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디딤돌이 되기로 했다

4화

왕도로 돌아온 며칠 후, 이도현은 이상한 시선을 느끼기 시작했다. 귀족가의 연회나 사교모임에 나설 때마다,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눈길이 그에게 머물렀다. 처음엔 단순한 관심이라 여겼다. 하지만 곧 그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시선에는 온도가 있었다. 이전의 시선은 두려움이었고, 지금의 시선은 의심이었다. 이도현은 그 차이를 금세 눈치챘다. "청호 공작가 공자가 갑자기 사람이 바뀌었다더군." 어느 백작가 자제가 낮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바뀌었다기보다는, 뭔가 노리는 게 있는 거겠지." 옆에 있던 이가 응수했다. "저런 인물이 하루아침에 착해질 리가 없잖아." 이도현은 그 대화를 못 들은 척 지나쳤지만, 속으로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예상은 했지만.'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연회장의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그는 예전의 자신을 떠올렸다. 이 자리에 있는 자들 중 절반은 그때 그의 손짓 한 번에 등을 굽히던 자들이었다. 지금은 등을 굽히지 않는다. 대신 뒤에서 수군거릴 뿐이었다. '차라리 이게 낫다.' 이도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두려움으로 얻는 존경보다, 의심 속에서 쌓아가는 신뢰가 오래갈 것이었다. 다만 그 신뢰가 언제 쌓일지는 알 수 없었다. +++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왕도의 사교계는 좁았고, 화젯거리는 금세 살을 붙여 퍼져 나가는 곳이었다. "이도현 공자가 요즘 하인들에게도 존댓말을 쓴다더라." "그거야말로 이상하지.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게 분명해." "혼약자를 학대했던 자가 갑자기 개과천선했다고? 그걸 누가 믿어." 소문의 결론은 하나로 모였다. 이도현의 변화는 거짓 명성이며, 어떤 목적을 위한 위장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더 나아가 억측을 붙였다. "아마 왕실의 눈에 들려는 거겠지. 혼약자를 이용해서 말이야." "혹은 채린 아가씨 가문의 재산을 노리는 거 아닐까?" 근거 없는 말들이 근거가 있는 말처럼 오갔다. 이도현은 그런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반박하고 싶었지만, 반박할수록 오히려 의심을 부추길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말로는 증명할 수 없다.' 그는 그렇게 되뇌었다. 하지만 그 말을 되뇌는 것과, 실제로 그 시간을 견디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채린과 함께 참석한 어느 다과회에서, 이도현은 그 소문을 직접 마주하게 되었다. "채린 아가씨, 정말 공자님이 변하신 게 맞나요?" 한 귀족 영애가 짓궂게 물었다. 찻잔을 든 채린의 손이 미세하게 멈췄다. 채린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시선이 흔들렸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채린이 겨우 대답했다. 주위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누군가는 부채로 입을 가리며 눈웃음을 지었고, 누군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에 이도현의 가슴이 저릿했다. 채린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오랜 상처가 며칠의 변화로 지워질 리 없었다. 다과회가 끝난 뒤, 마차에 오르기 전 채린이 잠시 걸음을 멈췄다. "방금은... 죄송합니다." 채린이 작게 말했다. "아닙니다." 이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사실이니까요." 채린은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마차에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이, 이전보다 조금 덜 굳어 있다는 것을, 이도현은 느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그날 밤, 이도현은 서재에 앉아 오래 생각에 잠겼다. '내 변화가 진짜라는 걸 어떻게 증명해야 하지.'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오늘 하루 처리해야 할 영지 문서들이 쌓여 있었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창밖으로는 왕도의 불빛이 점점이 이어져 있었고, 그 불빛 하나하나가 그를 향한 수많은 시선처럼 느껴졌다. 아버지 이강섭의 서재 문이 열렸다. 이강섭이 조용히 들어와 맞은편에 앉았다. "요즘 사람들이 이상한 말들을 하고 다니더구나." 이강섭이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들으셨습니까." 이도현이 고개를 숙였다. "신경 쓰지 마라." 이강섭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다. "사람의 변화는 말로 증명되는 게 아니다. 시간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이도현은 그 말에 잠시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강섭의 얼굴에는 예전과 같은 무게가 있었다. 하지만 그 무게 아래 어딘가, 이전에는 없던 색이 섞여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믿고 계시는 걸까.' 확신은 없었지만, 위로가 되었다. "세간의 평가에 흔들리는 자는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이강섭이 덧붙였다. "네가 옳다고 믿는 길을 걸어라. 그 길이 옳았는지는, 걸어본 자만이 안다." 그것은 이강섭이 젊은 시절부터 되뇌던 말이었다. 청호 공작가를 지금의 자리까지 끌어올리며 수없이 마주한 비방과 견제 속에서, 그가 스스로를 붙잡던 문장이었다. "감사합니다." 이도현이 짧게 답했다. 이강섭은 더 말을 잇지 않고 자리를 떴다. 다만 문을 나서기 전, 짧게 한마디를 남겼다. "곧 신탁 의식이 있다. 왕궁에서 열리는 국가 행사다. 청호 공작가도 참석해야 한다." 이도현은 그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신탁 의식이라는 것이 정기적인 국가 행사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문이 닫히고 서재에 다시 혼자 남았을 때, 이도현은 아버지가 남긴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시간으로 증명되는 것이라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는 다시 책상 위의 문서를 끌어당겼다. +++ 하지만 그 무렵, 왕궁 깊은 곳에서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있었다. 왕궁의 대신전, 신탁을 관장하는 사제들 사이에서 낮은 소란이 일고 있었다. "제단의 빛이 이상합니다." 젊은 사제가 상급 사제에게 보고했다. "이상하다니, 어떻게." 상급 사제의 얼굴이 굳었다. "평소보다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마치... 무언가를 경계하는 듯한." 상급 사제는 제단 앞에 서서 오랫동안 침묵했다. 제단은 대신전의 가장 깊은 곳, 오직 상위 사제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에 있었다. 평상시 제단은 옅은 백색의 빛을 은은하게 흘렸다. 그것이 신탁이 평온하다는 증거였다. 지금 제단은 그 백색 위로 붉은 실선이 스며든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신탁의 제단이 이런 징조를 보이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국가에 큰 재앙이 닥치기 전에나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과거 기록에도 이런 징조가 있었습니까." 젊은 사제가 조심스레 물었다. "백 년 전, 대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한 번 있었다고 전해진다." 상급 사제가 낮게 답했다. "그 이후로는 없었다." "누구를 가리키는 겐가." 상급 사제가 낮게 중얼거렸다. 대답은 없었다. 다만 제단의 빛이 다시 한번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소식은 곧 왕궁의 극히 일부에게만 전해졌다. 국왕과 소수의 대신, 그리고 대신전의 사제들만이 알고 있는 정보였다. "이번 신탁 의식에서, 그 징조의 대상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급 사제가 국왕에게 보고했다. 국왕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만약 드러나지 않는다면." 국왕이 물었다. "그렇다면 재앙은 조용히 다가올 것입니다. 아무도 대비하지 못한 채로." 국왕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청호 공작가의 아들이 참석한다고 들었다." 국왕이 낮게 말했다. "최근 그 아이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지." 상급 사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침묵이 모든 것을 대신했다. 국왕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왕도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징조가 가리키는 것이 재앙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는 뜻인가." 국왕이 다시 물었다. "그렇습니다, 폐하. 다만 신탁 의식 당일, 제단 앞에 선 자들 중 누군가에게서 그 빛이 반응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대상이 드러날 것입니다." 국왕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만 그날 이후, 신탁 의식을 준비하는 대신전의 발걸음이 부쩍 빠르고 조심스러워졌다는 것을,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었다. +++ 이도현은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그저 신탁 의식을 준비하며, 채린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히려 애쓰고 있었다. "의식 당일에는 함께 참석하게 될 겁니다." 이도현이 채린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예... 그렇겠지요." 채린의 대답은 여전히 짧고 사무적이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있었다. 완전한 거부는 아니었다. "예복은 준비되었습니까." 이도현이 다시 물었다. "네, 어제 맞췄습니다." 채린이 짧게 답하고는, 잠시 머뭇거리다 덧붙였다. "공자님 것도... 잘 어울릴 겁니다." 그 한마디가 이도현에게는 작은 균열처럼 느껴졌다. 사무적인 말투 속에 아주 작게 섞인 다정함이었다. 이도현은 그 균열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고맙습니다." 그가 답했다.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있다.' 이도현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왕궁의 대신전에서는 사제들이 제단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붉은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의식이 다가올수록 조금씩 더 짙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위로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었다. 의식이 열리는 날, 그가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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