"적 확인! 세 명입니다!"
누군가 외쳤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다들 이미 지쳐 있다는 게 느껴졌다.
숲 사이로 검은 그림자 세 개가 다가왔다.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는 그 실루엣들이 이상하게 느긋했다. 마치 사냥감을 확인하러 산책 나온 사람들처럼.
앞장선 하나는, 목소리로 알아볼 수 있었다.
"멀리 못 갈 줄은 알았지."
그 여자였다.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아니, 뛴다는 표현도 약하다. 갈비뼈 안쪽에서 뭔가가 계속 벽을 두드리는 느낌이었다.
【경고: 대상 재접근. 위협도 상승.】
시스템도 지금 나만큼 놀란 건지 알림 문구까지 짧아졌다.
"소영 씨, 저 사람이 대체 왜 저를 그렇게···"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갑자기 소영이 내 어깨를 붙잡고 눈을 맞췄다. 그녀의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봐온 소영은 늘 침착했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니었다.
"도련님, 지금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하지만 이건 알아두셔야 해요."
목소리가 진지했다. 목소리 톤이 낮아지면 진짜 중요한 이야기라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도련님의 회복 마법은, 단순한 힘이 아니에요."
뭐라고?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하얗게 비었다. 회복 마법이라니. 나한테 그런 게 있었나, 하고 잠깐 의심했다가, 곧 알았다. 아, 이게 그 죽지 않는 몸을 말하는 거구나.
"그건 저주예요."
저주라니. 갑자기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마부터 목덜미까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저주라는 단어가 이렇게 무겁게 들릴 줄은 몰랐다.
"몸이 아무리 부서져도, 절대 죽지 않아요. 대신, 고통은 그대로예요."
소영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눈물을 보는 순간, 뭔가 잘못됐다는 확신이 들었다. 소영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보인 적은 없었다.
"팔이 잘리면 다시 붙지만, 그 순간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아요. 계속 반복돼요. 그게 도련님의 마법이에요."
【정보 확인: 회복 마법 특성 - 무한 재생, 고통 지속형.】
무한 재생. 고통 지속형. 시스템까지 확인해주는 마당에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겪었던 그 끔찍한 순간들, 팔이 꺾이고 살이 찢기던 그 감각들이 전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 쌓이고 있었다는 소리인가. 위장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 여자가 저를···"
"네. 죽일 수가 없으니까, 계속 훼손하면서 뭔가를 캐내려고 했어요."
무엇을?
물을 틈도 없이 나무 사이에서 그 여자가 걸어나왔다. 발소리조차 없었다. 낙엽을 밟는 소리도,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도. 마치 숲 자체가 그녀를 위해 조용해진 것 같았다.
"이제야 좀 알아듣는구나."
목소리에 웃음이 배어 있었다. 그 웃음이 소름 끼치게 편안해서, 오히려 더 무서웠다.
"네가 죽지 않는 이유를 알면, 다음 질문이 뭘지도 알겠지?"
말투가 소름 끼치게 부드러웠다. 마치 오래 알던 사람에게 안부를 묻는 듯한 어투였다.
"'그녀들'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녀들이라니. 누구를 말하는 거지?
가슴 한복판에서 뭔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물리적인 소리가 아니라, 감정이 바닥을 치는 소리.
【핵심 정보 미확인. 대상: '그녀들'.】
알림조차 확실히 말해주지 않았다.
이럴 때만 쓸데없이 신중해진다. 진짜 중요한 순간엔 뭐 하나 제대로 알려주는 게 없어.
소영이 내 앞을 막아섰다. 검을 아직 뽑지 않은 손이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아직 안 됩니다!"
"소영 씨, 그녀들이 누구예요?"
다급하게 물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스스로도 이렇게 다급하게 물을 줄은 몰랐다.
소영은 대답하지 않고 검을 뽑아 들었다. 칼날이 흐릿한 달빛을 받아 차갑게 빛났다.
"지금은 도망치는 게 우선이에요."
그 여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걸음마다 여유가 넘쳤다.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걸음이었다.
"시간이 없다는 건 너도 알잖아. 그 아이들에게 남은 시간, 얼마나 될까?"
아이들···?
머릿속에서 뭔가 폭발할 것 같았다. 아이들이라는 단어 하나가 그전까지 쌓아온 모든 물음을 한꺼번에 뒤집어놓았다.
【경고: 시한부 정보 감지. 대상 다수. 잔여 시간 불명.】
시한부라니.
그녀들이 살아 있긴 하다는 소리인가?
살아 있다는 것과 시한부라는 게 동시에 들어오니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존재라면 이렇게까지 흔들릴 필요도 없었을 텐데.
"너 이 자식,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반말이 튀어나왔다. 존댓말을 할 여유가 없었다.
혀가 먼저 반응했다는 게 맞을 거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말이 튀어나왔으니까.
그 여자가 짧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숲 전체에 퍼지는 것 같았다.
"곧 알게 될 거야. 네가 그때 지키지 못했던 것들이,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지키지 못했다···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기억나지 않는 과거인데도, 몸이 먼저 그 말에 반응했다. 손끝이 저리고, 숨이 얕아졌다.
【경고: 정신적 충격 감지. 안정 필요.】
필요한 건 안정이 아니라 대답이었다.
정말 이 시스템이란 놈은 이런 순간에도 쓸데없는 알림만 뱉는다. 안정이 필요하다는 걸 나도 안다. 그런데 그게 지금 무슨 소용이야.
하지만 그 여자는 더 이상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늘은 물러나겠다. 하지만 다음엔 저 회복력이 어디까지 견디는지, 제대로 시험해봐야겠어."
뒤로 물러서던 그 여자가 갑자기 멈췄다. 뒷모습만 보이던 그녀가 고개를 살짝 돌렸다.
"아, 그리고."
돌아보며 웃었다.
달빛 아래 그 미소가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애처로워하는 것 같기도 한, 이상한 표정이었다.
"네가 정말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건지,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건지, 그것도 궁금하네."
말을 마친 그녀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발소리도,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도 없이.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사람처럼.
숲이 다시 조용해졌다.
병사들의 거친 숨소리, 부서진 마차의 바퀴가 헛도는 소리만 남았다.
소영이 무릎을 꿇으며 나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팔에서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괜찮아요, 도련님. 이제 안전해요."
안전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공허했다.
왜냐면 나는 방금, 그녀들이라는 존재가 시한부라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그게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머릿속에서 그 단어들이 계속 맴돌았다. 그녀들. 아이들. 지키지 못했던 것들. 이 세 단어가 서로 얽히면서 점점 더 무거운 덩어리가 되어 가슴을 눌렀다.
소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안은 채로, 등을 몇 번 쓸어내렸다. 그 손길이 위로인지, 아니면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인지 구분이 안 됐다.
멀리서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연기 냄새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이 저주라는 것이 단순히 내 몸에만 걸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함께 얽혀 있는, 훨씬 더 크고 오래된 무언가라는 느낌.
그 확신 없는 예감이, 오히려 가장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